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생일'이니까

유일하고 특별한 하나의 생이 시작된 날

by Maya Lee

이 얘기를 하면 웃을지도 모르지만, 난 아직도 생일이 너무너무 좋다 (물론 나이 먹는 건 더이상 신나지 않지만). 생일은 당연히 좋은 날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마흔이 넘은 어른이 생일을 10살 어린아이처럼 들떠서 기다리는 건 내가 생각해도 좀 우습다. 하지만 주인공이 되는 기분은 그리 자주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꼭 비싼 선물을 받거나 수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아야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에게는 이 세상에 하나뿐이고 한번뿐인 인생이 시작된 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더없이 특별하고 비밀스럽다. 그리고 생일이 되면 나에게 생명을 주신 분의 목적과 이유에 대해서 더욱 궁금해지고 간절해진다.
주책이라 할까봐 남한테 말은 안하지만 난 생일 며칠 전부터 생일이 다가오는 것을 설렘으로 느낀다. 그러다 생일 전날이 되면 마구 흥분이 되기 시작하는 거다. 내일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며 밤잠까지 살짝 설치면서 아침에 눈을 뜨면 드디어 생일이다. 생일 아침에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정성스럽게 샤워를 한다. 나만의 생일의식 같은 건데, 그렇게 생일을 시작하면 새해를 맞이할 때처럼 내 인생의 작은 방점을 찍으며 새로운 출발을 하는 기분이 든다.
이번 생일도 예외 없이 설렘으로 찾아왔다. 2월로 넘어가자마자 벽에 걸린 달력의 숫자 '8' 위에 여러 개의 똥글뱅이를 해놓고 혼자 히죽거렸다. 그런데 생일 전전날 존이 내 생일을 잊어먹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한바탕 눈물을 쏟다가, 죽을 죄를 졌으며 앞으로 평생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맹세와 사과를 받아내고서야 마음을 풀었다. 뭐, 나중에는 나의 어린아이같은 철없음이 미안해져 그에게 다정하게 굴어댔지만. 어쨌든 그렇게 대망의 생일이 되었는데, 아침부터 날씨가 영 마음에 안들었다. 바람이 미친듯이 불어댔고, 하늘 색깔은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이 안됐다. 게다가 타이밍도 기막히게 생리통이 시작되어 결국 말레이시아 친구 시니와의 점심약속도 연기해야 했다. 하루종일 생리통과의 씨름. 그래도 생일이니까...좋았다.

한국에서 살 때는 여행 중 생일을 맞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미역국을 먹었던 것 같다. 뻔뻔하지만, 늘 '엄마표' 미역국이었다. 아침을 먹고나면 늘 혼자 카페를 찾았다. 생일을 자축하는 의미의 모닝커피. 생일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커피 한잔을 곁에 두고 다이어리를 펼치면, 다시 한번 설렘과 기대로 가슴이 두근대곤 했다. 그리고는 2와 8이란 숫자가 적힌 다이어리의 빈 공간 안에 그날 하고 싶은 일들과 생일을 맞이하는 기분,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적어내려 갔다.
오후와 저녁은 항상 친구들, 또는 연인과 함께 보냈다. 오후에는 보고싶었던 영화나 연극, 콘서트 같은 공연을 본 적이 많고, 저녁 땐 주로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작은 생일파티를 했다. 시간들 틈틈이 걸려오는 생일축하 전화나 메시지들을 통해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구나' 새삼 깨달으며 감사했다. 그렇게 꽉 짜인 하루를 보내고 집에 오면 피곤함과 행복감, 그리고 생일이 지나갔다는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오곤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5년 전 아일랜드에 온 뒤로 나는 이전과 전혀 다른 생일들을 보냈다. 아일랜드에서 처음 맞은 생일은 참 쓸쓸했다. 미역국을 끓여주는 사람도 먹고 직접 끓여먹을 정성도 없고, 애인도 없었다. 학원에서 사귄 친구들이 좀 있었지만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려 공감대가 다르다보니 깊이 친해지기가 어려웠다. 대부분 비영어권의 유럽애들이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누구누구네 모여 하우스 파티를 열었다. 생일파티는 더 시끌벅적했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친구들을 몽창 불러(그 친구의 친구의 친구까지)다 놓고, '알아서 챙겨 먹으면서 놀라'는 식이었다. 나에게는 한국과 다른 그 문화적 이질감이 꽤 흥미롭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웃고 떠들 수 있는 유연성은 꼭 배우고 싶은 것이었으나, 벌써 친한 친구가 된 듯 이야기하다가도 언제든 자리를 떠나버리면 그만인 쌀쌀맞음(누군가에게는 '쿨'함)이나, 적극적으로 어떤 대화에 끼어들지 않으면 거실 한복판에 혼자 뻘쭘하게 남겨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호기롭게 넘기기에, 나는 너무 소심했다. 처음에는 친구도 사귀고 문화적 체험도 하겠다고 파티마다 열심히 좇아다녔으나, 6개월쯤 지나니 시들해졌다. 파티에서 만난 사람들은 파티가 끝나면 모두 연극을 마친 배우들처럼 내 인생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진짜 친구'가 그리웠다. 그나마 조금 친해졌다 싶으면 자기나라로 돌아가버렸고, 그럼 다시 처음부터 '친구 만들기'를 시작해야 했다. 그런 반복에 지쳐 슬럼프가 왔을 때 생일이 찾아왔다. 아무에게도 생일을 알리지 않은 채 흐리고 비바람 부는 더블린 시내를 온종일 혼자 거닐었다. 영화를 보고 내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스프와 샐러드를 먹으며 생일을 자축했다. 외롭고 청승맞았는데, 그래도 생일인 건 좋았다. 여느 생일처럼 아침에 혼자 카페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일기를 적어내려갈 땐, 언제나처럼 가슴이 설렜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생일이었고, 그래서 조금 쓸쓸하고 서운했지만, 나를 세상에 보낸 분이 나의 생일을 기억하고 나를 축복해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 땅에 우연히 태어난 게 아니라 특별한 계획과 기대와 사랑 안에서 창조되었다는 깊은 존재감이 마음을 위로했다.

(그리고 야호!) 두 번째 생일부터는 혼자가 아니었다.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 존이 있었다. 그해부터 얼마전 지나간 2016년도 생일까지 총 5번의 생일을 모두 그와 단둘이 보냈다. (그 기간 동안 맞은 그의 생일도 모두 그렇게 단둘이 보낸 걸 보면, 우린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대체로 개인적인 시간을 선호하는 커플인 듯하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작고 소박한 레스토랑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을 여행하며, 더블린 외곽의 싸고 조용한 호텔스파에서, 집에서 집밥을 먹으며, 올해는 분위기를 바꿔 더블린 시내 한복판의 럭셔리한 레스토랑에서, 그렇게 매해 다른 색깔과 느낌의 생일을 보냈다. 어쨌든 확실한 한 가지는 이제 이번 생일을 누구와 보낼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매년 내 생일을 함께 해줄 한 사람과 생일아침의 따뜻한 샤워, 커피 한잔과 다이어리로 시작하는 나만의 작은 의식. 더 이상 욕심내지 않으려 한다. 100개의 축하메시지를 받든지 10개의 축하메시지를 받든지, 비싼 선물을 받든지 카드 한장을 받든지 상관없이 나는 아직도 늘 생일이 설렌다. 그건 무엇보다 세상에 하나뿐이고 한번뿐인 내 인생이 시작된 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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