Glasnevin Cemetery에 가다
더블린시티 북쪽, 더블린11 지역에 글래스네빈(Glasnevin)이라 부르는 동네가 있다. 중산층의 더블리너들이 사는 조용하고 안전한 주거지역인데, 이곳에도 관광객의 관심을 끌만한 장소가 두 군데 있다. 그 중 하나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에 둘러싸여 평화로운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보타닉가든(Botanic Garden)'이고 다른 하나는 아일랜드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공동묘지인 '글래스네빈 세미터리(Glasnevin cemetery)'다.
8월 둘째 목요일, 주말에 일한 대신 목, 금 휴가를 받은 존이 전날부터 어디든 가고 싶어 발을 굴렀다. 다음날까지 쉬니까 1박으로 어디라도 갔다오면 좋을 텐데, 차도 없고 갑자기 숙소를 잡으려니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날씨는 얄밉게도 너무 좋은 거다. 여름이 가던 길이 아쉬워 다시 잠시 발을 돌린 듯, 아침부터 햇살이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날이라니. 이럴 때 가끔씩 우리가 즐기는 휴가법이 있다. 더블린 여행하기. 먼저 온라인사이트에 싸게 나온 호텔이나 B&B를 찾아 예약한 후 그때그때 주제를 정해 노는 거다. 때로는 시티센터에서 영화와 라이브뮤직,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도 하고, 때론 더블린 근교의 스파에서 종일 게으름을 피우기도 한다.
"글래스네빈 쪽에 숙소를 잡고 걸어서 세미터리도 둘러보고, 보타닉 가든에서 피크닉 하며 햇빛을 즐기는 건 어때? 글래스네빈 세미터리 가이드투어는 꼭 한번 해보고 싶었어."
존의 제안에 나는 바로 '당첨'을 외쳤다. 가이드투어에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나도 오래 전부터 해오던 터엿기에.
18세기 조지안하우스를 개조한 작은 호텔에 짐을 풀고 여유로운 점심산책 후 글래스네빈 세미터리에 도착했다. 세미터리(Cemetery)를 한국말로 번역하면 '공동묘지' 정도 되겠지만, 유럽의 세미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 한국의 공동묘지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아마 유럽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말의 뜻을 금방 이해할 것이다. 한국의 공동묘지는 대체로 엄숙하고 정제되고 슬픈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반면, 유럽의 세미터리는 보다 밝고 일상적이고 창의적이랄까. 한국에서 묘지를 찾을 일은 명절에 선조를 찾아뵙거나 학교행사의 일부로 국군묘지에 참배하러 가는 정도지만, 아일랜드에서는 오래 된 교회나 건축물을 구경하듯 오래 된 묘지도 역사의 흔적으로서, 또 당시 예술과 문화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지고 여행자들의 발길을 끄는 관광 포인트가 된다. (물론 우리도 경주의 왕릉과 같은 문화관광상품이 있긴 하다!)
무덤 앞에 놓을 꽃으로 색깔 없는 흰 국화를 선호하는 우리와 달리 다양한 색깔이 두루 섞인 화려한 꽃다발을 선택하는 것이나, 장례식장에서 죽음에 대한 얘기보다 고인에 대한 행복한 추억을 농담까지 섞어 나누는 모습을 봐도 죽음을 대하는 모습이 우리와 참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우리가 신청한 가이드투어는 오후 3시반에 시작하는 마지막 세션이었다. 30분 정도 남은 시간 동안 글래스네빈 뮤지엄에서 글래스네빈 세미터리를 설립한 대니얼 오코넬(그렇다, 오코넬 스트리트 이름의 주인공, 더블린 중심에 우뚝 서 있는 동상의 주인공, 그 오코넬이다!)이 아일랜드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한 일들과 개인의 역사, 글래스네빈 세미터리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후루룩 훑고 나서, 아이리쉬 엑센트가 정겨운 가이드 청년을 따라 투어를 시작했다.
1828년에 지어진 글래스네빈 세미터리의 가장 큰 의미는 가톨릭 신앙이 지배적이었던 아일랜드에서 종교, 나이, 부의 정도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묻힐 수 있었던 최초의 세미터리라는 것이다. 현재까지 이곳에 묻혀 있는 사람의 수는 1.5백만. 현재 아이리쉬 인구가 겨우 5백만이니, 이 세미터리에 묻힌 자의 수가 이 땅 전체에 살아 있는 자의 3배나 된다는 얘기.
설립자 다니엘은 이 세미터리 사업 외에도 아일랜드와 유럽에 산재해 있던 다양한 차별의식과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설립자의 것답게 그의 기념비는 지역의 랜드마크처럼 세미터리 중앙에 탑의 형태로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지하로 난 문을 통해 탑의 지반으로 들어가면 대리석판으로 둘러싸인 그의 관을 직접 볼 수 있다. 그 한쪽 편에 동굴처럼 난 방에는 그의 가족과 후손들의 관이 쌓여 있었는데, 밖에서 밝은 빛 아래 볼 때 느껴지던 웅장함과 달리 어둠 속의 먼지 쌓인 관들은 쓸쓸하고 초라해 보였다.
다니엘 오코넬 외에도 찰스 스튜어드 파넬, 제임스 라킨, 마이클 콜린스 등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들의 무덤이 이곳에 있는데, 지금까지도 가장 사랑 받는 인물은 마이클 콜린스다. 세계 각지에서 그의 무덤을 찾아오는 사람들 덕분에 그의 묘비 앞에는 1년 365일 항상 싱싱한 생화가 가득하다고 한다. 꽃뿐 아니라 크리스마스, 그의 생일, 심지어 발렌타인데이까지 때마다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 정성이 그저 놀라울 뿐!(나는 실제 그의 얼굴을 모르는 관계로 영화 <마이클 콜린스>에 나오는 리암니슨의 멋진 모습을 떠올리며 잠시 감상에 젖었다.) 안타깝게도 결혼을 얼마 앞두고 죽음을 맞은 마이클의 무덤 가까이에는 그의 피앙새였던 여인의 무덤도 있었다. 어차피 이생의 사랑은 잠깐인 것을...두 사람이 전쟁 없는 하늘에서 영원히 사랑하며 행복하기를 기도했다.
우리에게 이름이 알려진 명사들 외에도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싸우다 죽은 어린 병사들의 무덤, 각종 질병과 가난으로 이름도 없이 죽은 사람들의 무덤, 그리고 최근까지도 이 아일랜드 땅에서 나와 함께 호흡했던 어떤 이웃들의 무덤이 그곳에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 땅에 머물렀던 절대적 시간의 기록과, 남은 자들의 기억으로 쓰여진 그리움의 문구, 그리고 그들에 대한 추억을 품은 꽃들이 저마다의 향기나 색깔로 그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나는 내가 죽어 이곳에 묻히는 상상을 했다. '1974. 2. 8- 0000, 아일랜드를 남자와 아일랜드를 사랑했던 한국 여자, 아일랜드 땅에 묻히다.'라고 쓰인 십자가 묘비 옆에 아주 붉고 싱싱한 장미 한 송이가 놓여 있는 상상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