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합성이 필요해!

스페인 알리깐떼로의 달콤한 도피

by Maya Lee

한국에 사는 친구들에게 나는 그들이 여행하고픈 나라에 살고 있는 행운아지만, 막상 그 나라에 살고 있는 나는 늘 또 다른 나라로의 여행을 꿈꾸며 산다. 아일랜드에 살면서 알게 된 건 떠남에 대한 욕구는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장소의 성격이나 아름다움과 관계 없이 '머뭄'이란 상태에서 생성된다는 것이다. 내가 한국에 있든, 아일랜드에 있든, 또는 지금 꿈꾸고 있는 남미의 어느 나라에 있든지, 머물기 시작하면 분명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은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것이 단 며칠의 휴가든 아니면 몇 달을 넘기는 긴 여행이든, 반복적인 일상의 틀을 벗어나고픈 싶은 순간, 우리는 떠난다.
그리고 존과 나도 떠났다. 아일랜드의 지긋지긋한 비와 바람, 흐린 하늘로부터 스페인 남부의 태양 아래로. 뜨거운 여름 동안 전 세계 관광객으로 넘쳐났을 알리깐테의 겨울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날씨가 기대보다는 쌀쌀했지만 한낮에는 야외테라스에 앉아 와인을 즐길 만큼 따듯했고, 날마다 눈부신 빛줄기가 방 안으로, 거리 거리로, 바다의 수면 위로 쏟아졌다. 싸고 맛있는 와인과 신선한 오렌지주스, 올리브와 치즈를 비롯한 다양한 타파스 음식이 배가 꺼질 틈 없이 우리를 유혹했다.


수많은 요트가 정박해 있는 항구를 따라 거닐며, 우리는 그 중 하나에 올라타고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상상을 했다. 여기서 아일랜드까지, 아니 한국까지 저 배를 타고 가는 거야. 배에서 자고 배에서 먹고(그리고 싸고), 그 사이 만나는 어느 나라든 우리가 머물고 싶으면 닿았다 다시 떠나고 싶을 때 떠나면서.
우리가 머물렀던 Milagrosa B&B는 올드타운의 중심에 있었다. 2층의 우리 방은 작지만 아늑했다. 난 무엇보다 커다란 유리창과 앙증맞은 발코니가 맘에 들었다. 그 창을 통해 아름다운 산타마리아 성당을 바라보며 정시에 울려퍼지는 청량한 종소리를 듣고 있으면 괜시리 가슴이 먹먹해졌다. 발코니에 서면 왼편 위로 알리깐테의 랜드마크인 우뚝 솟은 붉은 바위산, 그 위에 지어진 중세시대의 산타바바라 성과 성곽을 바라볼 수 있었다. 둘째날 아침, 존과 나는 어딘지 황량하면서도 시간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그 성에 올랐다. 높은 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푸른 지중해를 품에 안은 알리깐떼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스페인의 도시는 밤 9시가 넘어야 활기를 띤다. 대부분의 바와 레스토랑들이 저녁 7~8시가 되어야 문을 열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우리 부부는 첫날밤 페이스 조절을 못해 그만 초저녁에 골아떨어지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밀려드는 후회라니! 그날은 한두 시간 미리 낮잠을 자두더라도 기필코 알리깐떼의 밤 얼굴를 보리라 맘 먹었다.

계획대로 오후의 달콤한 시에스타. 그리고 숙소의 직원이 추천해준 몇몇 바를 돌며 타파스를 즐겼다. 그날의 최고 수확은 우연히 발견한 라이브클럽. 마침 플라멩코 연주가 있는 날이었는데, 기타와 노래, 댄스 실력 모두 수준급이거니와 공연 내내 함께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작지만 뜨거운 무대였다.

다음날은 스페인 전역에서 카니발이 열리는 토요일이었다. 해질 무렵이 되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마다 개성 있게 준비한 코스튬을 차려입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도로 곳곳에 대형 무대가 설치되고 다양한 밴드와 디제이들의 공연이 밤늦도록 계속 됐다. 카니발이 열리는 줄 미리 알았더라면 초록색 바이킹 모자라도 사가지고 갔을 텐데!

3박4일의 짧은 휴가가 빛의 속도로 지나갔다. 레스토랑의 야외테라스에서, 바닷가 모래사장과 부둣가의 벤치에서, 우리는 그동안 부족했던 비타민D를 마음껏 흡수했다. 일요일 오전, 알리깐떼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우리는 둘다 말없이 흘러가는 도시의 풍경들을 마음에 담았다. 3시간의 짧지 않은 비행에 지친 우리를 맞아준 것은 우박을 동반한 비와 바람. "Welcome to Ireland..!" 존의 시니컬한 말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여기가 나의 집. 돌아올 곳이 있기에 '여행'이므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시 일상을 만날 준비를 해야지. 일단 전기장판부터 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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