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리의 작은 펍 - 릴리피네건(Lily Finnegan's)
몇 달 전 존의 고향인 쿨리(Cooley)의 아이리쉬펍 '릴리피네건'이 메스컴을 탔다. <아이리쉬 타임즈>가 선정한 '꼭 가봐야 할 아이리쉬펍 20'에 당당히 등극한 것이다. 흥분한 존은 당장 신문을 사서 기사면을 스크랩하고, 그래도 믿기지 않는 듯 인터넷 기사에서도 찾아서 나에게 읽어 보라고 재촉했다. 그도 그럴 것이 '릴리피네건'은 존에게 아주아주 특별한 펍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를 길러준 릴리 이모에게 유산으로 물려받은 펍, 그리고 그가 10년 넘게 직접 경영했던 펍, 15년 전 동네 청년이었던 데릭에게 임대하면서 사업에서 손을 뗐지만, 릴리피네건은 여전히 그의 소유로 남아 있는 그의 펍이다.
한 소년이 있었다. 영국인 아버지와 아일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2남2녀 중 막내로, 어머니의 고향인 쿨리(Cooley)에서 태어난 시골소년.
1960년대 당시 아일랜드는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존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두가 가난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더 넓은 땅으로 더 넓은 기회를 찾아 아일랜드 땅을 떠나던 때였다. 60년 대 말, 소년의 가족도 다른 이민자들과 함께 커다란 여객선을 타고 호주 시드니로 이주했다. 하지만 그곳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소년의 어머니가 암으로 죽고, 아이 넷을 혼자 돌보기 버거웠던(혹은 책임감이 부족했던) 아버지는 몇 년 후 막내인 소년과 첫째인 그의 형을 함께 아일랜드 쿨리에 살고 있는 릴리 이모에게 보냈다. 소년이 11살이던 해였다.
어머니의 여동생인 릴리 이모는 소년의 외할아버지 소유였던 펍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었는데,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하며 독신으로 살고 있었다. 소년과 그의 형은 펍에서 잔심부름도 하고, 릴리 이모의 도우미 역할도 하며 펍 2층에서 함께 살았다. 하지만 사춘기를 앓고 있던 소년의 형은 답답한 시골생활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듯 호주로 돌아가 버리고 소년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펍에는 릴리 이모와 소년 외에 한 명의 동거인이 더 있었는데, 몸이 불편한 릴리 이모를 대신해 실질적으로 펍을 운영하고 있던 쿨리출신 남자였다. 소년은 그를 '삼촌'이라 불렀다. 그는 펍의 거친 술손님들을 상대하기에 충분한 유머와 능청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매일 그들과 함께 취해 긴 밤을 보내는 알콜중독자였다. 일이 끝나고 돌아오면 그는 늘 소년에게 주정을 부렸다. 기분이 안 좋은 날은 자고 있는 소년을 깨워 욕을 퍼부어대며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소년은 매일밤 2층 계단을 오르는 남자의 발소리에 숨을 죽이며 몸을 떨었지만, 소년을 보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쿨리를 벗어나는 꿈을 꾸는 것뿐이었다. 소년은 날마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그리노어(Greenore) 항구로 달려갔다. 운이 좋은 날에는 먼 외국에서 아일랜드로 들어오는 커다란 무역선을 볼 수 있었다. 비행기 여행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대, 배는 소년을 먼 미지의 세계로 데려다 줄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언젠가 저 배를 타고 이곳을 벗어나 세계를 여행할 거야!' 그땐 배를 바라보며 꿈꾸는 것이 소년의 유일한 즐거움이자 희망이었다.
처음 릴리피네건에 가본 것은 결혼 전 존과 데이트하던 시절이었다. 나를 픽업하러 온 그가 빨간 색 작은 승용차에서 고개를 내밀었을 때, 그의 얼굴이 어린 아이처럼 발갛게 상기되어 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보다 자주 고향을 찾던 때인데도, 존은 고향에 갈 때마다 늘 긴장되고 설렌다 했다.
"쿨리에 갈 때마다 수만 개의 기억이 회오리처럼 밀려와서 감정이 격해지곤 해. 사실 나한텐 추억보다는 아픔이 더 많은 곳이야..." 초록빛 산구릉들과 양떼와 소들만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을 지나며 존이 말했었다.
