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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Sep 03. 2016

늦여름의 쉼표, 암스테르담

우연한 두 번째 여행에서 발견한 새로운 매력

암스테르담공항에서 조카를 보내고 중영역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몸매가 잘빠진 최신식 열차는 날쌔게 해저무는 풍경속을 가로질러 18분만에 나를 암스테르담 시내에 내려놓았다. 중앙역에서 트램으로 갈아타고, 트램과 버스와 수많은 사람들이 뒤엉킨 중심가를 지나 인포메이션에서 알려준 정거장에서 내렸다.
트램에서 내려 낮동안 데워진 공기가 천천히 식어가고 있는 거리를 걸었다.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낯설면서도 포근한 암스테르담의 밤공기가 조카와 헤어진 아쉬움을 다독이며 내 안의 여행자 본능을 깨워주고 있었다.



첫 번째 운하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를 건너 좁고 긴 골목 입구에 다다르니 내가 예약한 호스텔 'The Shelter Jordan'의 간판이 보였다.
암스테르담에 온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방문은 대학교 1학년 때 언니와 둘이 유럽배낭여행을 했을 때니까 벌써 20년도 더 전. 그땐 무조건 많은 나라를 돌아보는 게 유럽여행의 관건이었던 시절이었다. 나와 언니도 3주 동안 8개 나라를 찍었고, 암스테르담은 그 중 우리에게 '네덜란드'를 의미하는 도시였다. 하지만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아름다운 튤립과 풍차의 나라'가 아니라 광장 한복판에서 불쑥 약봉지를 내미는 흑인이었다.(고백하자면 그땐 모든 흑인이 무서웠다.) 운하와 운하 사이를 연결하는 작은 다리들을 여러 번 건넜고, 운하를 따라 도시를 돌아보는 운하크루즈도 탔던 것 같다. 레드라이트 구역의 빨간 불빛이 공포영화처럼 무서워 근처에는 얼씬도 안했다. 8월초의 암스테르담은 관광객으로 들끓었고, 아주 더웠다. 게다가 여행 초반에 들이닥친 감기는 계속된 강행군으로 여행 막바지까지 떨어질 줄 모르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마지막 기착지인 암스테르담에서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지난 6년 동안 많은 유럽도시를 여행했지만 이상하게도 암스테르담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번도 없다. 특별히 나쁜 기억도 좋은 기억도 없이, 그저 '이미 가본 도시'로만 남아있었기 때문일까.
그런데 난 지금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열망하지 않았는데도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된 이 도시가 벌써 아주 많이 좋아지고 있었다.

아침이면 운하를 따라 산책을 했다. 18명이 함께 자는 방에서 평소 습관대로 아침 6시에 눈을 뜨고 나면, 할 수 있는 일은 아침산책뿐이다.
상쾌한 아침공기를 가르며 수많은 자전거들이 녹음 가득한 가로수 곁을 달려가는 풍경 자체가 장관이다. 북유럽 패션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세련된 젊은이부터 커다란 시장바구니를 앞에 달고 가는 70세 할머니까지, 암스테르담에 사는 모든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 같다. 실제로 암스테르담은 '자전거의 천국'이라 할 만큼 자전거 도로와 신호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그래서 그런가, 자전거들이 거의 폭주족 수준으로 달린다. 그러고 보면 자전거 크락숀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도로 끝으로 밀려나 걸어가는 사람은 대부분 관광객이었다. 나는 아무 때나 멈춰설 수 있는 자유로움 때문에 두 다리로 다니는 여행을 선호하지만, 다시 암스테르담에 오게 되면 꼭 두 바퀴 무리에 섞여 운하 곁을 쌩쌩 달려보리라 생각했다.

아침 8시부터 호스텔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무료로 제공되었다. 기나긴 산책 후 허기진 배로 돌아온 나는 늘 첫 손님으로 아침을 먹었다. 식당의 작은 나무테이블마다 성경책이 한 권씩 놓여 있었는데, 그 책을 펼쳐 눈에 들어오는 구절을 몇 줄씩 읽을 때마다 인스턴트 커피와 차가운 식빵 두 조각이 전부인 겸손한 아침식탁이 '나를 늘 사랑하며 지키신다'는 그분의 고백으로 풍성해지곤 했다.
대부분의 긴 낮시간은 발길이 닿는 데로 느리게 산책하며 보냈다. 사실 꼭 가보고 싶은 박물관 리스트만 뽑아봐도 일주일이 부족할 것 같았지만 과감히 다 포기하고 고흐미술관과 안네프랑크 하우스만 이번 여정에 남겨두었다. 박물관이든 갤러리든 벽에 걸린 작품 하나도 대충 지나치지 못하고 진을 빼며 보는 관람습관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에 규모가 큰 박물관이나 갤러리 하나, 작은 갤러리 두 세개쯤 돌아보는 게 딱 내 호흡에 맞았다. 더구나 유럽에 있는 도시를 여행할 땐 유명한 곳이라 놓치기 아깝다고 아픈 다리를 질질 끌고 가는 일이 없어졌다. 유럽에 사니까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혹은 착각 때문에 생긴 여유일 것이다.

