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일기를 들춰보며
"이제 여름은 다 갔네..."
이틀째 그치지 않는 빗줄기를 보며 존이 한 마디 한다. 무심코 던진 그의 한 마디에 와락,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 5시만 되면 환해지던 방안이 7시가 되도록 우중충하군. 누가 아일랜드는 여름이 달랑 일주일이라고 하더니 오늘은 서늘하다 못해 쌀쌀한 바람까지 분다. 날씨 탓인지 길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도 낮고 흐리다.
그런데 예전에 쓴 글들을 정리하다 작년 8월초에 쓴 글에서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때도 존이 똑같은 얘기를 했고, 우린 그렇게 가는 여름을 아쉬워했다는 것. '겨우' 1년 전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벌써' 1년 전의 이야기이기도 한 글속에 느낌이 흐릿해진 1년 전 내 삶이 있었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있었다. 그때 내 삶에 존재했던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
병상 투병 중인 아빠를 보러 1년에 두 번씩 한국을 오갔었다. 2년 전 이미 '가망 없다'는 진단을 받은 뒤였지만, 아빠의 숨이 붙어 있는 한 희망을 갖고 싶었고, 아빠와의 이별을 감지하면서도 끝까지 놓을 수 없었다. 아빠는 결국 올해 3월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내가 한국에 갔다 아일랜드로 돌아온지 겨우 1주일이 지났을 때라 다시 한국에 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결국 아빠의 장례식을 지키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지구 반대편 외국살이가 가슴 미어지게 슬프고 서러웠다. 아빠의 장례는 '수목장'으로 치렀다.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의 산에 있는 어린 산벚꽃나무에 아빠 이름의 팻말을 달았다. 이제 세 달만 있으면 그곳에서 쉬고 있는 아빠를 만나러 간다. 슬픈 만남이겠지만, 그래도 기다려진다.
아래는 1년 전 여름, 아빠가 아직 내 곁에 계셨을 때 적어두었던 이야기다.
어느덧 8월에 들어섰다. 아일랜드는 아직 찬란한 여름이다. 종종 갑자기 날씨가 돌변해 가을자켓을 잔뜩 껴입고도 추위에 떨다 들어오는 날도 있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미안하다는 듯 눈부신 햇살을 선물로 안겨주곤 한다. 나는 지난 달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번달엔 지난 6월 한달 다녔던 영어학원의 캠브리지시험반에 다시 한달 등록했다. 캠프리지 시험을 치르는 것(물론 통과하는 것을 목표로), 스페인어 기본기를 닦는 것을 남은 해 동안의 목표로 삼았다.
한국은 장마가 지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찜통 같은 불볕더위 속에 아빠 계신 병원에 날마다 오가실 엄마를 생각하니 안쓰럽고 건강도 걱정이다. 이곳, 지구 반대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루 건너 한 번씩 엄마한테 전화를 하는 것과 기도밖에 없지만, 시공간을 초월해 일하시는 분이 있다는 걸 믿기에, 그리고 그분은 24시간 날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멀리 있다는 게 슬퍼질 때마다 그분께 기도하며 힘을 낸다.
그래도 세 달만 더 있으면 아빠를 볼 수 있다는 게 조금 안심이 된다. 10월 중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루프트한자의 스페셜오퍼가 11월부터 적용되는 바람에 일단 11월 2일 출발, 12월 13일 돌아오는 표를 샀다. 아빠가 그때까지 조금이라도 건강해진다면, 아니 더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바랄 게 없을 텐데. 사실 종종 겁이 난다. 아빠가 그 사이 돌아가시실까봐, 죄 많은 딸과 그 딸이 아비에게 미처 못다한 말만 덩그러니 아일랜드에 남아버릴까봐.
엄마와 통화할 때 아빠가 더 안좋아지셨다는 말이라도 들은 날이면, 그 밤 바싹 말라 뼈만 남은 아빠가 꿈에 나와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곤 한다. 아빠가 뇌수술을 받고 혼수상태로 병원에 누워 계신지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처음 6개월은 깨어나실 거라는 희망으로 버텼고, 그 이후로는 못 깨어나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싸우며 버틴다. 매일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아빠가 생각나는데, 그때마다 아빠가 보고싶은 마음과 그날 하루 아빠에 대한 기도보다 뭐 맛있는 거 먹을까 뭐하고 놀까 생각하며 보낸 것에 대한 미안함이 되섞어 마음이 복잡해지곤 한다.
