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서는 스콘을 사랑할 수밖에
영국인들이 에프터눈티와 함께 즐겨 먹는 빵으로 알려진 스콘.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베이커리나 커피숍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종류 중 하나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1500년대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되어 같은 문화권의 영국, 웨일즈,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베이커리로 발전했다고 한다. 스콘은 퀵브레드(Quick Bread)라고 부르는 베이커리 종류에 들어가는데 기본 재료는 밀가루, 물, 버터, 소금, 설탕 정도로 간단하다. 요즘에는 플레인 스콘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스콘을 볼 수 있다. 블루베리나 라즈베리, 건포도 등 건과일을 넣은 프룻스콘이 흔하고, 초콜릿이나 시나몬을 넣거나 통밀을 사용해 굽거나 치즈나 양파를 넣어 식사대용식으로 사보리(savoury)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양은 삼각형, 사각형, 원형이 있는데, 아일랜드에서 가장 흔한 것은 아이들 주먹 크기의 둥그런 원형 스콘이다. 머핀처럼 정확하게 틀 모양대로 나오지 않고 손으로 빚어낸 느낌이 울퉁불퉁 살아 있는데 내 눈엔 그래서 더 맛있어 보인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스콘을 커피와 함께 간단한 아침으로 먹기도 하고, 식사와 식사 사이 차나 커피를 마실 때 간식처럼 곁들이기도 한다. 스콘도 나름 먹는 방법이 있는데, 보통 뚜껑 부분과 밑바닥 부분이 나뉘도록 가로로 두 덩이 내어, 자른 면 위에 버터와 잼을 발라 먹는다.
스콘은 비스킷과 빵의 중간 정도로 아주 부드럽지도 않고 딱딱하지도 않다. 맛도 디저트 케이크처럼 아주 달지도 않고 식빵처럼 밋밋하지도 않다. 유럽의 진한 커피와도, 가벼운 밀크티와도 잘 어울리는 달기와 질감.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제 입맛대로 끼니로도 삼고 식사 후 디저트로도 삼는가 보다.
아일랜드에 오기 전에도 가끔 출출할 때 카페에서 커피와 스콘을 사먹곤 했지만 일부러 스콘을 찾아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아일랜드에 온 뒤로는 자꾸만 스콘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이른 아침 카페에 들어섰을 때 커다란 바구니에 당일 구워낸 신선한 스콘이 가득 담겨 있는 모습을 보면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스콘 하나!'를 외치게 되는 거다.
사실 처음 아일랜드에서 스콘을 보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어릴 때 KFC에서 사먹던 400원짜리 비스킷이었다. 크기나 반으로 짝 쪼개지는 모양새도 그렇고, 겉은 비스킷처럼 바삭하면서 속살은 폭신한 것도 비슷했다. 따뜻하게 데운 빵 위에 버터와 딸기잼을 발라 한 입 물면 밀가루와 버터의 고소함, 잼의 달달함이 한데 어우러지며 입안에서 뭉게구름처럼 부드럽게 내려앉는 유혹적인 맛까지 꽤 비슷했다. 나중에 들으니 스콘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버터 대신 쇼트닝을 넣어 더 부드럽고 바삭바삭한 질감의 비스킷으로 바뀌었다고 하던데, 그러니까 내가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에서 맛본 비스킷도 아마 스콘의 사촌쯤 되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아무리 평범한 음식이라도 그 음식의 원래 고향에서 먹으면 ‘전통’이라는 의미를 타고 낭만이 생기는 법이라, 아일랜드에서 아일랜드 사람들처럼 스콘 하나를 곁에 두고 차나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내가 아일랜드에 살고 있다는 익숙해진 사실이 다시 신선해지곤 해서 좋았다.
그렇다고 스콘의 팬이 된 건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흰 밀가루와 버터가 주재료인 스콘을 먹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마음 한편에 있었다. 건강에 별로 좋지 않은 음식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8년 전쯤 채식을 시작하고, 유기농식품과 건강식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조금씩 깊어지면서 생긴 변화였다. 즉, 스콘이 사실은 칼로리만 높고 영양가는 없는 탄수화물 덩어리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나니, 18세기 어느 오후 영국 황실의 우아한 거실에서 귀부인들이 즐기던 ‘에프터눈티와 스콘’의 낭만을 선뜻 껴안기 힘들어진 것이다.
