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쉬 영화 나눔 3 <Brooklyn>
지금 미국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백인들의 조상 중 아이리쉬가 그렇게 많다는 건, 아일랜드에 오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 이민을 선택했던 70~80년대, 그보다 훨씬 앞선 1950년대 수많은 아이리쉬들이 비슷한 꿈을 품고 미국으로 건너갔던 거다. 가난한 시절이었고, 일자리도 여의치 않았다. 아일랜드나 한국처럼 조그만 나라의 국민에게 미국이란 거대한 기회의 땅은 거부하기 어려운 신세계였을 것이다. '꿈을 좇아 간다'고 말은 하지만, 그들을 싣고 떠났던 배는 호화로운 크루즈쉽이 아니었다. 감옥처럼 좁고 꽉 막힌 캐빈, 발을 쭉 뻗기도 힘든 딱딱한 나무침대 위에 겨우 부린 몸들은, 마치 버려진 짐짝처럼 수십일을 바다 위에서 출렁였을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미국은 분명 일자리와 교육의 기회가 넘쳐나는 풍요로운 땅이었지만,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의 다양한 문화가 충돌과 융합을 반복하는 용광로 같은 곳이기도 했다.
최근에 IFI에서 본 <브루클린>은 바로 이런 새로운 삶을 찾아 뉴욕으로 떠난 아이리쉬 여인 에이리스(Eilis)의 삶을 따라가는 영화다. 고국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홀로 떠나온 낯선 땅에서 외로움과 싸우며 새로운 생활, 새로운 사람들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사실적이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진다. 이야기의 중심축이 되는 것은 그녀가 만나게 되는 두 개의 사랑이다. 유머러스하고 열정적인 이탈리아남자 토니와 지적이고 다정한 아일랜드남자 짐. 이민자로서의 고단한 삶에 처음으로 빛이 되어준 토니와 결혼까지 하게 되지만, 친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찾게 된 고국에서 그녀는 가족과 친구들, 나고 자란 장소 등 친숙한 것들이 주는 안정감에 마음이 흔들린다. 거기에 우연히 얻은 좋은 직장, 우연히 만난 괜찮은 남자까지 만나면서, 꼭 돌아오겠다는 토니와의 약속까지 흔들흔들.
오랜만에 만난 클래식한 러브스토리가 반가웠던 데다, 뉴욕의 풍경, 문화와 대비되어 나오는 아일랜드의 시골풍경, 아이리쉬 전통음악, 아일랜드 사람들 특유의 입담 등이 내 나라 것처럼 정겨워, 내내 몰입해서 보았다. 장면장면 녹아 있는 아이리쉬 이민자들의 애환을 느끼며, 한국교민 1세대가 겪었을 그것을 상상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와 전혀 다른 세대,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영화가 마치 내 이야기인 양, 주인공 에이리스의 정서에 깊이 공감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느끼는 기대와 두려움, 어느 정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고 행복한 순간들을 만들어 가면서도 숙명처럼 앓게 되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 하지만 결국 어디에 살 것인지 결정하게 만드는 힘은 일도 친구도 아닌 '나와의 미래를 꿈꾸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이란 것...
마지막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깜깜한 영화관 안에서, 그렇게 50년대 아일랜드를 떠나 미국으로 간 아이리쉬 여자와 2010년대 한국을 떠나 아일랜드로 온 한국여자가 오버랩됐다. 그래도 넌 1년에 한번씩 한국 가고, 엄마와 전화로 매일 통화하고, 친구들과 매일 카톡하며 수다떨 수 있지 않냐고 내 자신에게 말해 봤지만, 먹먹해 오는 가슴을 달래기는 역부족, 결국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창피하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