20년만에 다시 만난 암스테르담은 내 옅은 기억 속의 도시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도시 중심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운하들은 복잡하다기보다 운치와 낭만으로 가득했고, 여름휴가 관광객이 적당히 빠져나간 거리마다 늦여름의 선선한 여유가 기분좋게 스며들고 있었다.
특히 내 호스텔이 있는 동네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암스테르담 북서쪽에 위치한 이 지역의 이름은 '요르단(Jordan)'. 시티센터와 가까우면서도 관광객의 홍수를 피해 조용히 쉴 수 있고, 예술가들의 아뜰리에와 개성 있는 카페들이 모여 있는 매력적인 동네다. 내가 묵은 'The Shelter Jordan'은 순수하게 크리스찬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되며 술과 마약의 반입을 금지하는 크리스찬 호스텔이었는데, 젊고 활기찬 분위기는 여느 호스텔 못지않았다. 매춘의 합법화와 대마초 흡연의 허용으로 알려진 도시의 이미지와 상반되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대안적인 호스텔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도 종교와 인종,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암스테르담의 남다른 포용력 덕분이 아니었을까.


떠나기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정보 덕분에 고흐미술관은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갔다. 개관시간부터 끝없이 늘어선 줄을 피해 E-ticket을 보여주고 곧바로 입장. 아날로그 인생에서 모처럼 건진 디지털정보력의 수혜에 뿌듯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고흐미술관은 네덜란드가 고흐의 나라인 만큼 작품규모가 세계 최고인 데다 작품들과 함께 고흐의 전 인생을 깊이 조명할 수 있도록 한 연대기 구성, 작품 자체뿐 아니라 작품이 탄생한 배경과 작품의 의미 등 풍부한 오디오가이드의 해설까지 가히 수준급이었다.
나는 한 작품 당 3~5분의 짧지 않은 오디오 해설을 꼭꼭 씹어 들으며, 아주 천천히 작품들을 감상했다. 그의 천재적 예술성이 나에게 전이되기 바라는 탐욕으로 그 강렬하고 고독한 붓터치들을 마음으로 훑고 핥고 부벼대는 사이, 가슴 한켠이 쓸쓸하고 가난해졌다. 마치 그가 아무도 없는 너른 벌판에서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울려퍼졌을 허망한 총소리를 들어버린 것처럼.


안네프랑크 하우스를 보러 간 날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더블린으로 돌아가기 전날이라, 비가 온다고 미룰 수 있는 날이 남아있지 않았다. 사실 전날 보려고 갔다가 4겹으로 포개진 긴 줄을 보고 기겁해 다음날로 미룬 상황이었다. 그냥 포기하고 운하 옆의 예쁜 카페에서 비구경이나 할까 생각도 잠깐 했지만, 고흐미술관과 함께 1순위 목록에 있었던 곳을 포기하려니 마음의 구멍이 너무 컸다. 그래서 계획대로 강행하기로 마음 먹고 빗줄기 속에 늘어선 긴 행렬의 꽁지에 합류했다. 날씨 때문인지 다행히 줄은 전날보다 훨씬 짧았다. 게다가 휴대폰 없던 시절 빗속에 서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던 추억처럼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1시간반 정도를 기다려 드디어 안네프랑크가 실제로 살았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네의 아버지 오토프랑크의 공장사무실이었던 빌딩에는 그가 가족을 피신시키기 위해 창고를 개조해 만든 비밀의 방이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너무나 그대로라, 당시 안네의 가족과 함께 숨어살았던 이들이 느꼈을 공포와 절망이 생생히 느껴졌다. 방마다 전시되어 있는 안네의 사진과 일기 원본들은 한 어린 소녀가 죽음의 공포 속에서 붙잡았던 희망과 꿈, 행복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이웃의 눈에 띌까봐 창문을 온통 검은 슬레이트로 가려놓은 안네의 방에서는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안네가 벽에다 직접 오려붙인 잡지광고 속의 예쁜 여자모델 사진과 아름다운 외국의 풍경이 담긴 우편엽서들을 보는데, 미소와 눈물이 동시에 났다. 숨막히는 일상 속의 소소한 행복이 그곳에 있었다. 아무리 끔찍한 시대에도 우리에겐 행복을 느끼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난 그렇게 믿는다.

안네프랑크 하우스를 보고 나오니 밤 9시.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졌지만 암스테르담 여행의 마지막 밤이니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는 아쉬웠다.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 마침 주택가 골목에 숨어 있는 작은 술집을 발견하고 들어가 암스텔 생맥주 한잔을 시켰다. 첫눈에도 한 자리를 오래 지킨 터줏대감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곳. 올드팝송이 흐르는 어둑시근한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목조 테이블에 놓인 촛불의 조명을 받아 쏟아지는 빗줄기들이 스타카토로 반짝이며 튀어올랐다. 눈이 부셨다. 몸은 비에 젖어 축축한데 마음은 포근하고 편안해졌다. 한국의 늦여름 소나기를 만난 느낌. 암스텔에서 카스 맛이 났다. 엉뚱하게도 그 순간, 난 한국의 늦여름 소나기와, 친구들과 함께 부딪치던 시원한 맥주 한잔이 못견디게 그리워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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