처음 채식을 시작하면서 힘들었던 점도 좋아하던 고기를 끊는 것이 아니라 음식에 얽힌 낭만을 잃는 것이었다. 나름의 인식적 계기가 있긴 했지만 어떤 대단한 신념이나 운동성을 가지고 채식을 시작한 건 아니었기에, 내가 채식을 선택함으로써 잃어야 하는 감성적 가치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가령, 뒷마당에 둘러 앉아 삼겹살을 구워먹는 재미라던가, 바다에서 막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으로 회도 뜨고 매운탕도 끓여 배 위에서 함께 먹는 선상의 낭만, 커다란 감자탕 냄비에서 건져낸 돼지등뼈와 감자를 안주 삼아 함께 소주잔을 기울일 때 생겨나는 공감대 같은 것. 혹은 한여름에 먹는 차가운 냉면이라던가, 한겨울 정종과 함께 먹는 뜨끈한 오뎅탕 같은 계절의 낭만. 특히 어린 시절 엄마가 일요일 점심 별미로 해주시던 담백한 유부멸치국수, 아빠가 산에서 끓여주셨던 꽁치김치찌개처럼 특별한 감성과 닿아 있는 음식들을 더 이상 먹지 않기로 결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허전하고 쓸쓸했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벌써 8년. 그 사이 식습관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내 나름의 기준이 생겼는데, 그건 ‘건강한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되 스트레스 받을 정도로 까다롭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와 관련된 기억 하나. 한창 채식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할 즈음 호주로 배낭여행을 갔었다. 같은 투어버스에 탔던 한 남자가 채식주의자였는데, ‘베지테리언 메뉴’라 해서 시킨 음식을 한 입 베어 물다 베이컨 조각이 든 것을 발견하고는 토할 듯 뱉어내며 막 화를 냈다. 그 바람에 같이 있던 친구들까지 당황하고 불편해 했는데 그 모습이 별로 보기 안 좋았다. 채식을 하면 심성도 좀 더 착해지고 평화로워져야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난 어쩌다 고기 국물을 들이마시는 실수를 하더라도 죽을 일 아니니 평화를 잃지 말고, 가끔은 내 자신에게 버터와 초콜릿이 듬뿍 들어간 고칼로리 디저트나 싸구려 감자튀김도 기분 좋게 허락해 주기로 한 것이다.
이제 다시 스콘 이야기. 그래서 아일랜드에 온 뒤 ‘아일랜드 문화’를 즐기는 마음으로 가끔 커피나 차와 곁들여 스콘을 먹곤 했는데, 결혼한 후 존이 요리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종종 존이 만든 스콘을 먹을 일이 생겼다.
“자기 줄려고 내가 뭐 가지고 왔나 봐봐. 짠~!”
그가 가방에서 꺼낸 건 어마어마한 크기의 스콘이었다. 보통 스콘 크기의 두 배쯤 되는 자이언트급 크기의 스콘을 내밀며 그가 킬킬댔다. “스태프들이 보고는 ‘뉴클리어 스콘’이라 불렀어.” 마침 한창 북한의 핵 발사 문제가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을 때였다.
볶고 튀기고 삶는 건 다 잘 하지만 빵이나 케이크 굽는 베이킹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존이 난생 처음 만들었다는 스콘. 아침 일찍 새로운 일터에 도착하자마자 헤드쉐프가 부탁한 것이 스콘 만들기였다나.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차마 만들어 보지 않았던 말을 하지 못하고 “문제없다!”고 ‘뻥’을 친 뒤 그가 알고 있던 베이킹 기본상식을 동원해 스콘을 빚었다. 다행히 베이킹믹스를 사용하는 곳이라 물과 버터만 적당히 첨가해 잘 섞으면 되었다. 일단 오븐에 노릇노릇하게 구워 냈더니 그럴 듯해 보였다.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나갔어. 이 정도면 맛도 나쁘지는 않았다는 뜻이잖아?”
하긴, 맛을 떠나 똑같은 돈 내고 어제 먹은 스콘보다 2배 큰 스콘을 먹게 되었으니 오히려 기분 좋다 했을 것 같다.
조심스레 랩을 벗기고 손으로 모퉁이를 뜯어내 먹어보았다. 흐흠, 나쁘지 않은 걸?, 이라고 내가 말해줬다. 실제로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맛있었다. 그런데 보통의 스콘이랑 맛이 좀 다르다. 덜 달고 버터 풍미가 더 강했다. 단단한 크루아상 같은 맛이랄까? 존도 한 입 맛보더니 ‘버터를 많이 넣은 것 같다’고 했다. 어쨌든 그의 식대로 만든 첫 번째 스콘 만들기는 꽤 성공적으로 보였다. 물론, 나는 남편이 직장에서 가져온 수확물을 행복한 마음으로 남김없이 처리해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언제나처럼 존이 만들어내는 각종 소음에 잠을 깨니, 그가 차를 끓이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굿모닝, 베이비! 들어봐, 방금 만든 새 노래야. Scone lovers of the world unite~ Scone lovers of the world unite~” 그가 엄청난 영감을 받은 표정으로, 이번엔 박수까지 치며 노래를 이어 불렀다. “I'm going home tonight~” 매일 아침 엉뚱한 가사로 곡을 지어 하루 종일 그 노래만 반복하는 특이한 버릇. 그동안 그가 그렇게 지은 노래들만 모아도 앨범 한 장쯤 나올 것 같다.