쿨리(Cooley)는 아일랜드 북동쪽, 북아일랜드와의 국경에 조금 못미처 동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작은 반도다. 차가 쿨리 지방으로 들어섰을 때, 그는 펍에 들르기 전 나에게 꼭 보여줄 곳이 있다고 했다. 그가 차를 세운 곳은 그리노어 항구였다. 전체 길이가 2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항구였다. 크고 낡은 배 한 척과, 작지만 생명력이 느껴지는 아이리쉬펍 하나가 전부인.
방파제 쪽에 서면 쿨리 반도를 둘러싼 바다와 산의 자연 경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때묻지 않은 푸른빛의 자연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거칠고 쓸쓸한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어릴 때 날마다 여기 왔었어. 여기 이렇게 서서 하루종일 배가 오가는 모습을 바라보곤 했는데...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말야."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을 얘기하는 존의 얼굴에서 복잡한 감정이 읽혀졌다. 그리움을 넘어서는 어떤 종류의 긴장과 아픔과 슬픔 같은 것.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그리고 숨바꼭질하듯 시야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시골길을 따라 달리다 오래된 흰색 건물의 초록색 대문 앞에 멈추었다. 대문 위에는 '릴리피네건(Lily Finnegan's)'이라 쓰인 초록색 간판이 걸려 있었다.
릴리 펍은 말 그대로 'nowhere'에 있었다. 주위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집들을 제외하면 보이는 것이라곤 산과 들판, 바다, 하늘, 그리고 서로 닮은 양과 구름의 무리가 전부였다. 그런데도 동네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꽤나 유명한 펍이었다. 200년 동안 대를 이어 자리를 지키며 주민들의 커뮤니티 역할을 해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존의 말에 의하면, 한때 유명한 뮤지션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과 아일랜드 최고팀의 럭비선수들이 이 펍에 갔던 사실이 매스컴을 타기도 했단다.
"안녕! 내가 데릭이야. 마야 맞지? 만나서 반가워!"
바 뒤에서 영업 개시를 위해 부산하던 데릭이 우리가 들어서는 소리를 듣고 나와 인사를 했다. 존과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동네 동생이자 지금은 15년 넘은 사업 파트너인 데릭. 워낙 착실하고 싹싹한데다, 일처리도 빠릿빠릿하고 깔끔하기가 이를 데 없어, 존은 늘 "릴리피네건이 지금까지 건재한 건 데릭 덕분"이라고 말하곤 했다.
오랜만에 만난 존과 데릭이 밀린 사업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펍 안을 천천히 둘러 보았다. 200년 동안 여러 번 유지보수를 하며 편의상 내부구조를 좀 바꾸고 현대식 TV 스크린을 설치하긴 했지만, 건물 외관은 물론 탁자와 의자들, 벽난로, 벽에 걸린 사진들과 진열장에 놓인 물건들 모두 오래된 필름영화에서 튀어나온 듯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사진들을 천천히 훑어보던 중 한장의 사진에 내 눈길이 멎었다. 빛나는 금발머리의 백인 청년이 바 안쪽에 서 있었다. 사진의 빛깔이 바랠 만큼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분명 존이었다. 릴리 이모가 돌아가신 후 그가 직접 펍을 운영하던 때의 사진인 듯했다. 사진 속의 그는 싱그럽고 아름다웠다. 마치 젊은 시절의 그와 다시 사랑에 빠진 듯 가슴이 두근댔다.
