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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Aug 04. 2016

조카와의 여름(1)

아이의 투명함에 물들어간 시간들

"우리가 작년에 여기 왔을 때 그런 얘기했잖아. 어머니 아일랜드 오시면 꼭 같이 오고 싶다고. 그런데 지금 진짜 같이 있는 거야. 거기다 채환이까지 함께!"
지난해 11월 웨스트코크 클로너킬티의 작은 카페에서 존이 꿈꾸듯 말했을 때, 사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침에 정신없이 준비하고, 긴 시간 차를 운전해 오느라 놓치고 있었던 것. 바로 그 순간 이뤄질 것 같지 않았던 우리의 어떤 바람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엄마가 아일랜드에 오시면 내가 아일랜드에서 가장 사랑하는 웨스트코크와 캐리 지방을 꼭 보여드리고 싶다고 늘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열 살짜리 조카녀석까지 꼬리로 달고서.


엄마와 3주간의 스위스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아일랜드로 돌아온 지 벌써 일주일이다. 스위스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던 취리히. 취리히 도착 다음날 엄마와 나는 취리히공항으로 혼자 한국에서 날아오는 조카를 마중 나갔더랬다. 에스코트해주는 직원이 있었다지만 10시간이 훌쩍 넘는 비행이 많이 지루하고 피곤했을 텐데, 열 살 짜리 조카는 제법 씩씩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입국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채환아, 자기 이름을 부르는 엄마와 나를 보고는 강아지처럼 졸래졸래 걸어와 품에 안겼고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지 갑자기 피곤한 얼굴이 됐다. 그렇게 엄마와 함께 채환이를 데리고 취리히 호텔로 돌아왔고, 다음날부터 함께 취리히 시내와 장크트갈렌, 라인폭포, 샤프하우젠을 여행했다. 하지만 첫날 시차도 없이 잘 따라 다니는 듯했던 녀석은 아니나 다를까, 둘쨰날부터 시차 때문에 허우적거리기 시작했고, 엄마와 나는 박물관이나 갤러리 대신 수퍼마켓과 호텔방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마침 시작된 빗줄기는 우리가 아일랜드로 돌아가는 날까지 거의 하루종일 쉬지 않았고, 더위에 지쳐 있던 나는 사실 조카와 호텔방에서 단물 많은 과일과 감자칩을 먹으며 뒹굴거리는 게 싫지 않았다. 그 핑계로 엄마 눈치 보느라 못마셨던 캔맥주도 가끔 깠다.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방이 바로 트램길 옆에 있어 소음이 꽤 있었는데, 내리는 비에 소음도 어느 정도 묻혀 더 이상 거슬리지 않았다.

쮜리히에서 나흘을 보내고 늦은 밤 더블린공항으로 돌아온 우리 세 사람을, 존이 남편이자 사위이자 이모부로서 맞아주었다.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초록, 주황, 흰색의 헤어피스로 만든 우스꽝스러운 더벅머리 가발에 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싸구려 쪼리슬리퍼를 신은 그가, 채환이의 영어이름 'Ricky'를 적어넣은 초록색 종이를 들고 "리키~!"를 부르며 나타났을 때, 정작 이벤트의 주인공인 채환이는 그저 졸립고 어색한 얼굴이었다. 하루의 고된 일을 마치고 이벤트까지 준비해 공항으로 달려온 존의 마음을 생각하면 조카를 달래서라도 이모부에게 좀더 따뜻하게 반응해주라 하고 싶었지만, 그저 잠이 덜 깬 얼굴로 "이모집까지 얼마나 멀어?"를 되묻는 조카도 지금 커다란 모험의 과정에서 나름 삶의 곤함을 경험하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그저, 우리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아일랜드에서 다시 만난 것으로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하기로.


