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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Jun 01. 2018

넘치게 채워주는 밥그릇 인심, ‘Govinda’s’

83 Middle Abbey Street, Dublin1, Ireland

오후 12시 정각. 알록달록한 페인트로 채색된 셔터가 서서히 올라가고 출입문에 걸린 사인판이 ‘오픈’으로 바뀌면, 어디선가 나타난 사람들이 하나둘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간다. 사람들이 차례대로 모락모락 김이 나는 음식 트레이 앞에 줄을 서면, 서빙 준비를 마친 직원이 다가와 크기별로 쌓여 있는 접시를 가리키며 어떤 것을 원하는지 물어본다.


여기는 더블린시티 중심에 있는 채식레스토랑 <고빈다스>. 이곳의 메뉴들은 전통적인 인도음식은 아니지만 강황, 큐민, 터머릭 등 인도커리에 사용되는 향신료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인도음식과 가장 비슷하다. 기본 메뉴로는 스프, 흰밥과 현미밥, 콩요리, 야채요리, 두부, 수제치즈, 렌틸소스와 오늘의 메인요리가 있고, 디저트로는 홈메이드 비건케이크가 있다. 이 중 스프와 콩요리, 야채요리, 메인요리, 케이크는 매일 달라진다. 접시 크기에 따라 스몰은 6.5유로, 미디움 8.5유로, 라지 10.5 유로. 하지만 접시 크기와 상관없이 스프와 케이크를 제외한 모든 메뉴를 골고루 맛볼 수 있다. 먼저 원하는 사이즈를 고르고 원하는 음식을 말하면 직원이 접시에 담아주는데, 푹푹 퍼주는 인심이 우리네 옛날 시골인심이라 웬만한 남자성인도 스몰사이즈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실제로 접시가 이미 다 찼는데 고객이 원하는 음식이 더 있으면 작은 접시에 따로 담아 내주기도 한다. 물론 추가요금은 받지 않는다. 같은 이름의 식당이 앤지어 스트리트에 또 하나 있다. 같은 단체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라 가격과 음식 종류, 맛, 모두 비슷한데, 앤지어 스트리트 지점은 음식이 내 입에 좀 짜서 개인적으로는 에비 스트리트에 있는 지점을 선호한다.

고빈다즈를 처음 알게 된 건 8년 전. 내가 더블린에 와서 처음 발견한 채식식당이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보고 찾아간 건 아니었다. 아직 더블린이란 도시도, 처음 해보는 외국생활도 낯설고 막막해, 매일 학원수업 후 시내 이곳저곳을 배회할 때 우연히 걸음이 닿았다. 일단 ‘베지테리언’이라고 쓰인 간판이 반가웠고, 시골밥집처럼 후줄근한 외관을 보니 어쩐지 밥값도 쌀 것 같았다. 처음 들어가는 순간 일반식당과 좀 다른 분위기를 느꼈는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때문이었다. 가사가 있는 노래인데 분명 영어는 아니었다. 내가 짐작할 수 있는 다른 외국어도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같은 문구를 반복해서 읊어내는 것이 한국의 절에서 들어본 불경소리와 비슷했다. 불경에 멜로디를 입힌 것 같다고 할까. 나중에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이곳은 아일랜드 힌두교단에서 운영하는 식당으로, 내가 들은 노래는 산스크리트어로 읊는 경전 소리였다. 최근에는 식당 이층에 예배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종교적인 색채가 이국적이다 싶다가도, 가끔은 반복되는 독경소리가 고압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이렇듯 종교적인 이유에서 출발한 채식식당이지만 자세한 내용을 알고 찾아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은 채식인이거나 비채식인이지만 음식 양이 푸짐하고 값이 싸서 오는 사람들이다. 물론 첫째 이유는 일단 음식이 맛있다는 것. 인도커리를 좋아하는 나에게 인도향신료를 주로 사용하는 고빈다즈의 음식은 입에 잘 맞는다. 무엇보다 늘 기본으로 쌀밥이 준비되어 있어 빵이 물릴 때마다 생각나는 곳이다. 솔직히, 깨끗하고 아늑한 분위기, 친절한 서비스를 찾는 사람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아주 배가 고플 때나 주머니가 가벼울 때, 혹은 나처럼 샌드위치로 때우는 점심이 지겨워질 때 찾아보기를. 늘 공기가 쌀쌀한 아일랜드에서 밥 위에 갖은 야채요리를 듬뿍 얹어주는 따듯한 덮밥 한 그릇이 뱃속을 든든하게 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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