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ya Lee Aug 09. 2016

조카와의 여름(2)

고요한 태풍의 눈과 휘몰아치는 태풍 사이

웨스트코크와 캐리 여행에서 돌아온 우리는 브레이 집에서 느긋한 며칠을 보냈다. 엄마는 선선한 아일랜드의 날씨가 책 읽기에 너무 좋다며 기분좋게 살랑이는 바람 곁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졌고 조카는 오랜만에 늦잠을 늘어지게 즐겼다. 혼자만의 시간이 조금 그리워진 나는 출근하는 존의 차를 타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가, 카페 안 혹은 길 위에서 서너 시간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평온한 일상과 함께 깊은 걱정과 슬픔의 시간을 동시에 지나고 있었다. 형부의 식도암 수술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정대로라면 우리가 웨스트코크에서 돌아온 다음날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협업해야 할 세 명의 의자 중 한 명의 스케줄이 도저히 안맞아 부득이하게 사흘 뒤로 미뤄진 상태였다. 매우 힘든 수술이라고 했다. 암이 떼어내기 어려운 곳에 자리잡은 데다 진행상태도 이미 2기를 넘은 터라 수술의 성공여부도 장담할 수 없었다. 즉, 수술이 최선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수술을 하기로 한 건 형부의 강한 의지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다면 해보고 싶다고 했다. 수술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었던 언니도 형부의 희망을 응원해주기로 마음 먹은 듯했다. 존과 나도 형부의 암투병 소식을 들은 날부터 매일 기도로 중보하고 있었다. 수술 하루 전 형부가 수술준비를 위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 조카와 함께 둘러앉은 저녁식탁에서 다같이 기도했다. 기도가 뭔지 모르는 조카와 신앙이 없는 엄마도 존과 내가 대표로 말하는 기도의 내용을 간절한 마음으로 함께했다.

밤새 잠을 설쳤다. 형부가 지금 수술을 받고 있겠구나 생각하니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떨리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기도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희미하게 형부 꿈을 꾸었다. 아들바보인 형부가 채환이가 보고싶다며 아이처럼 보채고 있었다. 어쩐지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새벽 5시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거실로 갔다. 부지런한 여름해의 여명이 새 우는 소리와 함께 나즈막히 스며들고 있었다. 고요한 거실에 홀로 앉아 형부를 위해 기도를 하다가 언니에게 전화를 해봐야겠다는 시간이 들었다. 예정대로라면 아마도 수술이 끝났을 터였다. 병원이라서인지 언니가 숨죽인 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내가 형부 수술이 끝났는지 묻자마자 언니는 채환이가 지금 내 옆에 있는지 물었다.
"지금 여긴 새벽 5시이야. 아직 다들 자고 있지. 난 그냥, 형부 생각에 잠이 잘 안와서..."
"아, 그래... 현구야, 네 형부 수술 못했어."
"뭐? 왜?..." 심장이 두근거렸다.
"암이 너무 많이 퍼져서... 열어 보니 폐까지 전이가 되어 있더래. 그래서 수술 못하고 다시 닫았어. 현구야 어떻게 해. 네 형부 1년밖에 못 산대..."
거짓말이다. 이건 지독한 농담이다. 내가 듣고 있는 얘기를 믿을 수 없었다. 형부가 이 수술에 얼마나 희망적이었는데. 빨리 나아서 채환이랑 다시 야구도 하고 캠핑도 가겠다며 그동안 함암치료 받으며 운동이랑 식이요법도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너무 서러워 눈물이 터졌다. 수화기 저편의 언니도 울고 있었다. 위로의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힘내란 말도 건네지지 않았다. 그저 어느 정도 울음이 토해져 진정될 때까지 서로를 기다려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낮에 다시 통화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고 보니 존이 놀란 얼굴로 내 옆에 서 있었다. 소식을 알려주니 존도 충격을 받고 신음을 쏟아냈다. 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뜨거운 커피를 만들었다.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존과 형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굿모닝!" 인사를 하며 식당으로 들어오시다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물으셨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심각하게들 하고 있니?" 소식을 들은 엄마의 눈에서도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세상에..대체 이게 무슨 일이래. 어려운 수술이라지만 그래도 잘 될 거라 믿었는데... 아유, 불쌍한 내 사위 어떻게 해..."

