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옥 안아주고픈, 너의 머리

아이리쉬 영화 나눔 2 <Frank>

by Maya Lee

어젯밤 내내 프랭크의 커다란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영화 <프랭크>의 주인공인 '프랭크'가 진짜 머리 위에 쓰고 있던 또 하나의 머리, 뒷통수까지 완벽하게 감춰지는 커다란 가면 말이다. 언뜻 보면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를 닮은 듯도 한데, 짱구가 가지고 있는 악동의 이미지와 달리 그의 얼굴은 아무런 정보도 담고 있지 않은 흰 종이 같다. 파란 눈에 까만 머리를 가졌으니 국적도 짐작하기 어렵다. 둥글고 커다란 타원형의 눈은 무언가에 놀라 겁을 먹은 듯도 하고, 오히려 겁을 주려는 듯도 하다. 그런가 하면 얇고 오똑한 코는 유약하면서도 고집스럽고, 살짝 벌어진 입술은 세상사람들의 관심과 질문에 대해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도, 침묵하고 싶은 듯도 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단순한 선과 색의 조합으로 탄생한 이 얼굴을 자꾸 보다 보면 오히려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 보면 슬픔에 잠겨있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 같고, 또 어떻게 보면 세상에 무관심한 은둔자 같기도 한.


이 커다란 머리를, 지난 주에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스티븐즈그린 근처에 있는 <Dublin's little museum>에서 '아이리쉬 영화 의상 특별전'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잡지에서 보고 벼르던 차였다. 당연히 내 목적은 하나, '프랭크의 머리'를 보기 위해서.

박물관 1층 특별전시관 한켠에 '프랭크' 영화포스터를 배경으로 그의 커다란 머리가 벽에 걸려 있었다.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원형의 머리는 영화를 보며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커 보였다. 전시장에는 그밖에도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의 왼발>, <프루토에서 아침을> 등등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영화들에 등장했던 의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오래 전 봤던 영화들 속의 인물들을 스크린 밖에서 만나는 듯 반가웠다. 하지만 그 무엇도 프랭크를 만났을 때만큼 반갑지는 않았다. 프랭크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그곳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 마야!
'안녕, 프랭크!'
'나를 직접 보려고 진짜 여기까지 왔구나.'
'응, 처음 널 영화에서 보고는 늘 네가 보고싶다고 생각했었어. 그러다 잡지에서 우연히 네가 여기 온다는 기사를 발견한 거야. 운명이란 거지!'
'근데 왜...왜 내가 보고 싶었다는 거야?'
'음 그건....네가 나이기도 한 것 같아서. 너를 보고 있으면 내가 더 잘 보일 것 같았어.'
'응, 그래.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가면속에서 더 자유로움을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나'로 규정되지 않고 창의적이고 용감하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 내 가면은 사실 나를 가리려는 게 아니야. 오히려 내 안에 있는 수많은 진짜 나를 표현하고 싶어서야. 아무 표정도 없는 얼굴이 사실 더 많은 표정을 담고 있거든...'


영화 <프랭크>를 처음 본 건 지난해 IFI 영화관에서 존과 함께였다. 그때 이 우습고도 슬프고, 엉뚱하면서 사랑스러운 영화에 푹 빠져 버린 우리는 늘 프랭크의 머리가 프린트된 티셔츠나 노트 따위를 찾아 헤맸지만 실패했다. 그러다 지난 주 라이트하우스 영화관에 갔다가 <프랭크> DVD를 팔고 있는 것을 보고는 존이 깜짝선물로 나에게 사줬다. 덕분에 나는 내가 원할 때면 언제든 프랭크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어젯밤 우리는 그 DVD를 틀었다. 1년만의 다시 보기. 영화의 촬영지였던 브레이의 익숙한 바닷가와 버려진 호텔, 내 발자취도 남아 있을 글렌달록 호수 주변의 그림같은 풍경이 더욱 자세하게 눈에 들어왔다. 다시 듣는 영화 속 음악들은 역시나 좋았다. 마구 갈겨쓴 낙서에서 발견한 시어 같은 가사들과 불안정한 듯 서정적인 멜로디를, 우리는 취한 듯 흥얼거렸다.
'프랭크!'
'응..'
'사람들이 억지로 네 가면을 벗기고 널 정신이상자 취급해서 나도 속상해. 그래도 난 네가 다시 전처럼 마음껏 노래하고 연주했으면 좋겠어.'
'이해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이제 가면이 없잖아. 그래서 두려워...'
'두려워하지 마! 가면이 없어도 넌 자유로울 수 있어. 왜냐면 넌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으니까. 남들이 미쳤다고 해도 상관마. 마음껏 노래해...'
프랭크의 머리를 생각하다 까무룩 잠이 들었던가, 나는 그의 커다란 머리를 품안에 꼬옥 안고 있었다. 아기를 재우듯 부드럽게 토닥이면서. ***

매거진의 이전글West Cork에서의 사흘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