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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Sep 01. 2017

교도소에 울려퍼진 블랙독밴드의 연주

마운트조이 교도소 안, 어떤 삶들을 엿보다

지난 5월의 일이다. 존이 일하는 '마운트조이 교도소'에서 '트래블러스데이(Traveller's Day)'를 기념하는 콘서트가 열렸다. 요리강사인 존이 특유의 마당발 솜씨로 기획한 음악이벤트다. 나도 그 이벤트에 뮤지션으로 참여할 기회를 얻었는데, 존이 나에게 "아일랜드 교도소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라며 기획자의 입김을 불어넣은 덕분이다.

사실 내 별명을 밴드이름으로 붙여넣고 나한테 '퍼커션' 자리를 맡겼을 때만 해도 모든 것이 장난같았다. 그런데 벌써 4개월째 '케네디즈(Kennedy's)'라는 아이리쉬펍에서 일요일 저녁마다 존, 제임스와 함께 공연하고 있다. 케네디즈는 이름 때문인지 몰라도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온 관광객이 많이 온다. 그래서 가끔 팁을 달러로 받는 재미도 있다.

청중이 아닌 뮤지션으로 청중을 마주보는 느낌은 낯설고도 짜릿하다. 사람들이 우리 연주에 박수를 보내고, 때로 개인으로 다가와 음악 잘 들었다, 정말 즐거웠다 등의 칭찬을 부려놓고 갈 때면, 나는 내가 아닌 연극 속의 인물이 된 기분에 젖곤 한다. 그런데 이번엔 교도소다. 한국의 교도소에도 발 한번 안 디뎌본 내가 아일랜드 교도소 안에 들어가 수감자들을 위한 연주를 하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남자성인 범죄자를 수감하는 '마운트조이 교도소(Mountjoy Prison)'는 리피강 북쪽 마운트조이(Mountjoy) 지역에 있었다. 단일교도소 중엔 아일랜드 최대규모다. 나는 처음, 시티 중심에 이런 규모의 교도소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집값 떨어질까 걱정하는 동네주민들의 반대시위가 빗발치지 않았을까 싶다.

아일랜드정부는 교도소 수감자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실시한다. 사회재적응을 위한 일종의 재활프로그램으로, 수감기간 중 교도소 안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과 형을 곧 마치고 나갈 사람을 대상으로 교도소 밖의 시설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대학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과정도 있다고 하니, 추운 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홈리스보다 훨씬 나은 복지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소한 먹을 것과 입을 것, 잠잘 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감시받지 않고 마음껏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자유를 양팔저울에 올려놓으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까?

이곳에서 일년에 서너 번씩 진행하는 음악콘서트 등 문화행사는 수감자들의 숨통을 틔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수든 고의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서가 불안정하고 폭력충동에 취약한데, 교도소라는 좁고 답답한 공간, 통제된 환경은 이런 성향을 더욱 부추긴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강력한 처벌 이전에 정서의 치유, 자신과 타인에 대한 신뢰 회복이다. 여기에 사용되는 효율 높은 도구가 바로 예술이다. 수감자들은 미술, 음악, 문학 등의 전통적인 분야부터 요리나 영화 같은 실용분야까지 다양한 창작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존은 마운트조이 교도소에서 '요리'를 가르친다. 이곳에서는 조금 더 포괄적인 의미의 '케이터링(Catering)'으로 분류한다. 수강신청은 선착순으로 마감하는데, 종종 수업 중간에 와서 들여보내달라고 떼를 쓰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을 그냥 내칠 수 없어, 존은 늘 문을 열어준다. '다음부터는 꼭 미리 신청을 하고 수업시간에 맞춰 들어오라'고 주의를 줘도 꼭 그런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인권이 많이 개선됐다지만 교도소에서 나오는 음식이 어련하겠어? 게다가 다 장정들이니 배도 쉬이 고플 거고. 그런데 요리수업에 오면 평소에 못먹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답답한 방에서 벗어나 조금이나마 자유로운 공기를 맛볼 수 있으니까 이런 교육시간이 간절하겠지."