어쨌든 그 날부터 재미 삼아 날 ‘Scone lover’라고 부르기 시작하더니, 스콘을 만드는 날마다 “널 위한 스콘”이라며 한두 개씩 챙겨오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아무 것도 들지 않은 플레인 스콘, 어떤 날은 건포도나 크렌베리가 들어 있는 스콘, 어떤 날은 홀밀로 만든 브라운 스콘…. 건강을 생각하면 솔직히 매일 먹고 싶지 않은데, 남편이 직장에서 가져와 건네주는 동그란 스콘이 나름 알콩달콩한 사랑 표현이다 싶으니 그만 가져오라는 말도 못했다.
사건은 한 달쯤 후에 터졌다. 남편 일이 오후 일찍 끝나는 날이라 브레이 해변에서 만나 산책 좀 하다가 집에 같이 가기로 했다. 그런데 저만큼 다가오는 존의 낯빛이 안 좋았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언제나처럼 처음에는 ‘노우 프라블럼’이라며 둘러대지만, 결국 끝까지 숨기지 못하고 털어놓는 게 존이다.
“그게....뭐 별 건 아닌데, 좀 웃긴 일이 있었지. 스콘 만들면서 약간 실수를 했는데 엄청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눈을 부라리더라구, 글쎄 그 매니저가.”
하지만 눈치를 보니 아주 작은 실수는 아닌 것 같았다.
“아, 사실 스콘 반죽을 만들 때 뭘 빠트렸는지 모르겠는데 스콘 맛이 이상하게 밍밍한 거야. 다른 스태프들은 그냥 웃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는데 그 폴란드 여자가 확 짜증을 내더라. 결국 내가 만든 스콘은 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지.”
아, 이거 얘기가 점점 심각해진다. 농담처럼 얘기하려고 넘기려던 존의 무드도 덩달아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아무래도 맥주 한 잔 해야겠다.”
금주 3주째 들어섰던 존이 결국 금주 일시정지를 선언하고 차가운 맥주를 시켜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 일로 스트레스가 컸구나, 불쌍한 내 남편. 파인트 두 잔을 연거푸 마신 후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존의 기분은 영 나아질 생각은 안했다. “아, 왜 그렇게 멍청한 실수를 했지?” 하고 자책하다가 “그만한 실수로 날 초짜 취급하다니!” 하며 씩씩대기를 반복하던 존은 지친 몸과 마음을 끌고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은 그 회사에서 일하는 마지막 날. 잔뜩 긴장해서 출근했던 존은 다행히 안도한 얼굴로 집에 왔다. “보란 듯 끝내주게 맛있는 타이커리를 만들어주고 왔지!”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그날부터 며칠 간 배정 받은 다른 회사로 출근했던 존이 잔뜩 열 받은 표정으로 집에 왔다. “그 매니저가 에이전시에 컴플레인 메일을 보냈대. 믿어져? 오늘 내 담당 에이전트가 전화해서 말하더라고!” ‘일단 전달은 해야 해서 전화했지만 큰 문제 아니니 걱정 말라’고 에이전트가 말했다지만 존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일로 인해 에이전시 일이 떨어져 나갈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존의 기분이 가라앉아 있으니 나도 덩달아 우울해졌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담당 에이전트에게 문자가 왔다. 문자를 읽는 존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번 주도 풀로 일 줬어. 내가 너무 과장된 걱정을 했나봐.”
일단 그것으로 스콘 사건은 마무리되었고, 존은 다시 예전처럼 아침마다 즉석에서 지은 새로운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후로 더 이상 스콘에 대한 노래는 부르지 않았고, 스콘을 집에 가져오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도 더 이상 스콘을 자주 먹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 없게 되었다. 그저 조용히 스콘을 다시 아일랜드 문화체험 목록에 올려놓고, 가끔 ‘덜 건강한 음식’을 허락하는 즐거움을 누리면 되는 거다. 따끈한 스콘을 반으로 열어 버터 한 조각과 달달한 잼 한 숟가락 얹고, 부드러운 속살에 스며들 때쯤 한 입, 그리고 진한 커피 한 모금,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