8월이 시작되고 일주일. 아침에 일어나 거실 창문을 열고 아침 공기를 마시던 존이 여름의 종식을 선포했다.
'공기가 다르네. 차갑다. 여름이 끝났구나, 이제.'
나야 한여름에도 종종 춥다고 투덜대는 사람이지만, 추위를 잘 안타는 존이 이렇게 말할 땐 진짜다. 짧고 찬란했던 아일랜드의 여름과 정녕 이별할 시간이 온 것이다.
하지만 '아일랜드에는 하루에 4계절이 있다'는 말처럼, 계절을 막론하고 하루 사이 날씨가 수시로 변하는 나라다 보니 '찌는 듯한 여름' 혹은 '지붕을 뚫을 듯 쏟아지는 장마비'와 같은 극적인 계절의 기억은 별로 주어지지 않는다. 얼마 전 학원 친구 지선이가 '한국의 소낙비 소리가 그립다'고 했는데, 듣고 보니 나도 그랬다. 그렇게 허구한 날 비가 오는데도, 쏴아- 하고 묵은 쳇증을 날려주는 빗소리나 후두둑후두둑 창문을 두드리는 정감 있는 빗소리를 들은 기억은 없다. 그러고 보면 내가 올해 느껴온 계절의 변화는 한국에서 엄마의 목소리를 통해 건너온 것이기도 했다.
"엄마랑 올랐던 아파트 뒤 뒷산 있지? 오늘 아빠 병원 갔다 와서 점심 먹고 운동 삼아 올랐는데, 벗꽃이 말도 못하게 흐드러졌더구나. 등산객이 얼마나 많던지..!"
"한국은 날씨가 많이 더워졌어. 낮에 쓰레기 버리러 10분 나갔다 왔는데 땀이 줄줄 흐르더라. 지금 막 개운하게 샤워하고 저녁 준비 하려는 참이다."
"아직 낮엔 많이 덥지만 그래도 해지고 나면 바람이 선선한 게, 이제 여름도 끝물이지 싶구나."
엄마가 경험하는 계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내가 기억하는 한국의 봄을, 여름을, 그리고 가을의 문턱에서 기웃거리는 여름 끄트머리의 풍경과 느낌을 떠올리곤 했다. 그러다 보면 각 계절과 연결된 별 것 아닌 기억들까지도 아련한 그리움이 되어 가슴을 쓸고 갔다.
오늘은 아직 남아 있는 한낮의 여름햇살을 위해 반팔티를, 보기와 다르게 강한 햇살 아래서도 서늘한 아일랜드의 여름공기를 위해 후드점퍼를, 그리고 근래 완연하게 차가워진 바람에 대비해 얇은 재킷을 덧입었다. 이렇게 3중 장치에, 당연하게 우산까지 챙겨넣고 존의 출근길에 따라나섰다.
차 속에서 엄마한테 전화를 드렸더니 상추를 씻고 계신다 했다. 그런데 언니한테 단단히 삐치신 눈치였다. 공연 잡혀 바쁘다고 아빠 병원에도 한동안 안오더니 이젠 여름방학 맞은 아들내미 데리고 놀러다니느라 바빠 전화 한통 없다며, 서운해서 울먹울먹 하신다. 엄마 마음 달래느라 슬쩍 언니 흉보는 거 거들다가 전화를 끊고 나니, 엄마 때문에 가슴이 콕콕 쑤시고 눈가가 시큰거렸다. 언니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가까이 있기 때문에 더 잊기 쉽고, 소원해지기 쉬울지도 모른다. 아이 키우며 일도 하는 언니에겐 내가 미처 상상할 수 없는 복잡하고 바쁜 세계가 있을 것이다.
내가 아빠를 매일 생각하고 엄마한테 자주 전화를 하는 게 아빠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거나 더 효녀여서는 아니다. 어쩜 단순히 멀리 떨어져 살아서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장맛비 소리가 상상 속에서 추억의 음표가 되듯, 아빠에게 서운하고 상처받았던 일들은 점점 희미해지고 정겨운 기억들은 불씨처럼 다시 따스해지는 것.
내 삶은 오늘도 이렇듯 아일랜드의 일상 속에서 계속된다.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이 땅에서의 생명, 그리고 아빠와의 인연을 생각하고 있을 때 존이 블랙락 맥도날드 앞에 차를 세웠고, 그와 굿바이 키스를 하고 차에서 내렸을 때 선득, 여름의 끝을 알리는 바람이 종소리처럼 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