존은 수감자 학생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교사다. 그들이 교도소에 들어온 이유를 알게 되더라도 편견 없는 인간애로 대하려고 노력한다. 학생들에게 다음 시간에 만들고 싶은 음식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하고, 수업시간에 만들어먹고 남은 음식이 있으면 방으로 가져갈 수 있게 허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학생이 존의 노력에 감동으로 반응하는 건 아니다. 다음 수업을 위해 냉장고에 넣어둔 계란이나 고깃감이 없어지는 건 약과고, 한번은 식칼 하나가 사라져 전 수감동이 비상에 걸린 적도 있다. 학생들 사이에 거친 말싸움이 일어나는 건 다반사고 최악의 경우에는 신체적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어떻게 교도소 안으로 유입되는지 모르지만 마약에 취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퇴근 후 만난 존의 얼굴이 유난히 지치고 굳어보이는 날이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오늘 내 수업에 들어오던 한 수감자가 홀딱 벗고 옥상 위에 올라가 소란을 피웠어. 덕분에 수업은 취소되고, 그 사람 내려오게 하느라 전 교도소가 초비상이었다고..." 그 수감자는 약에 취해 있었다고 한다. 위태롭게 난간 끝에 서서 비틀거리며 혀가 꼬여 알아듣기 힘든 말로 계속 무언가를 외쳐댔는데, 존이 알아들을 수 있었던 단 한 문장은 '존의 요리수업에 가야하니까 이제 내려가겠다'는 말이었다.

교도소 교육은 학위나 취업을 위해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들과 많이 다르다.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기보다 사회적 단절과 개인의 상처에서 비롯된 불안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치유하고 자신감과 사회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더 비중이 실려있다. 존의 역할도 요리기술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요리'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돌보는 것이다. 정신적인 소비가 많은 일이기에, 항상 긍정과 희망으로 에너지를 충전하지 않으면 금방 방전되고 만다. 그래서 존은 "하나님이 주신 일이라는 믿음이 없었으면 못 버텼을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마운트조이 교도소의 행정실무를 담당하는 제인이 우리를 '의료동' 건물로 안내했다. 수감자가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 진료를 받는 곳이기도 하지만, 수감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싸움 중 상해를 입고 오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외상치료 후에도 연이은 보복사건이 생길 것을 우려해 약자 쪽을 당분간 그곳에 머물게 하기도 한다.

의료동 2층의 작은 방으로 들어섰다. 우리는 제인과 함께 무질서하게 흩어져있는 탁자와 의자를 공연장 형태로 정리했다. 제임스와 존, 나, 아이리쉬 전통 파이프 연주자 피아크라까지 뮤지션 4명이 앉을 의자를 반원으로 놓고, 우리와 마주 보게 관중석의 의자를 배열했다. 정리가 끝날 즈음, 서너 명이 쭈볏쭈볏 모습을 나타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청춘들이었다. 폭력적이기만 할 것 같았던 수감자들의 수줍음이 낯설었다. 추리닝 바지에 손을 찌른 채 맨 뒤줄 의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10분쯤 더 기다리자 스무 명쯤 되는 사람들이 작은 방 안을 꽉 채웠다. 제인은 우리를 한명한명 그들에게 소개했다. 내 이름과 함께 '코리아'에서 왔다는 소개가 이어지자, 갑자기 시끄럽게 환호를 지르며 탁자를 두들겼다.

음향시스템도, 우리의 연주도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연주를 진심으로 즐겨주는 청중이 있어 그 시간은 완전하게 아름다웠다. 짧은 1시간반의 시간 동안 나는 음악을 통해 그들에게 전해지는 위로를 느꼈다. 그날 하루도 네모난 빌딩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답답했을 이들에게 우리의 음악이 자유롭고 신선한 공기가 되어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공연을 마치고 악기를 정리하는 동안 몇몇은 우리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멋진 공연이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수감동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제인이 간식으로 준비한 과자봉지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이미 받고도 안받은 척 하나 더 받으려는 사람들로 작은 몸싸움이 일기도 했다. 나는 좁은 방을 빠져나가 다시 수감동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며, 교도소에서 보내야 하는 세월이 그들의 인생에서 썩혀버리는 시간이 되지 않기를, 부디 새로운 삶을 다짐하고 준비하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기를 감히 기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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