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주 특별한 방법 'Irish Wake'
존이 전화를 끊고 나서 말했다. “쿨리에 있는 친척분이 돌아가셨대.”
이름은 앤드류 맥도날드. 존의 외할아버지 누이의 아들이라 했다. 가난한 시골소년으로 태어나 스스로 돈 벌고 실력을 닦아 더블린 최고 의대를 졸업한 인재로, 우리나라 말로 하면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라 하겠다. 쿨리사람들이 아플 때 찾아갈 수 있는 쿨리지역의 유일한 의사였다고 하니, 특히 의사가 귀했던 옛날에는 쿨리사람들에게 대통령보다 중요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마침 다음닐 차를 고치러 쿨리에 내려갈 계획이었던 우리는 내려간 김에 맥도날드씨의 웨이크 예식에 참석하고 오기로 했다. 아일랜드는 우리나라와 달리 장례식을 치르기 전, 고인의 집에서 친척 친지와 이웃, 친구들이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데, 이것을 웨이크(Wake)라 부른다. 이미 생명은 꺼졌지만 아직 육신의 몸은 썩지 않은, 그래서 사람들이 기억하는 고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기회이자 고인에 대한 서로의 추억을 나누면서 땅에 묻기 전 먼저 가슴에 묻는 절차라고나 할까. 부고를 듣자마자 차디찬 병원 영안실로 직행해야 하는 우리 식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따뜻한 것 같다.
한 가지 망설여지는 건 죽은 사람을 봐야한다는 것이었다. 웨이크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 속에서나 봤지(그것도 어떤 배우가 죽은 척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실제로 사람 시신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자꾸만 섬뜩하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시신을 쳐다볼 수 있을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신을 보는 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우리 어머니가 암이라는 걸 알려준 사람도 그분이었어.” 가는 차 안에서 존은 맥도날드씨에 대한 한 가지 기억을 들려주었다. 그의 가족이 호주에 이민 가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을 때 존의 어머니가 계속 아프셨다. 현지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봤지만 정확한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 “어머니는 당신이 세계 최고의 의사라고 믿었던 맥도날드씨에게 현지 병원에서 나온 모든 검사결과를 우편으로 보냈어. 그리고 답장이 왔는데 암인 것 같다며 자신의 소견서를 그곳 의사에게 다시 보이라고 한 거야. 결국 어머니의 병명은 골수암으로 판명됐어. 결국 회복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나에게는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호주 개척시대. 기근에 시달리던 수많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새로운 꿈을 찾아 떠났던 거대한 나라 오스트레일리아. 도착하자마자 아프기 시작해 몇 년을 심하게 앓다가 타국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셨을 그의 어머니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득하게 그려졌다. 아직 살아있다면 내 시어머니가 되었을 한 여자. 그리고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존의 형제자매들. 아직 그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한국도 아일랜드도 아닌 또 다른 땅에도 내 인연의 끈이 닿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점심때쯤 쿨리에 도착해 펍에서 파슬파슬한 쿨리 감자와 샐러드를 먹고 바닷가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쿨리에 내려올 때면 늘 그렇듯 존은 생각이 가득한 표정으로 먼 바다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쿨리에만 오면 과거에 대한 기억들이 복잡하게 밀려와서 기분이 이상해져.” 고향 친구들을 만나 수다와 웃음을 멈출 새 없다가도 집에 돌아갈 때면 침울한 표정으로 말이 없어지는 그를,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존의 모습은 늘 ‘해피’한 사람이다. 사람한테 먼저 말 거는 거 좋아하고, 웃음소리도 호탕하고, 뭔가 일 만들어 추진하는 거 좋아하는 활달한 사람. 내가 처음 만났을 때의 존의 모습도 그랬다. 그래서 나랑 많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도 나와 비슷하게 예민한 감정의 촉수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밝은 모습 못지않게 어두운 심연이 그에게 있다는 것도. 그는 지금 그 깊은 감정의 바다 어딘가에 있는 듯했다.
잘 가꾼 정원이 딸린 정갈한 2층집. 고인의 집은 주변의 낮고 소박한 아일랜드 시골집 사이에서 눈에 띄게 고급스러웠다. 수십 킬로미터 전부터 ‘앤드류의 웨이크 퓨너럴’이라 쓰인 방향 표지판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던 사실만으로도 쿨리 커뮤니티에서 고인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색색의 꽃과 다양한 모양의 나무들이 아름답게 아우러진 정원을 가로질러 입구로 갔다.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집안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고인의 가족들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 목소리를 낮추어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90세가 넘도록 장수한 어른을 보냈으니 호상인 데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친척들과 회포를 푸느라 두런두런 반갑고 들뜬 분위기였다. 식탁에 마련된 샌드위치와 쿠키, 과일, 차와 커피 등의 다과를 자유롭게 즐기며 담화를 나누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차갑고 엄숙한 병원 장례식장의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저쪽 방에 계신대. 인사드리러 가자.” 존이 내 손을 잡고 이끄는 방으로 갔다. 고인의 쓰던 방 한 가운데 관이 놓여 있고, 그의 부인이 고인의 모습을 보러 들어오는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눈시울이 발갛게 젖은 그녀가 우리도 온화한 미소로 맞아 주었다. 존이 먼저 고인의 관으로 다가갔다. 그는 고인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짧은 기도를 드린 후 그의 손을 다독이고는 돌아 나왔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관 앞으로 다가가 용기를 내어 그 안에 잠자듯 누워 있는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는 돌아가기 얼마 전 내가 보았던 나의 외할머니처럼 작고 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다. 온기가 빠져나간 그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푸르스름했고, 포개어진 그의 손은 바짝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 뻣뻣하게 굳어 있는 사람의 육체. 미처 만져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저 어설프게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 채 그의 영혼이 편히 안식하기를 기도했다.
영혼이 떠난 사람의 육체는 생각보다 더 많이 초라하고 슬펐다. 쿨리 유일의 의사였던 그는 명성과 많은 자녀, 아름다운 집을 남긴 채,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차갑게 식은 그를 곁에 두고 온기를 가진 사람들이 그를 추억하고 있는 시간. 과거의 현재가 공존하고, 허무와 새로운 꿈이 교차하는 그 낯선 공기가, 그곳을 떠난 뒤에도 오래도록 잔향처럼 떠돌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