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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Nov 30. 2018

던리어리 기차역에서 만난 남자

- 아픔을 알게 될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조금 힘들게 눈을 뜬 월요일 아침이었다. 주말을 이용해 존과 함께 독일 뮌헨으로 여행을 갔다가 일요일 밤 늦게 도착한 때문이었다. 평소 거의 그런 일이 없는데 밤새 한번도 깨지 않고 잔 걸 보니 웬만큼 피곤했던 모양이다. 일주일의 미드텀 브레이크(학기 중간에 주어지는 짧은 방학)가 끝나고 다시 직장으로 복귀해야 하는 존에게는 월요병이 좀더 심각하게 찾아온 날이기도 했다. 어쨌든 부랴부랴 토스트로 간단히 아침을 챙겨먹고 차를 몰아 던리어리로 향했다. 11월초이지만 난 이미 가장 두꺼운 겨울외투와 스웨터, 그속에 히트텍까지 갖춰 입고 있었다. 그런데도 차안이 히터로 따뜻해질 때까지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아일랜드의 겨울은 나에게 엄청난 결단이 필요한 시간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얼마나 추위를 타는지, 기분이나 감정이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지 아닌지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아일랜드의 우울하고 혹독한 겨울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밑에 두고라도, 평균적인 사람보다 두세 배 더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겨울이 시작되는 이맘때마다 몇 가지 다짐을 한다. 하나, 날씨가 아무리 가혹해도 운동과 일상에 게으르지 않기. 둘, 기분이 아무리 가라앉아도 혼자만의 동굴로 들어가지 않기. 셋, 날씨 때문에 아일랜드가 지긋지긋해지더라도 사랑하려고 노력하기. *** 클라우디아의 요가스튜디오에서 운동을 끝내고 글라스튤 기차역에 앉아 더블린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기차가 7분 후에 온다는 전광판의 사인을 확인하는 차, 숫자가 8로 바뀌면서 기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나는 나란히 놓여있는 철제의자 4개 중 끝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나머지 끝자리에는 한 백인 중년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피곤한지 고개를 잔뜩 뒤로 젖히고 있었다. 내가 휴대폰을 꺼내 미처 답하지 못한 메시지들에 답장을 하려고 할 때, 그 남자가 사이에 놓인 의자 두 개 너비만큼의 프라이버시를 깨고 말을 걸어왔다. "일본사람이에요?" 다짜고짜 웬 일본사람? 낯선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말 섞는 아이리쉬처럼은 못해도 최소한 누군가 말을 걸어올 땐 친절히 말을 받으려고 노력하는데, 그순간 나도 모르게 쌀쌀맞아졌다. "아니오." 그 남자 얼굴은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그가 이번에는 한술 더 떴다. "그럼 중국사람?" "아니오." "그럼 한국사람? 베트남사람? 태국사람?" 한국사람이라고 대답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무릎을 쳤다. "나는 한국말이랑 일본말이 비슷한 줄 알고 한국사람들한테 '곤니찌와' 하고 인사한 적 있는데, 다들 표정이 어색해지더라고요. 하긴 과거에 일본이 한국사람들한테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 일본말로 인사하는 걸 한국사람들이 좋아하진 않겠죠." 이상한 남자다. 나쁜 사람 같지는 않는데 머리가 조금 모자라던가, 아님 그냥 얼이 빠져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제야 남자의 얼굴이 자세하게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50대로 보였는데, 대머리에 창백한 피부, 한쪽 눈이 조금 사시인 듯 두 눈동자의 초점이 서로 달랐다. 살집이 있어서 좀 둔해 보이는 데다 힘 없는 말투까지, 그리 건강해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나의 평화롭던 시간을 쓸데없는 질문으로 방해한 그를 용서하고 경계를 풀기로 했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후 그가 말했다. "제가 몇 살로 보이나요?" 저런, 한국사람 사이에선 절대 묻지 않아야 할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 잘 모르겠다고 말하며 웃음으로 넘어가려 했건만 결국 그의 집요함에 지고 말았다. "오십몇살 정도로 보이네요. 대충." 뜻밖에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내가 더 높은 숫자를 말할 줄 알았던가 보다. "오십셋이에요. 그럼 제가 아주 많이 망가진 건 아닌가 보네요.." 내 말이 작은 위안이라도 되었는지 중년남자가 희미하게 웃었다.   "사실은 한달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아, 저런. 유감이에요..." "여든여섯까지 사셨으니 호상이죠. 그렇다해도 슬픔이 덜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어머니 돌아가신 후로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요. 가슴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아요." 남자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보았다. 그의 아픈 마음이 의자 두 개의 너비를 건너 내 가슴까지 전해졌다. "왜 안그렇겠어요. 그게 사랑이겠죠. 어머니를 많이 사랑하셨나 봐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기어이 그의 초점 없는 두 눈동자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가 두툼한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말했다. "내 제 인생의 사랑이었어요. 마지막 세 달은 아무 말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만 계셨지만 매일 어머니 곁을 지키면서 참 행복했어요." "어머니도 분명 아주 행복하셨을 거예요... 혹시 같이 사는 가족은..?" "남동생이 있었는데 마흔여섯에 죽었어요. 위로 누나 셋이 있는데 그중 하나랑 같이 살아요.