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푸조를 떠나 보내며
걱정하던대로 결국 펩시가 사형선고를 받았다. 브레이 모터웨이에 있는 수리센터에 맡긴 지 3일만이다. "엔진이 낡아 금이 갔는데 차가 워낙 오래 되어 엔진만 바꾸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게 펩시를 점검한 기술자의 최종진단이다. 동네에서 몰고 다니는 건 괜찮다고 하는데, 그거 하자고 한달에 20만원 정도 하는 보험료를 지불하는 건 어불성설인 것 같아 일단 폐차 시키는 쪽으로 존과 결정을 내렸다. 이미 10년 넘은 중고차를 헐값에 사서 2년 동안 잘 타고 다녔으니 아쉬울 것 없다지만, 존과 나는 마치 키우던 애완견을 안락사 시키기로 결정한 주인 같은 마음이었다. 하긴 물건에도 정이 드는 법이라, 손 때 묻은 물건은 쉽게 못 버리는 게 인지상정이니, '차'라는 물건에 유난히 애정이 많은 남자들이 차를 잃어야 할 때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존과 나에게 펩시는 특별한 차다. 우리가 막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 선물처럼 찾아왔기 때문이다. 10년 된 녀석치고는 상태가 꽤 괜찮았는데, 우리가 결혼한다는 얘기를 듣더니 주인이 결혼선물로 생각하라며 200유로에 넘겨주었다. 분명 형편이 넉넉치 않았던 우리를 위해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의 선물이었다. 그리고 존은 새 식구가 된 작고 파란 푸조에게 펩시란 애칭을 붙여 주었다.
우리는 펩시를 타고 참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부터 존의 고향인 쿨리, 남쪽으로는 킬케니, 왝스포드, 워터포드...아일랜드 방방곡곡 펩시를 타고 달렸더랬다. 차 안에서 아일랜드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지났고, 지독하게 쌀쌀맞은 비바람과 드럼통 두들기듯 쏟아지는 우박도 맞아봤다. 펩시에는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카세트 오디오가 내장되어 있었는데, 존은 재활용가게에서 어렵게 구한 낡은 카세트 테이프를 지겹도록 반복해 듣곤 했다. 가끔 차 안에서 다투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들은 소소하고 다정한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사람도, 물건도 인연의 끝이 있는 법. 정이 많이 들었는지 키우던 애완견을 떠내보내는 것처럼 슬프지만, 그래도 물건이니까, 새 차가 생기면 금새 잊혀지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독였지만, 결국 펩시가 떠나는 날 아침, 난 울고 말았다. 폐차전문회사 직원 2명이 펩시의 엉덩이를 밀어올려 커다란 트럭 위에 싣고 떠날 채비를 할 때, 그만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말았다. 늙고 병들어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어 팔려가는 차를 보니,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트럭이 출발했고, 펩시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펩시 안녕....그동안 고마웠어. 안녕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