소년이 15살 되던 해, 소년은 기적처럼 꿈을 이루었다. 정말 해군 소속의 국제무역선을 타고 쿨리를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매일 항구에 나가 배를 타게 해달라고, 그럼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선장을 조르던 소년의 간절한 진심이 마침내 통한 것이다. 소년은 최연소 선원으로 합류해 취사실에서 요리 일을 배우며 긴 항해를 시작했다. 유럽과 러시아는 물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까지, 10년 가까이 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소년은 청년이 되었다. 그리고 문득, 오래 전 떠나온 호주의 가족들이 생각났다. 비록 자신을 혼자 아일랜드 땅에 보내버린 비정한 아버지지만 그래도 핏줄이었다. 청년은 그 길로 호주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하지만 물어물어 아버지의 집을 찾아갔을 때, 아버지는 청년이 된 아들을 보고도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진심으로 반갑게 안아준 것은 처음 보는 아버지의 새 부인이었다. 청년은 인도 출신의 새 어머니가 해주는 맛있는 인도요리와 따뜻한 환대에 위로를 받으며 아버지의 집에 잠시 머물렀다. 다행히 배에서 요리기술을 익힌 덕분에 요리사로 취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청년은 곧 시드니의 한 레스토랑에 취직해 일하기 시작했고, 몇 년 후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작은 레스토랑을 열어 함께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당시의 청년에게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아마 가족도 사업도 아닌 '음악'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배를 타기 전 릴리 펍에 살던 어린 시절부터 혼자 배워 익힌 기타는 망망한 바다 위에서도, 낯선 외국 땅에서도 늘 그의 가장 좋은 친구였다. 청년은 호주에서 만난 음악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해 곡을 지어 음반을 만들고 공연을 하며 자유방랑한 청춘을 보냈다. 하지만 청년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이 물안개처럼 떠돌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없었다. 그 그리움이 차올라 선명하게 얼굴을 내밀었을 때에야, 청년은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대상을 보았다. 그것은 아일랜드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다시 짐을 쌌다. 그리고 혼자 남겨졌던 슬픔의 땅 아일랜드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도 혼자였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의지였다. 호주에 있는 동안 돌아가신 릴리 이모가 자신에게 유산으로 남겨준 릴리 펍을 찾아간 그는, 닫혀 있던 펍의 문을 열고 대대적인 내부 공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펍의 주인으로서 새롭게 영업을 개시했다. 쿨리 사람들 모두 청년의 귀향을 반겼고, 밤마다 다시 문을 연 릴리피네건으로 모여 들었다. 사람들은 밤마다 릴리 펍에 모여 신선하고 잘 익은 기네스를 잔에 채우며 다양한 밴드의 라이브음악을 즐겼다. 주말에는 이런 파티 아닌 파티가 날이 밝을 때까지 계속 되었다. 중년이 가까워진 청년이, 청년이 된 고향후배에게 펍을 인수하고 쿨리를 떠나 더블린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때까지, 릴리 펍은 곧 고단하고 뜨거운 그의 삶이었다.
산속에서는 해가 빨리 진다. 우리가 도착한 지 얼마되지 않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여려지고 창밖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데릭이 능숙한 솜씨로 벽난로에 마른 나무조각들을 정갈하게 쌓아 모닥불을 지피는 동안, 존은 나를 또 하나의 빛 바랜 사진 앞으로 데리고 갔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작고 마른 백발 할머니의 독사진이었다. 나는 한눈에 그녀가 릴리 이모라는 것을 알았다. 선한 눈매에 어린 소녀 같은 미소. 난 단번에 그녀가 좋아졌다. "릴리 이모가 살아계셨으면 널 많이 예뻐하셨을 텐데." 존의 말에 난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녀가 그리워졌다.
너무 늦지 않게 다시 더블린으로 돌아와야 했으므로, 우리는 데릭이 따라주는 아일랜드 최고의 기네스를 한잔씩 마시고 작별인사를 했다. '또 보자'는 데릭의 인사가 정말 이루어질 줄 그 땐 몰랐다. 그저 내 연애 역사상 가장 특별한 데이트 코스였다고 생각했더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존의 옆 모습을 보았다. 떠날 때의 긴장된 표정과 달리 평온하고 차분해 보였다. 그것이 그리움이든 의무감이든, 풀어내야 할 것을 풀어냈을 때 느끼는 안도감과 홀가분함이 아니었을까. 그와 결혼을 하면서 릴리 펍은 이제 나에게도 특별한 펍이 되었다. 우린 일년에 두세 번씩, 한국에서 명절 때 고향을 찾듯 그리움과 의무감을 모두 가지고 릴리 펍을 찾고, 쿨리의 친구들을 방문한다. 그리고 릴리 펍에 갈 때마다 난 존의 젊은 시절 사진과 릴리 이모의 사진 앞에 서서, 릴리 펍에서 자란 그의 어린 시절과 호주에서 다시 돌아와 펍을 운영하던 시절의 그를 상상한다. 그럴 때마다 익숙해졌던 모든 것이 다시 신기해진다. 같은 시간, 지구 반대편의 작은 나라에서 치열한 입시전쟁을 치르고 꿈과 방황이 뒤엉킨 대학생활을 하며 어른이 되고 있던 한 여자가 아일랜드 시골마을의 작은 펍을 가슴에 품고 살게 될 줄 누군들 알았을까. **
* 이 글에 실린 모든 사진은 제 지인인 사진가 김기연 님이 제공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