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서 찾은 요가의 즐거움
요즘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일이 생겼는데, 바로 요가 클래스에 가는 것이다. 아침에 스페인어 학원에 가는 날이나 주말에 남편과 아침일찍 함께 움직일 때를 빼고는 매일 아침 기차를 타고 던리어리에 있는 요가 스튜디오에 간다. 그게 뭐 대수냐 할 지 몰라도 나에겐 신기한 변화인데, 내가 요가를 워낙 싫어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난 번 한국에 갔을 때도 요가에 푹 빠진 친구가 '요가 해보니 넘 좋아, 요가해 요가해' 하고 노래를 불러도 '으응...나도 해봐서 알아..' 하고 얼버무리며 넘어가던 나인데.
사실 유럽,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요가와 필라테스가 가장 인기 있는 생활운동으로 떠오른지 오래. 한국에 있는 내 지인들 대부분이 요가학원에 다닌 적 있거나 다니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나도 그 트렌드를 타고 6개월간 요가스튜디오에 다닌 적이 있다. 다이어트에 좋다는 이유로 한창 핫요가가 유행할 때였는데, 솔직히 나도 명상이나 몸의 균형보다 다이어트 효과와 몸매 만들기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다녔던 요가스튜디오가 최소 3개월 이상 등록해야 회원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라 '에라 모르겠다!' 하고 6개월 끊어서 (나름) 열심히 다녔다. 그렇게 6개월 후, 살이 빠지거나 몸매가 예뻐진 건 잘 모르겠는데 한 가지 분명히 알게된 건 요가가 내 적성에 영 안 맞는다는 사실이었다.
한 마디로 운동하는 재미가 안 붙었다. 안 벌려지는 다리를 억지로 찢어대고 안 굽혀지는 허리를 납작하게 접은 채 버텨야 하는 괴로움이 너무 컸다. 요가가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고 하던데 나는 오히려 요가하다가 스트레스가 더 쌓일 지경이었다. 한국사회의 치열한 경쟁 분위기는 요가 스튜디오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옆 사람의 몸이 낭창낭창 휘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해서라도 비슷하게 해보려는 심리가 발동해서 뻣뻣한 자신의 몸뚱어리에 스스로 고문을 가하게 된다. 또 보통 50분~1시간 안에 많은 동작을 하려다 보니 수업도 속전속결, 강의 스타일도 스파르타식이다. 두 다리를 앞으로 뻗어 모으고 허리를 굽히는 스트레칭을 할 때 강사들이 도와준다고 허리 위에 올라타기도 하고, 동작마다 "버텨요, 조금 더 버텨!" 하고 소리치는 통에 무리하게 버티다 나중에 심한 근육통을 앓기도 했다. (한국의 모든 요가스튜디오가 다 비슷한지는 모르겠다) 날씬한 몸매의 요가 강사들이 패션쇼하듯 매일 요가복을 바꿔가며 몸을 고무판처럼 요리저리 접는 모습을 부러운 마음으로 감상하다 집에 돌아오곤 했던 것이 내가 한국에서 경험한 요가수업의 기억.
그러던 내가 아일랜드에서 다시 요가 스튜디오를 기웃거리게 된 건, 만성적으로 앓아오던 목과 어깨의 통증이 심해지면서부터다. 노트북과 책 때문에 내 어깨는 무거운 백팩으로부터 자유로울 날이 없었다. 이곳에선 몇 년 전 더블린의 라스마인이란 동네에 잠깐 살 때 근처 요가스튜디오에 한달 다녔던 게 전부. 그러다 두 달 전 던리어리를 어슬렁거리다 우연히 지금의 요가 스튜디오를 발견하고는, 일단 시작해 보자 맘 먹고 한달 멤버쉽을 끊었다. 그리고 그날 바로 첫 수업에 참여했다.
참 이상한 수업이었다. 수업 시작까지 시간이 좀 남아 혼자 스튜디오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가무잡잡한 피부와 곱슬머리의 여자가 들어오더니 '하이! 왓츠 유어 네임?' 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긴장을 풀어주는 다정다감한 인사가 반갑고 고마워 나도 한껏 활달하게 인사를 했다. 그녀의 이름은 클라우디아. 아랫배가 적당히 나온 통통한 몸매에 세컨핸드샵에서 산 것 같은 낡고 헐렁한 티셔츠(나이키도 아디다스도 아닌)를 입은 중년의 아줌마 같았는데, 그녀가 바로 나의 요가강사였다!
요가강사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완전히 깨놓은 그녀가 수업을 시작했다. 'Yoga All Levels' 수업이다 보니, 익숙한 동작들도 있고 따라하기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동작 하나하나 공들여 설명해주는 클라우디아의 수업 진행이 단번에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날 감동시킨 것은 한 동작 한 동작 진행할 때마다 하는 그녀의 말이었다. "Don't force, be comfy...take your own pace, follow your own breathing.." 무리하지 마, 네 자신의 호흡을 따라 움직여...친한 친구에게 속삭이듯 조곤조곤 말해주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 호흡의 흐름과 몸의 느낌에 집중했다. 찢어질 듯한 아픔을 억지로 참아야 하는 순간은 없었다. 리듬을 느끼며 따라가니 조금 힘든 동작도 재밌었다. 더구나 고개를 들 때마다 눈 앞에 펼쳐지는 기막힌 풍경이라니! 던리어리의 푸른 바다와 하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나와 함께 호흡하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75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요가수업의 마지막 순서인 '샤바사나'(시체처럼 모든 힘을 빼고 누워 있는다) 자세로 누워 있는데, 클라우디아가 다가와 '블랭킷?' 하고 물어본다. 스튜디오 한편에 담요가 쌓여 있는 걸 봤던 기억이 났다. 예스! 그녀가 담요를 가지고 오더니 조용히 내 몸에 꼭 맞게 덮어주며 말했다. "Rest...comfy.." 아,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해지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어릴 때 소파에서 잠이 든 내 작은 몸 위로 느껴지던 담요의 포근했던 느낌..., 잠결에 들리던 엄마의 따뜻한 목소리가 생각났다. 샤바사나 자세를 취하는 3분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난 정말 잠에 빠져드는 줄 알았다. 그때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가장 평화롭고 달콤한 잠에. 그 특별했던 첫 수업 이후, 요가하러 가는 시간이 너무 즐겁다. 어쩌면 꼭 요가를 좋아하게 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운동을 자유롭고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기 때문일 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