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지만요.." "저런, 동생이 너무 일찍 떠나셨네요. 사실은...제 형부도 얼마 전 돌아가셨어요. 겨우 마흔아홉이었는데." "그분도 너무 젊을 때 가셨네요." "네..." 그때 다트가 역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제가 괜한 얘기로 시간을 뺏었나봐요. 기차에서는 편하게 가세요..." 남자는 천천히 일어나 내가 타려는 출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출입구를 향해 느리게 걸어갔다. 나는 기차에 올라 출입구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멀리 대각선 방향으로 그의 벗겨진 머리가 흘낏 보였다. *** 다시 휴대폰을 꺼내 버릇처럼 페이스북에 새로 올라온 친구들의 피드를 훑어보는데, 자꾸만 조금 전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의 눈물 젖은 얼굴이 어른거렸다. 묻지는 않았지만 느낌에 결혼을 하거나 가정을 꾸린 사람 같지 않았다. 솔직히 그만한 능력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그에게 어머니는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한장 뜯어냈다. 그리고 펜을 손에 쥔 채 기도했다. 그 남자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를, 그리고 그를 위한 위로의 말을 생각나게 해 주시기를. '평안'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휴대폰의 성경앱을 열어 요한복음에 나오는 성경구절을 찾아 옮겨 적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너에게 주겠다...' 그리고 몇 줄의 짧은 편지를 함께 남겼다. '어머니를 잃은 슬픈 마음을 위해 함께 기도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걸 잊지마세요. - 짧은 인연의 코리언, 마야." 기차가 피어스역에 도착했다. 다행히 그는 나보다 멀리 가는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작게 접은 쪽지를 불쑥 건네자 그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땡큐, 하며 미소짓는 그에게 나도 짧은 미소로 화답하고 서둘러 기차에서 내렸다. 나는 그를 모른다. 겨우 10분 이야기를 나눈 낯선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10분의 인연이 아니라 단 1분의 인연이라도 우리는 상대방의 삶을 만질 수 있다. 따뜻한 불씨를 남길 수 있다. *** 더블린 시내를 거니는데 자꾸만,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 곳곳에 침낭을 펴고 누워 잠을 자거나 빈 종이컵을 놓고 앉아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그날따라 왜 그리 많은지. 술에 취했는지 마약에 취했는지 반쯤 맛이 간 상태로 좀비처럼 허우적거리며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은 또 왜 그리 많은지. 또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여도 속으로는 외롭고 힘들어 생판 낯선 외국인에게라도 말을 건네고 싶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아일랜드에 처음 왔을 때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죽죽 뻗은 오코넬 스트리트와 우아하게 남북을 가르는 리피강, 버스커들의 성지인 그라프튼거리와 빈티지옷가게, 세련된 카페와 와인바, 맛있는 레스토랑이 있는 모여있는 또 어떤 거리들을 지나며, 이런 멋진 도시에서 살게 되다니! 생각했다. 유머스럽고 친절한 아일랜드 사람들도, 도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하얀 갈매기도 모두 좋았다. 가슴 뛰는 두어달의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내가 사는 동네와 중심가의 거리들이 익숙해졌을 때쯤 거리의 쓰레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집에서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고 음식물과 플라스틱을 마구 섞어 버렸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노숙자도 흔하게 눈에 띄었다. 게 중에는 나이키 신발을 신은 신체 멀쩡한 청년도 있었다. 관광명소로 알려진 템블바는 늦게까지 음주가무를 즐기기 좋은 동네지만, 언젠가부터 취객의 소음으로 가득한 밤거리가 그리 즐겁지 않았다. 실제로 템플바 주변은 폭력과 절도 등 범죄율도 높은 곳이라 한낮이라도 늘 조심해야 한다. 그런가하면, 오래된 조지안하우스는 일년 내내 전기장판을 켜고 살아야 할만큼 늘 추웠고, 가끔씩 공공기관이나 레스토랑에서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나 태도를 대할 때면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한번은 10대 여자애들 곁을 혼자 지나는데, 무리가 '차이니즈!'를 외치며(아일랜드에서 중국인으로 오해받는 일은 아주 흔하다) 휘파람을 불어대는 통에 바짝 소름이 돋은 적도 있다. 어디에나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도 있고,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사람들은 우편엽서 속의 아름다운 이국의 풍경을 보며 여행을 꿈꾼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곳에서 살고자 한다면 그 멋진 사진을 얻기 위해 기다렸을 비바람의 시간들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가이드북이 소개해주는 매력적인 관광명소와 눈부신 풍경 뒤, 저마다의 아픔과 문제를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곳의 평범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기 시작할 때 비로소 당신이 삶이 그곳에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기차역에서 만난 남자를 통해 보았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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