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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Aug 31. 2018

요즘 뜨는 핫한 동네, Stoneybatter

더블린 리피강 북쪽의 새로운  유행을 엿보다

스미스필드에서 혜정언니를 만나 함께 커피를 마실 때였다.

“요즘 스토니바터 쪽으로 많이 가더라고. 스미스필드는 이제 너무 비싸니까.“ 

‘더블린으로 이사 온다면 스미스필드에 살고 싶다’고 했더니 언니가 알려준다. 그런데 ‘스토니바터’라, 처음 들어보는 동네이름이다.

호탕한 스코티쉬 남편 제임스와 살고 있는 혜정언니는 내가 이곳에서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국친구다. 언니는 요리솜씨가 뛰어나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자꾸 이런저런 한국음식을 만들어 달라 부탁하기 시작했고, 그 주문이 많아져 이젠 1인 기업으로 불러도 될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요리가 귀찮고 솜씨도 없는 나는 못 견디게 김치가 먹고 싶을 때마다 언니에게 채식김치를 조금씩 주문해 먹는데, 그날은 언니가 내 김치를 전해주기로 한 날이었다. 

어쨌든 언니 말로는 스미스필드는 이제 더블린의 여느 인기지역 못지않게 집값이니 렌트니 할 것 없이 가격이 엄청 뛰었단다. 스미스필드(Smithfield)는 원래 물가가 싸서 학생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는데, 최근 젊은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모여 들면서 개성 넘치는 가게와 카페, 다양한 문화이벤트가 넘치는 핫한 동네가 되었다. 


그날 저녁 존이랑 저녁을 먹는데 혜정언니가 한 말이 생각났다.

“스토니바터라는 동네 알아? 스미스필드 옆동네라는데 요즘 뜨는 곳이라네?”

“스토니바터?... 스미스필드 옆이면 아베힐인데? 아, 스토니바터가 바로 거기야. 스미스필드 광장 뒤편으로 아베힐 포함한 위쪽 동네.”

아베힐이라면 나도 잘 안다. 존이 일하는 아베힐교도소가 있는 곳. 사실 아베힐교도소를 알게 된 것은 존이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이다. 3년 전 존과 함께 교도소 선교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우리가 가게 된 곳이 바로 아베힐교도소였다. 성범죄자만 수감되어 있는 남자교도소라는 말을 처음 듣고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난다. 수감자들을 ‘큰 실수를 저질렀지만 우리와 똑같이 가치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고, 피폐한 그들의 마음에 새로운 희망을 심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었는데, 어떤 범죄를 저질러 그곳에 들어갔을까를 상상하는 순간 과연 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지곤 했다. 

우리는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일요일마다 교도소 안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수감자들과 예배를 드렸다. 보통 열 명에서 스무 명 사이의 인원이 모였는데, 실제로 교도소 안에서 신앙을 찾은 사람도 있고 그저 일요일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모두 교도소 밖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즐거워했다. 먼저 존과 다른 한 명의 기타와 노래로 찬양을 이끌었고, 선교단체장인 폴 목사님이 성경말씀을 전한 후 소그룹으로 나눠 들은 말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안한 눈빛과 몸짓, 한눈에도 거친 삶이 엿보이는 말투를 지녔지만, 동시에 친절하고 솔직하며 유머가 넘치는 사람들. 난 점점 그 사람들이 좋아졌다. 가해자인 동시에 상처받고 소외된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지길 진심으로 바랐다. 

나는 이렇게 특별한 계기로 아베힐교도소를 알게 됐지만, 사실 그곳에 교도소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긴 교도소가 대중적인 장소가 아닌 이유도 있겠지만, 교도소 하면 연상되는 무시무시한 담장, 주거지역에서 고립된 삭막한 회색빌딩을 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붉은 벽돌의 아베힐교도소가 있는 아베힐로드는 서울의 덕수궁길처럼 고즈넉한 분위기가 풍긴다. 중간 중간 들어선 작은 카페들은 늘 로컬들의 대화로 생기가 넘치고, 길 위에서 내려다보는 ‘장식예술&역사 국립박물관’ 안뜰의 풍경은 평화롭고 아늑하다. 

아베힐 교도소 옆 아베힐 세미터리


이틀 후 아침, 밤새 내린 비에 말끔히 씻긴 하늘이 눈부셨다.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스토니바터가 떠올랐다. 꼭 멀리 떠나야만 여행인가, 동네 골목여행이 얼마나 재밌는지 해본 사람은 안다. 게다가 마침 존이 아베힐에서 일하는 금요일이라 존의 퇴근길에 만나서 집에 오기도 딱 좋았다. 카메라를 배낭에 챙겨 넣었다.

