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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Oct 17. 2016

때로 사랑은 일상의 자기장으로 지속된다

2016 가을나기 - 소소한 날들의 소중함에 감사하며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아일랜드로 돌아온 지 2주가 지났다. 그 사이 나는 아일랜드의 차가운 바람에 몸을 옹숭이는 일에 다시 익숙해졌고, 누구의 눈치도 안보고 내가 원할 때 쓸 수 있는 화장실과 부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지 알게되었으며, 존과 둘이 함께 채워가던 소소한 일상의 리듬을 다시 자연스럽게 타게 되었다. 그리고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대거나 소파에 누워 시시껄렁한 할리우드 영화를 함께 보는 등 보잘 것 없어 보이던 시간의 조각들이 실은 내가 존이란 사람과 아일랜드란 나라에 정착할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힘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10월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을 때, 난 존과 함께 말라가에 있었다. 그라나다에서 만났다면 더 좋았겠지만 더블린에서 오는 직항 비행기가 없어 존에게 부담이 되었기에 차선으로 선택한 접선 장소였다. 나는 그라나다에서 버스로 2시간, 그는 더블린에서 비행기로 2시간 반을 날아 우리는 안달루시아의 주도인 말라가에서 한달만의 해후를 했다. 말라가에서 3박4일의 주말휴가를 보낸 후 존은 바로 더블린으로, 난 그라나다로 돌아가 다음날 아침 더블린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우리가 예약한 호텔을 찾아가는 길. 버스터미널 인포메이션센터 직원이 더없이 쉽게 가르쳐준 길을 나답게 여러 번 에돌아 겨우 호텔이 있는 골목을 찾아내고 안도하는 찰나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말라가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이라면 당연히 존일 터였고 분명 존의 목소리였으나 나는 그 생소한 느낌에 놀라 어줍게 주위를 둘러봤다. 1미터 거리에 있는 바의 테라스에 그가 있었다. 벌써 맥주잔을 3분의2쯤 비운 걸 보니 도착한 지 꽤 된 모양이었다. 그는 반가움에 상기된 표정으로, 동시에 나처럼 뭔가 생소함을 느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우리는 짧은 입맞춤을 나눈 후 서로를 꼬옥 안았다. 그리고 그가 맥주를 마시고 있던 테이블에 함께 앉아 난 커피를, 그는 맥주를 한잔 더 시켜 마셨다.
그가 물었다. How are you?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물었다. Are you good? 나는 알고 있었다. 그가 이런 종류의 질문을 반복해서 할 때 어떤 상태인지를. 그는 나에게 뭔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을 소유하게 된 기쁨에 가슴이 벅차면서도, 미묘하게 흐르는 어색한 기류에 당황하고 있었다. 함께한 지 5년반, 결혼한 지 3년반이나 되었고, 떨어져 있는 한달 동안 매일 왓츠앱으로 통화를 하고 문자와 사진 메시지를 보내고 사랑한다고 말했는데도 생겨버린 시간과 마음의 공백. 기러기 아빠들에 대해 생각했다. 한달도 이런데 1년 넘게, 나라면 정말 못할 짓이겠구나 싶었다. 부부가 따로 기도할 때 말고는 떨어져 지내지 말라던 오래전 목사님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다. 결혼하면 하나가 되기 때문에 떨어져 있는 게 더 힘든 것이겠지. 며칠 지나면 다시 회복할 테지만, 그 순간 깊은 슬픔이 마음을 쓸고갔다.

