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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Aug 10. 2017

어느 여름날의 부유(浮遊)

삶의 조각들이 공기입자처럼 떠다니던 시간에 대하여

정말 여름이다!,라고 소리낼 수 있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봐야 최고온도가 22~25도 사이지만, 그래서 더없이 쾌적한 여름이다. 하지만 이런 날은 길어야 2주 정도다. 한국이 가장 무더울 8월 초부터, 아일랜드의 여름은 급격히 저물어간다. 써머타임이 해지되고 낮의 길이가 한 시간 늘어나도 급속도로 짧아지는 해의 속도를 붙잡을 수는 없다. 지난해 갑자기 쌀쌀해진 아침공기에 깜짝 놀라 달력을 봤더니 8월 둘째주였던가.

특히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고 어둠을 무서워하는 나에게 주어지는 2주의 여름은 하루하루가 눈물나게 아까운 시간이다. 밤 11시에도 희미한 빛무리에 나무의 실루엣이 어른거리고, 아침 5시만 넘으면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잠을 깨운다. 집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이상하게 초조해진다. 무작정 저 빛 속으로 뛰어들어야만 할 것 같다. 그리고 무조건 행복해져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감기에 걸렸다. 나는 목이 약해서 꼭 증상이 목부터 오는데, 며칠 전 자려고 눕는데 목이 칼칼하게 아프더니 다음날 아침 목을 간지르는 얕은 기침들이 터졌다. 콧물 대장부답게 콧물도 아낌없이 흘러주신다. 덕분에 휴대용티슈 소비량도 2배로 증가했다. 미열이 오르내릴 때마다 머리도 어질어질하다. 지난 번처럼 심해지기 전에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일랜드에서는 동네의사 한번 보는 데만 55유로. 그러므로 절대 병원에 갈 만큼 아프면 안된다.

늘 존의 출근길에 따라 나서다 모처럼 집에서 푹 쉬려고 존을 혼자 보냈는데 여간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쉬는 것도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때문일까, 다시 자려고 누웠지만 잠은 오지않고 마음만 더 어수선해져서 나도 모르게 자꾸 몸을 뒤챘다.

결국 이불을 걷고 나왔다. 집이 난장판이라 마음이 더 그런가, 이럴 때 집안청소라도 싹 해놓으면 마음도 덩달아 좀 말끔해지련만 몸이 개운치 않으니 겁도 없이 한없이 게을러진다. 대충 짐을 싸들고 옷도 대충 걸쳐입고 밖으로 나갔다. 특별한 목적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일단 기차역까지 걸으며 생각해보기로 했다. 오히려 몸을 좀 움직이니 아픈 곳에 집중하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7월이지만 한국의 9월처럼 한낮에만 살짝 덥고 바람이 불 때마다 선듯했다. 햇살은 따갑고 눈부셨다. 주변은 온통 초록빛. 내가 만약 아일랜드를 떠나 다른 곳에 살게 된다면, 분명 아일랜드의 여름이 가장 먼저 그리워질 것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몸은 무거운 중력에 휘청거리는데 바람에 울렁이는 공기는 한없이 가벼웠다. 전에도 가끔 이런 느낌이 들었던 때가 있었다. 혼자 살던 원룸에서 독한 감기약을 먹고 잠깐 오수에 빠졌던 때. 일어나보니 티셔츠는 땀으로 축축하고 열이 내린 이마는 시원했다. 늦은 오후의 고요가 평화롭고도 쓸쓸하게 방안을 감돌고, 아주 나른하고도 비현실적인 자유와 고독이 동시에 날것의 느낌으로 생생하게 등줄기를 타고내리던.

그때와 비슷한 비현실감. 자유와 고독의 미묘한 조화. 30분쯤 걸어 브레이기차역에 닿았을 때, 맞은편 브레이 해변에서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몸을 움츠렸다. 아일랜드의 바람은 여름에도 날이 있다.

호스행 다트가 도착했다. 더블린 시티를 거쳐 호스빌리지까지 가는 열차다. 킬라이니역에서 도키역까지 가는 길은 언제봐도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답다. 킬라이니해변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내가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아일랜드 바다에 몸을 담글 수 있을까? 물에 들어가기도 전에 날 선 바람이 심장을 멎게 할까 무섭다. 벌써 7년째 이곳에 살고 있지만 나는 아일랜드 바람의 강한 자존심을 이기는 방법을 모른다.

