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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Jun 21. 2017

가족의 의미를 찾아가는 어느 더블리너의 자화상

<아이리쉬 연극> 프랭크 돌보기(Minding Frankie)

지난 2012년에 작고한 아이리쉬작가 메이브빈치(Maeve Binchy)의 소설을 각색한 연극 한편이 게이티극장 무대에 올랐다. <마인딩 프랭키>. 한국말로 번역하면 '프랭키 돌보기'쯤 되겠다. <마인딩 프랭키>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일단 읽어본 메이브빈치의 책들이 모두 재미있었기에 의심없이 표를 질렀다. 게이티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이 대부분 40대~60대 여성이라는 걸 알아채는 순간 알았다. 이 연극은 다름아닌 '메이브빈치' 팬들을 위한 작품이란 걸!

"어느 나라 사람? 아일랜드에 여행 왔나요? 아님 여기 살아요?" 1막과 2막 사이 쉬는 시간, 옆자리에 앉은 50대 중반의 아이리쉬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한국에서 왔는데 아일랜드에 7년째 살고 있다고 했더니, 연극 재밌게 보고 있냐고 묻는다. "네, 메이브빈치의 책을 각색해서 만든 작품이라고 해서 보러 왔어요." 그녀의 얼굴에 점점 더 호기심이 묻어난다. "메이브빈치의 책 읽어봤어요?" 너댓권 읽어봤고 아주 좋아하는 아이리쉬 작가라고 말했더니, 그녀의 얼굴이 아주 환해졌다. 아마도 어떤 동양여자가 혼자 연극을 보러 극장에 올 만큼 자기나라 문화에 관심이 많고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기뻤을 것이다. 내가 봉준호나 박찬욱 감독의 이름을 대며 한국영화를 엄청 좋아한다고 말하는 외국친구를 보며 느꼈던 뿌듯함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내 책장에도 메이브빈치의 소설만 4권이 꽂혀있다. 게다가 모두 완독했다. 읽고싶은 책은 많은데 책 읽는 속도가 마음을 못따라가 중간에 다른 책으로 갈아타곤 하는 내 버릇을 생각하면 스스로 기특할 노릇이다.

아일랜드살이 두 번째 해인 2011년이었던 듯하다. 아일랜드에 살다보니 동시대 아이리쉬작가들의 소설작품이 궁금해졌고, 영어공부도 할 겸 고른 원서가 우연히 메이브빈치의 '타라로드(Tara Road)'였다. 작가나 책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을 때라 '베스트셀러'라는 표지문구에 넘어간 건 사실이다. 그런데 너무 재밌있는 거다. 더블린이라는 도시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자연스럽고도 예리한 묘사, 복잡다단한 현실의 삶을 유머와 통찰로 버무려내는 솜씨는 분명 그저그런 베스트셀러 작가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책에 한눈 안팔고 완독. 그즈음 서점에 들렀다가 메이브빈치의 책들이 반값 세일 중인 것을 발견하고 2권을 충동구매, 이후 브레이 옥스팜(Oxfarm)에 물건구경 하려고 들렀다가 또 다른 그녀의 책이 깨끗한 상태로 꽂혀있는 것을 보고는 2유로에 득템. 이렇게 총 네 권의 책이 책장에 나란히 놓이게 된 것이다.

'메이브빈치'라는 작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 다음이다. 알고 보니 그녀의 작품을 좋아하든 아니든 아이리쉬라면 누구나 이름을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작가였다. 수많은 문학상을 받은 것은 물론 다양한 외국어로도 번역되었다.(그런데 왜 아직까지 한국에 한권도 소개가 안됐는지 의아하다. 내가 번역해 봐야겠다!) 더블린 도키 출신으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고, 데뷔 이후 꾸준히 가족을 비롯한 인간관계의 의미를 묻고 성찰하는 작품들을 썼다. 아일랜드의 소도시들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군상이 펼쳐가는 배신과 상처, 용서와 화해, 삶과 죽음의 이야기들은 무척 아일랜드스러우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의 보편성 안에서 힘을 얻는다. (그녀의 책들을 읽으면서 어딘가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들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작가의 작품세계를 알아가고 있던 즈음, 그녀가 도키 자택에서 작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73세였다는데, 신문 부고기사 속의 그녀는 여전히 소녀처럼 해맑았다.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부고를 들은 것처럼 슬프고 안타까웠다.



<마인딩 프랭키>는 메이브빈치의 2010년작 동명소설을 무대로 옮긴 첫 작품이다. (감독 Peter Sheridan, 주연 Steve Blount & Clare Barrett) 이야기는 알콜중독자인 '노엘'(Steve Blount)이 병원에서 걸려온 뜻밖의 전화 한통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스치듯 사귀었던 과거의 여자 '스텔라'. 현재 위독한 병에 걸려 병원에 있는 그녀가 그에게 꼭 할 얘기가 있다며 병원에 방문해 달라고 부탁한다. "뱃속에 당신의 아기가 있어요. 여자아이고 이름은 프랭키에요. 당신이 이 아이를 맡아주세요." 내 한몸 간수하기도 힘든데 아이라고? 게다가 내 아이라는 확신도 없다. 하지만 사회복지사 '모이라'(Clare Barrett)가 아이의 입양인을 물색하는 동안 노엘의 마음이 바뀐다. 이 아이가 내 인생을 바꿀 마지막 기회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노엘은 아이를 맡아 기르기로 결심하고, 모이라를 찾아가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며 양육권을 주장한다. 하지만 모이라는 노엘의 부모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양육권 문제가 평행선을 달리는 동안 프랭키가 태어나고, 염려대로 스텔라는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노엘은 스텔라의 유언을 따라 어부지기로 임시 보호자가 되어 갓난아기 프랭키를 돌보기 시작한다. 물론 아기보기는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프랭키를 위해 결심했지만 술을 끊는 것도, 사람들의 색안경 낀 시선 속에서 꿋꿋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노엘은 좌절과 절망을 거듭하면서도 프랭키의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의 진심은 결국 모이라의 마음도 흔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랭키가 자기 딸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그는 계속 프랭키의 아빠로 살 것인지 아니면 아기를 포기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

작품은 알콜중독, 양육권과 입양문제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를 다루면서도 결국 '가족'이라는 핵심적인 단어로 귀결된다. 결점 많은 한 남자가 이루려고 발버둥치는 가정은 안정적이고 완벽한 양부모 가정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하나뿐인 가족인 딸도 피붙이가 아니다. 하지만 생명과 생명이 만나 삶을 나누는 일은 언제나 값지다. 그리고 그 가치는 국적과 언어, 문화적 배경을 초월한다. 무대의 배경과 인물 캐릭터, 배우들이 구사하는 유머는 매우 더블린스럽지만, 한국인인 내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가치의 보편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관객들의 반응이다. 배우의 대사와 대사 사이, 거침없는 응원의 박수를, 때론 '아!' 하는 탄성으로 안타까움을, 때론 대사가 안 들릴 정도의 박장대소를 쏟아내며 무대를 즐기는 메이브빈치의 팬들을 보며, 문득 그녀가 부러워졌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세상을 떠나겠지만, 각자 남기고 가는 것은 다를 것이다. 그녀는 한번뿐인 인생에서 참 값진 것을 남기고 갔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들. 그녀는 지금 이 세상에 없지만, 그녀가 남긴 이야기들은 여전히 오늘도 누군가의 아픈 마음을 보듬고 누군가를 미소짓게 한다. 나도 그렇게 위로와 희망이 되는 글들을 남길 수 있기를, 다시 한번 꿈꾸게 해준 날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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