말라가에서의 3일은 휴가라는 명목에 어울리게 안달루시아 태양의 넘치는 수혜 속에서 지나갔다. 낮에는 햇빛이 꽤 뜨거웠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완벽하게 기분좋은 농도의 바람이 불었고 공기는 더없이 상쾌했다. 난 무엇보다 흙먼지도 없고 걸려 넘어질 일도 없는 도심의 맨들맨들한 돌바닥을 걷는 것이 즐거웠다. 말라가는 주요공항이 있는 도시답게 관광객이 많았고, 바닷가를 따라 늘어선 다양한 종류의 레스토랑과 가게들이 앞다퉈 손님끌기에 바빴으며, 밤마다 시내의 크고 작은 골목은 술과 타파스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밤늦은 시간까지 북적였다. 해결해야할 숙제를 안은 우리에게는 버거울 만큼 축제분위기로 가득했다.
우리는 사람들과 뒤섞여 열심히 웃고 먹고 떠들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오리가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로 바쁘게 발을 젓듯 예전의 우리로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즐거운 시간들 사이사이 작은 말다툼과 벽에 가로막힌 침묵의 순간들이 오갔고, 그럴 때면 그라나다에서 견뎌낸 외로움의 신경줄이 끊어질 듯 탱탱해지곤 했다. 대체로 그런 순간들은 몇 잔의 맥주와 와인을 비워낸 밤시간에 찾아왔다. 서로 번갈아 몸을 뒤채며 보낸 어설픈 밤 끝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어쩐지 아주 서글펐다.
이렇게 수많은 감정선이 얽혀있던 나흘의 휴가 끝, 아일랜드에서 만날 날을 하루 놔두고 우린 또 한번의 이별을 해야 했다. 존은 말라가공항으로 가는 기차를, 나는 그라나다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전날 갔던 채식레스토랑에서 아주 맛있게 먹었던 터라 거기서 마지막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하지만 우연히 찾았던 곳을 감으로 다시 찾으려니 쉽지 않았다. 최소한 레스토랑 이름이라도 기억해 뒀어야 했다. 이리저리 헤메다 같은 자리로 돌아오기를 여러 번. 결국 길찾기에 지친 우리는 근처 눈에 띄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바가지까지 옴팡 쓴 최악의 음식으로 마지막 식사를 장식하고 말았다.

우리는 천천히 버스터미널을 향해 걸었다.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이 가까우니 나 버스 타는 걸 보고 자긴 기차역에서 공항 가는 기차를 타겠다 했다. 10월초 말라가의 태양은 여전히 한여름의 것처럼 뜨거웠고, 대형 공사가 진행 중인 도로는 크레인의 소음과 젖은 아스팔트 냄새, 날아오르는 뿌연 먼지들로 어수선했다. 존이 내 손을 찾아 잡았다. 단지 손을 잡은 것뿐이었는데, 콧등이 시큰해졌다. 나도 힘을 주어 그의 손을 맞잡았다. 우리는 먼지 날리는 땡볕의 도로를 함께 헤쳐나가듯 걸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땐 내가 예약한 그라나다행 버스가 떠나기 겨우 5분 전이었다. 서둘러 플랫폼 번호를 확인하고 뛰다시피 도착했다. 내가 버스를 오르는 사람들 줄에 합류하고서야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보았다. 그가 소리없이 웃었다. 그의 눈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도 마주 웃었다. 그리고 소리없이 사랑한다 말했다.
왜 우리는 헤어짐의 순간에서야 서로를 더 누리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는 걸까.
왜 우리는 사랑하면서, 이렇게 많이 사랑하면서 깊고 넓게 품어주는 데 이리 서툰걸까.
그와 헤어져 그라나다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오래도록 눈물을 훔쳤다. 그라나다에서 보낸 순간순간이, 말라가에서의 순간순간이 영화처럼 스쳐갔다.



오늘 우리 저녁 때 영화 보러 갈래? <오아시스>라는 밴드에 대한 다큐멘터린데 재밌을 것 같아. 오랜만에 올리비타에서 피자 먹고 가자. 요 며칠 유난히 피자가 땡기는 거 있지?"
워낙 즉흥적으로 일 벌이는 걸 좋아하는 존이지만 월요일 아침의 제안으로는 조금 뜻밖이었다. 우리는 그만큼 다시 찾은 둘만의 일상에 들떠 있었다. 말라가에서 보낸 힘들었던 시간이 아주 오래 전 일이었던 듯 우리는 더없이 가까웠고, 서로 안에서 안정감을 누리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부부가 아닌 연인이었다면, 우린 그때 헤어질 수도 있었을까. 결혼을 통해 생성된 '지속적 일상성'이 자기장처럼 그와 나를 함께 있도록 계속 끌어당겨 주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이탈리언 레스토랑에서 마르게리따 피자 한판을 나눠 먹고 던리어리의 IMC영화관에서 젤리를 질겅이며 영화를 함께 본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키하버 너머 먼 바다에는 그날따라 유난히 큰 무역선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저기 봐! 저 배가 바로 내가 너한테 사줄 오일탱커야. 조금만 기다려. 로또 당첨되서 7천만 유로 생기면 바로 산다!"
지겹게 듣던 그의 허무맹랑한 약속마저 고맙게 느껴지는 가을밤. 성급하게 물든 낙엽들이 바람을 따라 우수수 거리를 쓸며 지나가는 것을 눈으로 좇다 그의 얼굴을 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나의 현재, 나의 일상이 바로 그곳에 그와 함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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