구글맵이 가르쳐 주는 대로 스미스필드 광장을 북으로 가로질러 좌회전, 킹스트리트를 따라 걸었다. 상가건물만 직선으로 이어지는 넓은 도로가 지루해질 즈음, 길은 왼편으로 둥글게 휘어지며 나를 스토니바터의 중심에 데려다 놓았다. 


아일랜드 대표 편의점 ‘센트라‘ 옆으로 줄줄이 이웃한 아이리쉬 펍들과 이탈리안 식재료 파는 귀여운 가게를 지나 조금 더 걷다 보니 큰 길 맞은편으로 ‘그린도어 베이커리(Green Door Bakery)’ 간판이 보였다. 평범한 동네빵집처럼 보이지만 ‘늦게 가면 원하는 빵을 사기 힘들다‘고 소문난 곳이다. 길을 건너자마자 눈에 띤 빈티지가게가 흥미로워 먼저 들렀다. 빈티지 옷과 액세서리가 주 아이템이지만 다양한 유기농 잎차와 핸드메이드 카드, 펑키한 디자인의 아트상품을 같이 취급하고 있었다. 스토니바터가 요즘 뜨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린도어 베이커리에 들어서니 고소한 빵 냄새가 진동한다. 나는 빵보다 밥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빵 냄새가 더 유혹적인 건 사실이다. 오늘 갓 구운 빵들이 놓이는 진열대는 벌써 3분의 2가 썰렁했다. 달달한 것이 당기는 오후 2시. 나는 호두파이 한 조각을 사서 가방 안에 조심스레 넣었다. 여기서는 케이크를 한국처럼 빳빳한 종이상자에 담아주지 않고 얇은 갈색종이봉투에 넣어주는 게 보통이라, 부서지지 않게 가져가는 게 쉽지 않다. 마노어스트릿 끝에서 발견한 것은 언젠가 잡지에서 사진을 본 적 있는 작고 하얀 카페 ‘Love‘다. 민무늬 흰 벽에 검정색으로 ‘Love‘라는 한 단어만 깔끔하게 박아 넣은 디자인이 맘에 들었다. 이곳에서 커피를 마셔야지. 창가를 향해 놓인 작은 1인용 테이블에 앉아 오트밀밀크로 만든 플랫화이트를 주문했다. 플랫화이트는 카페라떼나 카푸치노보다 우유가 적게 들어가 부드러우면서도 커피 맛이 강해, 진한 유럽커피에 잘 어울린다. 비건을 위한 우유 대용식품이 발달한 아일랜드에서는 우유 대신 두유나 아몬드밀크, 코코넛밀크, 오트밀밀크를 주문할 수 있는데 그 중 오트밀밀크는 가장 최근 내가 발견한 신세계다. 두유의 텁텁한 맛이 없고 정말 부드럽고 고소하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창밖으로 새로운 동네의 오후풍경을 즐겼다. 메이플시럽이 향긋한 호두파이가 진한 커피와 잘 어울렸다. 추위 속에 걷느라 긴장했던 몸이 노곤해질 때쯤, 나는 카페를 나와 다시 아베힐로 향했다. 

아베힐에 있는 독립책방 ‘릴리풋프레스(The Liliput Press)‘에 들러 새로 나온 책들을 구경했다. 1984년에 오픈한 작지만 개성 있는 서점으로, 제임스조이스를 비롯한 유명한 아이리쉬 작가들의 작품은 물론 떠오르는 신인작가들의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만날 수 있다. 건너편에 같은 이름의 작은 카페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늘 동네 힙스터들로 붐빈다. 문득 재작년 한국에 갔을 때 친한 동생 영옥이와 망원동의 작은 독립책방들을 구경하며 산책하던 생각이 났다. 책과 문학, 여행과 일상에 대해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던 시간이 그리웠다. 한국의 골목들이 그리웠다. 


존을 만나기로 한 박물관 주차장에서 그를 기다리며, 붙잡아두고 싶지만 흘러가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특히 멀리 있기 때문에 변할 수밖에 없는 관계들에 대해서. 저만큼 펩시가 크락숀을 올리며 달려온다. 나는 한국의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을 뒤로 하고 장난스럽게 손을 흔드는 존을 향해 달려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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