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ntry의 폭우에 갇히다
눈을 떠 시계를 보니 거의 7시. 그런데 아직도 하늘이 흐리다 싶어 창을 여니, 꽤 두꺼운 빗줄기가 표정 없는 하늘을 뚫고 쏟아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숙소에 딸린 예쁜 정원을 산책하고 반트리 베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아래까지 산책하리라 생각하며 침대에 누워 게으르게 보낸 엊저녁이 조금 후회되었다. 때를 놓치면 영원히 갖지 못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어쩌면 내가 놓친 저녁 산책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터키 카파토키아에서 나흘 동안 바람이 잠잠해지길 기다렸지만 결국 열기구를 타보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던 그때처럼. 하지만 여행을 다니며 알게 된 것은, 알고 보면 여행이란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수많은 상실의 순간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상실'되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들이 다른 무언가로 채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실 '상실'은 인간 관점의 경험이지 시간 자체는 상실될 수 없는 성질의 것으로, 동일한 시간 안에서 하나가 사라지면 다른 하나가 그 자리를 채우기 때문이다. 따라서 잃었다고 생각되는 그 시간을 어떤 것으로 채워넣느냐, 혹은 어떤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느냐는 온전히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지난밤의 게으름에 대해 용서하고, 비오는 반트리 타운에서의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기로 마음 먹는다.
오늘의 아침밥은 게스트하우스의 젊은 안주인 데비가 만들어준 버섯볶음과 토스트, 요거트를 얹은 그레놀라와 향 좋은 필터커피. 가격 대비 훌륭한 아침식사다. 존이 있었으면 함께 수다를 떨며 이 음식들을 즐겼을 텐데... 문득 그와 함께 앉는 식탁이 그리웠다. 더욱이 아직 다른 손님들은 식당에 내려오기 전이라, 혼자 조용한 식당에 앉아 우걱우걱 토스트를 씹으며 비오는 정원을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쓸쓸해져, 나도 모르게 잔에 남은 커피를 서둘러 비워냈다.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마침 부엌에서 나온 데비가 '남편 조가 아침에 타운에 갈 일이 있는데 원하면 차를 태워주겠다' 했다. 안그래도 내리는 비를 보며 타운까지 어떻게 가나 걱정하던 차였는데, 그보다 더 반갑고 고마운 제안이 있을 수 없었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짐을 싸서 내려와 조를 기다렸다. 그런데 9시 좀 넘어 나간다던 그가 9시30분이 되어서야 어슬렁어슬렁 모습을 나타내더니,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아침밥을 먹으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을'의 입장인 나로서는 그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수밖에. 하지만 행운은 다른 곳에서 왔다. 막 체크아웃을 하고 나가려던 아이리쉬 노부인이 나를 보더니 "내가 마을까지 태워주련?" 하고 물어온 거다. 난 단숨에 '예스'를 외쳤고, 그 길로 친절한 할머니 차를 얻어 타고 무사히 반트리 타운에 도착했다.
오후 4시반 스키버린으로 가는 미니버스를 타려면 아직 반나절의 시간이 있었지만 문제는 날씨였다. 빗줄기가 잦아들 생각을 안하는데다 일기예보에서 이미 '하루종일 이럴 거'라고 엄포를 놓았으니 기대는 안하는 것이 좋았다. 마침 금요일, 광장에서 파머스마켓(아일랜드식 주말장터)이 열리는 날이었는데, 날씨 때문인지 장사를 시작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아쉬운 대로 올리브가게, 생선가게, 치즈가게, 유기농 야채가게, 빵과 수제잼을 파는 가게를 둘러보았다. 여행 중 마켓을 구경하는 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다. 마켓에서는 사람들의 포장되지 않은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직접 키운 자식 같은 농산물과 집에서 구운 빵과 케이크 같은 것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집밥 차린 식탁에 초대받은 것처럼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아무리 값싼 먹거리를 편리하게 살 수 있는 대형슈퍼마켓이 대세라 해도, 마을마다 이런 장터문화가 활발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 내가 참 좋아하는 아일랜드의 모습.