문득, 내가 느끼는 감정들의 원인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감기 탓을 했을 뿐 감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일랜드의 짧은 여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이유'로 합리화했을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내 마음 깊은 곳에 있었다.


아일랜드에 뿌리내렸다고 생각한 삶이 중력을 잃고 부유하고 있었다. 올해 안에 결실을 맺기 위해 노력했던 일들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속상했다. 첫 책을 위한 출판기획서를 보내놓고 연락을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1년처럼 길고, 올해 9월에 신촌의 소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던 나의 첫 번역대본은 극장 사정으로 언제 무대에 올릴 수 있을지 오리무중에 빠졌다. 덩달아 약속된 약간의 번역료도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게다가 모두 한국에서 진행되고 이루어져야 하는 일들인데 시간차와 물리적 거리감 때문에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없어 답답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꿈꿔온 길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잃지 않기 위한 내 자신과의 싸움이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을 계속 가면 내가 예상한 목적지가 나올까? 혹시 내 욕심으로 내것이 아닌 것을 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로 마음이 슬프고 어수선해질 때마다 조용히 하지만 간절하게 하나님께 뜻을 물었다. 솔직하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구했지만 만약 당신의 뜻이 아니라면 내려놓겠다고, 대신 나를 위해 예비하신 길을 보여달라고 기도했다. 그 길이 내가 생각했던 길과 다른 모습이더라도 기꺼이 가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산티아고 순례길의 떠난다. 커다란 베낭의 무게에 어깨가 부서질 것 같고 발은 물집투성이가 되도록 걷고 또 걸으며 지난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꿈꾸고 설계한다. 하지만 현실의 삶으로 돌아와보면 순례길의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인도해줬던 노랑화살표도, 둥근 조가비 표시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노랑화살표와 조가비를 그려넣으며 길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러니, 산티아고길처럼 한달의 일정과 하루 20~30km라는 목표치를 설정해 놓는 것은 무의미하다. 누군가에게는 한달이 걸릴 수도, 누군가에게는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산티아고길처럼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걸을 때보다 혼자 걸어야 할 때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그만큼 외롭고 고독할 때도 더 많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를 향해 걷는 것이다. 같은 길을 걷는 산티아고순례의 경험도 개인마다 다른데, 전혀 다른 인생의 길을 걷는 우리는 더욱 다양한 사유와 경험을 하지 않을까.



8월 초,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형부가 앞으로 며칠을 못넘길 것 같다고 했다. 암으로 투병 중이었던 형부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9월에 한국에 가려고 사둔 비행기표를 그냥 두고 급하게 한국행 편도티켓을 끊었다. 잠은 오지 않고 마음은 까마득한 13시간의 비행. 하지만 인천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카톡문자는 '형부가 하늘나라에 갔다'는 소식이었다. 다리 힘이 스르르 풀리며 눈앞이 흐려졌다. 분명 형부도 나를 기다려주려 애썼을 것이다. 내가 좀더 일찍 왔어야 했다. 아일랜드와 한국의 머나먼 거리가 원망스러웠다.

엄마집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장례식장을 오가며 사흘을 보냈다. 갑자기 뒤바뀐 날씨와 시간, 7년만에 만난 한국의 무더위, 예상하지 못한 슬픔의 무게에 몸과 마음이 휘청였다. 그렇게 입관과 화장, 장지에 묻고 비석을 세우는 모든 절차가 끝났다. 그리고, 멈추어버린 것같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언니는 아픔을 추스르고 앞으로의 시간을 희망으로 품으려 애쓰고 있었고, 난 그런 언니 곁에서 형부가 떠나버린 텅 빈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려 노력했다.


딩동딩동. 갑자기 오느라 한국행 소식을 알리지 못한 아일랜드에서 친구들이 보낸 메시지들이 도착한다. '다음주에 뭐해?' '페북에서 소식 봤어. 무슨 일이야?' 친구들의 문자에 하나하나 느리게 답장을 보내며 내가 두고 온 아일랜드의 여름을 생각했다. 나른하고 비현실적이었던 시간, 그속에서 부유하던 고민의 조각들이 또 다른 여름의 시간 속에서 서걱거리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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