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리움의 온도 차이- 몸이 아플만큼 그리웠을까
시간은 늘 쏜살같이 내 품을 벗어난다. 난 한번도 내가 원하는 속도로 흘러간 적이 없다. 정해진 일상의 규칙 또는 습관을 따라 하루를 지날 때도, 한곳에 오래 머물며 게으르고 여유로운 여행을 할 때도, 시간은 늘 내 마음의 바람보다 빠른 속도였다. 무엇보다 시간의 속도가 빨라지는 때는 내가 아일랜드로 이사간 뒤 가끔씩 한국에 머물러 올 때다. 올 때마다 최소 한달이 넘는 시간을 지나다 가지만, 늘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기에, 보고싶은 사람들을 다 보기에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스무 날에 가까운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 한국에 도착한 이후, 엄마와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집에 좀 일찍 들어갔던 며칠을 빼고는 하루도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일단 절친들에게 전화로, 문자로, 한국에 왔다는 보고를 하고 만날 날과 시간을 정하며 바쁘게 스케줄을 잡아나갔다. 아일랜드에서도 카톡이나 메신저로 종종 연락을 하며 지내는 친한 친구들은 물론이고, 예전에 일할 때 알고 지냈거나 오래전 이런저런 모임을 통해 만나던 사람들 얼굴이 하나씩 불쑥 불쑥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그리움의 감정이 올라왔다. 다 한번씩 연락해서 만나자 하고 싶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누군가가 가끔 생각날 때 문자를 보내거나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그 사람의 타임라인을 통해 소식을 따라잡는 것으로 만족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변한 거다. 나는 이제 먼곳에 사는 사람. 두고 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운명처럼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된 거다.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다 보면 '그리움의 온도 차이'를 느끼게 된다. 그들에 대한 나의 그리움은 아일랜드에서 쿰쿰한 치즈처럼 숙성되었고, 나에 대한 그들의 그리움은 한국의 바쁜 일상속에서 희미해졌다. 그들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5년 전 우리가 함께 했던 어떤 장소와 시간에 멈춰 있지만, 지난 5년 동안 그들은 각자의 삶을 따라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더 이상 그 장소와 시간에 함께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내가 느끼는 그리움이 그들과 똑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슬프지만, 나는 이제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서운해하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내가 떠난 것이므로. '아일랜드'라는 운명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므로.
며칠 전부터 열이 나고 목이 아프더니, 목소리가 완전히 쉬어 버렸다. 아일랜드에서는 날씨가 그렇게 절망적인데도 감기가 이 정도로 세게 온 적이 없었는데, 참 오랜만에 많이 아프다. 전화를 걸어온 존이 목소리를 듣더니 깜짝 놀란다. 얼굴 안본 지도 꽤 되었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한 내 목소리를 들으니 어색하고 이상했나 보다.
"걱정하지 마. 수다를 너무 떨어서 그래. 요즘 아침에 눈뜨자마자 시작해 밤에 잠 들기 직전까지 계속 얘기하거든. 나...한국말이 많이 고팠나봐."
실제로는 농담처럼 장난스럽게 얘기했는데, 내 진심을 아는 존은 마음이 짠했던지 다정하고 걱정스런 말투로 '그래도 건강좀 챙겨. 나 이제 곧 가는데 아프면 어떻게..' 한다. 그래, 내일모레면 그가 한국에 온다. 존과 보낼 시간을 위해서라도 빨리 나아야 한다. 그가 오면 우리는 조금 다른 서울구경을 하게 될 것이다. 존이 그동안 마음속에 간직해온 서울의 모습,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 어떤 시간과 장소에 대한 그리움의 행적을 따라 움직이게 되겠지.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온도와 빛깔과 모양의 그리움을 앓는다. '더'하고 '덜'하고가 아닌 그저 '다른' 모습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