마켓을 잠깐 돌아보는 사이 운동화가 흠뻑 젖었다. 양말까지 질척거리고 발가락이 시려오기 시작했다. 한동안 비를 피하며 시간을 보낼 만한 카페를 찾아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마침 근처 카페 창가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얼른 그 카페로 들어가 그 여자의 빈 찻잔 앞에 앉았다. 곧 새로 내린 커피 한잔이 날라져 왔다. 아침을 먹은지 얼마 안되어 배가 안 고팠지만 따뜻한 버터냄새를 풍기는 크루아상을 보니 거부할 수 없어 크루아상도 한 개 주문했다. 통통히 부풀어오른 녀석을 한 입 베어물고 검고 뜨거운 커피도 한 모금. 읽을 책도 꺼내고, 노트북도 꺼내놓고, 그렇게 야금야금 오전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오후로 성큼 넘어갔지만 비는 여전히 세상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쏟아지고 있었다. 비에 발이 묶이니 버스를 탈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여간 지루하지 않았다. 동네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며 1시간, 또 다른 카페로 자리를 옮겨 점심으로 스프와 샐러드를 먹으며 1시간...그냥 여행이고 뭐고 집에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전기장판 깔린 침대 위에 눕고 싶은 기분이었다.
미니버스가 선다고 사람들이 알려준 곳 근처의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을 더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4시15분. 창밖을 보니 비가 폭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때까지 자리를 지킨 마켓 상인들이 철수를 하려고 하는데 바람까지 세게 불어 애를 먹고 있는 눈치다. 저 폭우 속에서 버스를 10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게 겁났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금 일찍 가서 기다리자 싶어 카페문을 나섰다.
오후 4시25분. 그 사이 서너 명의 사람들이 더 모였다. 그리고 잠시 후 작은 봉고차 한 대가 그 앞에 섰다. 나와 함께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두 그 버스에 타기 시작했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내가 타고 왔던 그 미니버스가 아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그 중 한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니, 스키버린으로 가는 차가 아니란다. 봉고차가 떠나고 나는 혼자 빗속에 남겨졌다. 시계를 보니 35분이 지나고 있었다. 뭔가 감이 안좋았다. 근처에 보이는 작은 사탕가게로 들어가 카운터에 있는 할머니께 물어보니, "스키버린 가는 버스는 보통 4시15분에 출발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하셨다. 스키버린이 아닌 다른 마을을 거처 나의 최종 목적지인 클로넬리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3시간이 넘게 걸린단다.
"꼭 오늘 클로넬리에 가야 하는 게 아니라면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는 게 어때? 아직 인포메이션 센터가 열었을 테니 거기 가서 숙소를 구해봐요."
망했다. 갇혔다. 할머니 말대로 클로넬러티로 가는 건 포기, 그냥 반트리에서 하룻밤 자고 내일 아침 버스 일찍 버스 타고 코크로 바로 가서 더블린 가는 기차를 타는 수밖에.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알려준 게스트하우스는 바로 광장 앞에 있었다. 빨간색 페인트를 입은 오래된 조지안 빌딩이었다. B&B라고 쓰인 낡은 간판이 바람이 불 때마다 삐걱거렸다. 벨을 누르니 60세쯤 되보이는 여자가 표정 없는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알려줬다고 하니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 말 없이 앞서서 층계를 올라갔다. 그리고 내가 묵을 방과 화장실을 보여준 후 열쇠를 건네주고는 다시 아무 말 없이 층계를 내려갔다.
나는 젖은 운동화와 양말, 바지를 벗어 던지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존이었다.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긴장감과 폭우 속에서 혼자 보낸 하루가 서러웠던가 보다. 괜찮다고 달래주며 내일 만나 맛있는 거 먹자는 말에 어린아이처럼 금새 마음이 말랑말랑하게 녹아내렸다. 남편이 있으니 참 좋구나, 생각했다.
침대에 반쯤 기대 창밖을 보니 얄밉게도 거짓말처럼 비가 그쳐 있었다. 회색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태양이 하루의 마지막 숨을 내쉬듯 길고 여린 햇살을 떨구고 사라졌다. 그리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반트리 베이의 푸른 수면 위로 거리의 조명등이 달덩이처럼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가슴이 먹먹하도록 아름다웠다. 하긴, 일정이 좀 어그러지면 어떠랴, 우연을 인연으로 즐기겠다고 뛰어드는 것이 여행인 것을.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행복해졌다. 그렇게 3일간의 코크서부 여행이 저물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