브레이 외딴 집(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를 이렇게 부른다)에서 삼대가 함께 보내는 생활은 생각보다 평화롭고 여유로웠다. 조카와 한방을 쓰게 된 엄마는 손주 봐주시는 재미와 '가족'이라는 이름의 즐거운 북적임에 잠자리의 불편함이나 티비 드라마와 신문 없는 허전함은 벌써 잊으신 듯했다. 피곤이 좀 풀린 채환이는 언제 새초롬했나 싶게 존에게 찰싹 붙어 다녔다. 나와 엄마가 영어로 좀 말해 보랄 땐 입술을 꼭 다물고 있다가 존과 둘이 있을 땐 용감하게 영어로 말을 거는 귀여운 녀석. 존은 채환이를 볼 때마다 '뷰티풀 보이'라 칭찬했다.
"리키는 정말 착한 아이인 것 같아. 근데...그래서 조금 불편하기도 해."
"착한데 불편하다니...왜?"
"나는 저 나이 때 정말 문제아였거든. 가끔 가게에서 물건도 슬쩍 하고 어른들 말은 하나도 안들었는 거친 애였는데, 근데 리키는 너무 다정하잖아. 그런 애들을 별로 못봐서 그런가봐."

존이 일하러 가는 평일에는 우리끼리 걸어서 브레이 기차역까지 갔다. 40분의 긴 걸음을 조카는 조금 힘들어 했지만, 다행히 공원에서 아침산책 중인 브레이의 개들이 조카의 지루함을 달래주었다. 스위스의 꽃길 위에서 행복해하던 엄마는 브레이의 좁은 길가와 낮은 담장 곁에 자라는 들꽃들 곁에서도 자주 멈춰섰다. "어머, 이 꽃도 처음 보는 거네. 스위스에서 보던 꽃들과 또 다르구나! 신기하고 기특해라." '선선해서 걷기 좋다'며 미소짓는 엄마의 발걸음이 평화로워 보여 나는 한숨 놓는다. 우리 집이 타운센터와 꽤 떨어져 있어 엄마가 고립감을 느끼실까, 나도 모르게 걱정 아닌 걱정을 많이 했었나 보다.
브레이 기차역까지의 느린 산책 후엔 기차를 타고 해안가를 따라 달렸다. 하루는 던리어리, 하루는 더블린, 그 다음날은 블랙락... 저녁 때까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퇴근하는 존을 만나 집에 돌아오면 평소보다 많이 움직인 두 다리가 기분좋게 뻐근했다. 존이 쉬는 날에는 우리의 하루가 더욱 풍성해졌다. 위클로산 글렌달록의 아름다운 호숫가를 걷기도 하고, 함께 던리어리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도 했다.

호스에 놀러간 주말에는 드물게 기온이 25도까지 올랐다. 탈의실도 샤워실도 파라솔도 없는 거칠고도 순수한 바닷가에서 우리는 곧 이별해야 할 아일랜드의 뜨거운 여름을 즐겼다. 존과 채환이는 타올 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다로 뛰어 들었고, 나는 엄마와 양산을 나눠 쓰고 두 사람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담소를 즐겼다. 엄마와 나누는 소소한 대화도, 6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조카와 존의 정다운 모습도 선듯 스쳐가는 바람처럼 달콤했다.


일주일 후 우리는 브레이와 더블린에서의 일상을 벗어나 특별한 여행을 떠났다. 나와 존이 아일랜드에서 가장 사랑하는 웨스트코크와 캐리 지방을 자동차로 함께 다니며, 아일랜드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풍경과 음식, 사람들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공유했다. 내려가 살고 싶을 만큼 반했던 클로너킬티의 B&B에서 하룻밤, 캐슬타운베어의 아이리쉬 전통카티지에서 이틀밤, 킬라니의 민박집 같은 B&B에서 마지막 하룻밤.

푸른 대서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작은 카티지 <Four Directions>은 잘 가꿔진 정원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그림 같았다. 이 작은 카티지를 가장 좋아한 건 채환이었다. 녀석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 다락방의 낮은 천장 아래 놓인 매트리스 위에서 뒹굴거리거나 정원에 놓인 비치체어에 누워 만화책을 보는 시간을 가장 사랑했다. 엄마는 정원에 핀 아름다운 꽃들과, 오래된 카티지를 흠잡을 데 없이 운영하는 안주인의 솜씨를 잊을 새 없이 칭찬했다.
아침에는 양들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고, 하루종일 차를 타고 가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아일랜드의 초록 들판과 산들, 하늘의 변덕을 따라 수시로 얼굴빛을 바꾸는 푸른 바다를 질릴 때까지 보았다. 브레이로 돌아온 밤, 몸은 녹초가 되어 있었지만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 모두의 가슴속에 남았음을 느꼈다. 마음이 청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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