당신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엄청나게 슬픈 소식을 듣게 되는 이상미묘한 일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의 고통을 가슴 깊이 함께 아파하면서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에는 여전히 웃음이 나오고 즐겁기도 한, 아이러니하고 비현실적인 순간들을 경험하게 될 지도.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형부는 수술을 하지 못한 채 다시 봉합한 부위가 아물기를 기다리며 병원에서 치료 중이었고, 채환이는 '아빠의 수술이 잘 끝났으니, 이제 곧 멀쩡해져서 전처럼 자기랑 야구도 하고 캠핑도 가고 맥도날드 햄버거도 먹으러 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물론 형부가 암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식도가 많이 아프다'고만 알고 있었다.
엄마도 나도 존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환이가 계속 아무것도 모르도록 연기해야 했다. 말을 조심해야 하다 보니 우리는 우리가 주고받는 말들에 예민해져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조카의 말 하나하나도 자꾸만 귀가 아닌 가슴으로 날아왔다. 녀석의 입에서 '내년에 아빠랑' '내가 크면 아빠랑' '나중에 아빠랑' 같은 단어가 나올 때마다 가슴속으로 서늘한 바람이 스쳐갔다.
우리는 다가올 시간에 대해 얘기하면서 마치 그 시간이 당연히 올 것처럼 얘기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사실은 그저 마음의 바람이고 계획일 뿐이란 걸, 인간의 생은 어차피 시한부라는 걸,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시간의 길이는 사실 늘 불확실성으로 존재한다는 걸 잊고 살 뿐이다. 시한부3개월을 선고 받은 사람이 건강하게 수 년을 더 살고, 10년 뒤를 이야기하던 사람이 그보다 먼저 죽게 될 가능성 또한 그 불확실성만큼 일반적이다. 그러니 부디 형부의 정신과 삶이 의사가 말한 '앞으로 남은 날'의 숫자에 지배당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형부가 이 지난한 싸움에 지치지 않도록 기도와 사랑으로 돕는 것,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하루, 순간순간을 좀더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모, 올해 나 한번도 피자랑 햄버거 안 먹었어. 아빠가 아파서 계속 밥 먹었거든. 그러니까 한국 가기 전에 맥도날드 햄버거 한번만 먹으면 안될까?"
다음주에 한국에 가면 더 이상 피자도, 햄버거도 못 먹을 거라며 아쉬워하는 녀석의 꾐에 넘어가 결국 저녁 때 맥도날드 햄버거를 사주었다. 엄마가 계실 때도 피자와 햄버거는 여러 번 먹었건만 꼭 '맥도날드 치즈버거'야만 한대나. 몸에 좋고 맛있는 음식 많이 먹이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정크푸드 사주는 이모가 되어 버렸다.
"아, 맛있다!"를 연발하며 치즈버거에 감자튀김까지 깨끗하게 먹어치운 녀석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이 된다. 그러더니 "이모,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 하며 애교를 떤다. 그래 채환아. 나도 너한테 비밀로 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으니 네 비밀도 하나 지켜줄게.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다 눈물이 비져나오려는 걸 꾹꾹 눌러 참았다. 어떻게 이렇게 천사같은 아이를 남겨두고 떠날 수 있을까. 아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형부는 머물 것이다. 오래오래.


이번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호주에 있는 존의 가족과 함께 보내려던 계획을, 크리스마스는 호주에서 새해는 한국에서 보내는 것으로 수정했다. 존도 나도 한국의 가족들과 함께, 특별히 형부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앞으로 수많은 새해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기를 꿈꾸며, 2017년 새해가 마치 마지막일 것처럼 소중하게. **



매거진의 이전글 조카와의 여름(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