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노마드가 되는 거야
다시, 한국이다. 3개월만의 한국행이라 이번엔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는 데 여느 때처럼 부지런을 떨지 않고 있다. '금새 왔네! 무슨 일 있어?'라는 사람들의 반응이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게 중에는 분명 오히려 한국에 사는 친구들보다 더 자주 보면서도 외국 살다 나왔다는 이유로 나를 만나줘야 할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서다. 나름의 분명한 이유는 있었다. 엄마 칠순생신을 기념한 특별한 가족여행에 빠지고 싶지 않았고, 다가오는 아빠 1주기 기일에 맞춰 가족들과 함께 아빠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물론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하고 흔쾌히 보내준 남편이 있고, 시간적, 재정적 여건이 채워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이 그리워도 자주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난 나의 사치가 늘 벅차게 감사하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시차를 제대로 극복할 새도 없이 사이판으로 4박5일의 가족여행을 다녀왔고, 그곳에서 검게 그으른 얼굴로 몇몇 친구들을 만났으며 몇몇의 영화를 보았다. 존과는 주로 왓츠앱 통화나 메시지로 매일 소식을 주고받으며, 밤에는 거실에서 엄마가 보는 드라마나 쇼프로를 함께 보며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벌써 2주.
아일랜드에서는 전혀 보지 않는 한국 드라마와 토크쇼를 몰아보기하듯 보고 있다. 그만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엄마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티비 앞에 앉기 시작했는데 사흘만에 중독이 됐다. '시간 아까워...이 시간에 글을 몇 줄이라도 더 써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엉덩이는 그대로 소파에 붙어 있다. 그러고 보니 엄마도 많이 늙으셨다. 예전엔 이 시간에 컴퓨터도 하시고 책을 읽거나 공부도 하셨는데, 이젠 텔레비전 보는 게 유일한 낙인 걸 보면.
티비 속 얼굴들이 모두 낯설다. "쟤가 송중기란 앤데 요즘 그렇게 인기가 많다더라'며 엄마가 가리킨 티비 속 남자의 얼굴은 함께 나오는 송혜교보다도 더 갸름하고 곱상해 보였다. 요즘 지인들의 페북 담벼락에도 그의 이름이 바쁘게 오르내리는 걸 보니 인기가 정말 많긴 한가 보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전에 키스한 걸 사과할까요, 아님 고백할까요?"라고 말하는 송중기의 대사가 꽤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렇게 흘려보내고 있는 시간들에 대해 아쉬움을 느낀다. 한국에서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아직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듯 느껴지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 예쁘게 생긴 남자를 바라보고 있는 저녁시간이 낯설다. 난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었던 걸까.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 잘못하고 있는 것 같진 않은데 말이다. 아니면 벌써,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이번에 아일랜드로 돌아가면 왠지 한동안 오지 못할 것 같은 느낌 때문일까?
한국을 떠나 지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국에 돌아오면 내 삶이 이곳의 모든 것들로부터 조금씩 멀어져가는 것을 느낀다. 지난 5년 동안은 한국에 올 때마다 '내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는데, 그래서 머무는 동안 여유롭고 편안했는데, 이번에 한국에 와서는 전과 조금 다른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건지 집을 떠나온 건지' 알 수 없는 느낌. 한국에도, 아일랜드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은 아웃사이더, 혹은 이방인의 느낌. 반짝 찾아온 꽃샘추위가 한풀 꺾이고 봄볕이 좀더 깊어지면, 고국의 따스함도 조금 더 가까워질까...?
한국 가는 날이 다가올수록 설렘도 커지고 그리움도 커졌더랬다. 아일랜드로 돌아온 지 3개월밖에 안 되었는데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 좀 이상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아일랜드의 겨울을 혹독하게 앓고 있어서일지도 몰랐다. 한국의 겨울이라고 그리 상냥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훨씬 많은 양의 햇빛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몇 달 새 흐지부지해진 새해 다짐을 다시 다잡고, 머리속에만 담아두었던 계획들을 구체화하는 데도, 존과 떨어져 한국에 혼자 있는 시간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아일랜드는 이번 겨울은 유난히 바람이 셌다. 밤마다 뒷산과 집앞의 나무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잠을 설칠 정도였다. 잠을 제대로 못자긴 존도 마찬가지였다. 작고 튼튼한 데다 디자인까지 마음에 너무 들어 20유로나 주고 샀던 우산은 결국 홀라당 뒤집히며 불구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이 겨울이 빨리 지나가주길 바라며, 하루하루 괜시리 침울해지려는 기분을 끌어올리려 애썼다. 그나마 존이 새로운 직장을 맘에 들어했기에 다행이었다.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며 그들의 굴곡진 인생얘기를 들어주는 일은, 수백명의 학생과 교사를 먹이기 위해 공장에서 기계 찍듯 음식을 만들어내야 하는 블랙락 컬리지의 일보다 훨씬 보람 있다고 했다. 더블린까지 출퇴근해야 하는 거리가 부담스럽긴 해도, 새 일과 직장이 그에게 아일랜드의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활력소가 되어주는 듯 보였다.
나에게도 겨울을 이겨낼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나마 아침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요가수업이 움츠러드는 나의 몸과 마음을 열어주었다. 퇴근한 존을 만나 함께 집에 오기 전까지 하루 반나절의 시간은 나 스스로 온전히 채워야 하는 시간이었다. 혼자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고 시내를 여유롭게 어슬렁거리는 일상은 결혼 3년차로 접어들면서 더이상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스페인어학원과 요가스튜디오 등록비, 가끔 혼자 여행을 다니며 조금씩 갉아먹은 통장 잔고마저 너덜너덜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돈의 액수를 떠나 내 힘으로 경제적 활동을 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사회적 성취감과 활력이 그리웠다. 여러모로 일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아일랜드로 돌아갈 날을 일주일 앞두고 갑자기 날씨가 따뜻해졌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 하늘이 희뿌연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이렇게 포근한 공기 안에 머물러보는 것이 오랜만이라 흘러가는 시간들이 아깝다.
생각해 보니 지난 한달 동안 한국에서 하려고 마음 먹었던 일들 중 못한 것이 많다. 놓고 있으면 다 잊을까 싶어 혼자서라도 공부하려고 가져온 스페인어책은 몇 번 들춰보지도 않았고, 브런치에 좀더 부지런히 글을 올리려 했던 계획도 여기저기 사람들 만나러 돌아다니느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으련다. 무엇보다 지인들을 만나 함께하지 못한 시간 동안 그들의 삶속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듣고, 아일랜드에서 내가 경험한 것들을 나누었던 모든 시간의 조각조각이 참 따스하고 소중했으니까. 스페인어 공부와 글쓰기는 아일랜드에서도 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건 한국에 왔을 때밖에 할 수 없으니까.
엄마의 칠순생신을 축하하고 아빠의 나무 앞에서 돌아가신 아빠를 추억하는 사이 계절이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한달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머문 느낌이다. 그래도 매번 못 만나는 사람이 있고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생기니, 고국이 늘 그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아일랜드를 떠나면 그곳에 두고 온 것들 또한 늘 그리우니, 둘 중 어느 곳을 내 집이라 해야 할까. 둘 다이거나, 둘 다 아닐지도. 문득 아일랜드의 봄은 어떤 얼굴로 날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