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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Feb 07. 2019

조카와 함께 건너는 겨울

조카의 마음속에 새겨진 아일랜드

“이모는 내가 이제 갔으면 좋겠어?”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을 딱 일주일 앞두고 조카 채환이가 말했다. 그 질문이 우스워 내가 ‘푸훗’ 웃음을 터뜨리자 “웃지말고 진지하게!” 하고 엄포를 놓는다.

조카가 아일랜드에 온 지 한달이 넘었으니, 그래, 아주아주 솔직히 말하라면 50대 50. 이제 대리모 역할에서 벗어나 원래의 자유로운 내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그 사이 정이 옴팡 들어버린 녀석과 헤어지기 싫은 마음이 격렬히 충돌하는 중이다. 그래도 그렇게 곧이곧대로 얘기하면 녀석이 서운할 수도 있으니, 슬쩍 녀석의 마음부터 떠봤다. “너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 아님 여기 더 있고 싶어?” “반반.”

나는 속으로 한숨 놓으며 살짝 부풀려 대답했다. “그래? 난 70대 30.” “내가 안 갔으면 하는 게 70인 거지?” “그러엄.” 조카는 뭔가 다행이란 표정이 된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슬쩍 삐친 척 물었다. “것봐, 근데 넌 가고 싶은 마음이 반이나 되는 거잖아.” 조카가 대답했다. “한국은 내 조국이잖아.” 그러니까 막 열네 살 먹은 조카의 눈에 나는 조국을 아일랜드로 바꾼 한국인쯤으로 보였나 보다.

오늘은 설날. 요리에 열정이 별로 없는 이모 때문에 그애는 떡국 대신 토스트를 먹고 한국나이 열네 살이 되었다.

명절이라 아들내미가 더욱 보고싶은지 오늘따라 언니는 보이스톡, 비디오톡 번갈아가며 줄기차게 전화를 걸어왔다. 내 휴대폰을 조카한테 저당 잡힌 나는 두 사람의 전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드럼스틱을 허공에 휘두르며 지난 주 배운 주법을 연습했다.


조카와 함께 보낸 지난 5주는 사실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왔다. 원래 언니의 계획은 채환이를 아일랜드 현지초등학교에서 진행되는 5주 겨울캠프에 보내는 것이었다. 존과 내가 아일랜드에 살고 있으니 홈스테이가 필요 없었고, 학교만 등록할 요량으로 비행기표를 먼저 끊었는데 나중에 담당 유학원으로부터 ‘개별신청 불가’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패키지 프로그램으로만 운영한다는 거였다. 혹시 5주 동안 채환이가 다닐 수 있는 다른 학교나 학원이 있을까 두루 알아봤지만, 겨울에는 주니어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가 거의 없었고, 있더라도 만 14세 이상만 등록할 수 있다는 조건이었다.

덕분에 존과 나의 책임이 갑자기 확 늘어났다. 6주 동안 할 일이 없어져 버린 녀석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 다행히 채환이가 같은 나이 또래에 비해 손이 덜 가는 아이였다. 차분하고 생각이 깊은 편이었고, 혼자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시간을 좋아해서 때때로 존, 나, 채환,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렸다. 존은 직장의 허락을 받아 일주일에 두번 채환이를 일터에 데리고 갔다. 수요일은 기타수업, 목요일은 요리수업. 채환이는 존이 가르치는 교도소 수감자들과 함께 스콘을 굽고 닭튀김과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채환이가 만든 김치볶음밥이 제일 인기가 많았어. 모자랄 정도였다니까!” 존의 칭찬에 채환이가 “김치볶음밥은 아빠가 최고로 잘 만들었는데!” 하고 받았다. 1년반 전 세상을 떠난 형부에 대해 그애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아빠와 야구하던 시간과 아빠가 만들어주던 김치볶음밥. 세상 살 때는 무겁고 중요한 일들 먼저 처리하느라 그리 고단해하면서, 세상을 떠날 때 남기고 가는 가장 소중한 추억은 어쩜  그렇게 깃털처럼 가벼운지. 뜻밖의 형부 얘기에 그만 콧등이 시큰해졌다.


존에게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그애는 매일 기타연습을 했다. 기본코드 잡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이제는 혼자 노래를 부르며 전곡을 다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제법 실력이 늘었다. 채환이가 이곳에 있는 동안 블랙독밴드의 공연이 세 번 있었는데, 나와 존이 함께 무대에서 연주하는 모습이 꽤 그럴 듯해 보였나 보다. 어느새 그애의 오랜 장래희망이던 ‘레고디자이너’의 꿈이 슬쩍 희미해지면서 ‘뮤지션’이 새로운 장래희망으로 등극했고, 현재 50대 50의 비율로 다투는 중이다. 사실 한국에 있는 언니한테는 걱정스러운 소식일지도 모르는데, 다행히 큰 웃음으로 마무리. 하긴, 열네 살 때 마음껏 꿈꾸지 못하면 언제 꿈꿀 수 있을까? 존과 나는 헛된 바람잡이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선행학습에 지쳐있을 조카에게 한국 밖의 넓은 세상, 조금쯤 다른 삶을 보여주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애 의 앞날에 셀 수 없이 많은 선택의 수가 있다는 사실을 걱정보다 설렘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1월 말, 채환이는 일주일 동안 런던에서 열린 주니어겨울캠프에 다녀왔다. 언니와 의논 끝에 갑자기 내린 결정이었고 예산의 부담도 있었지만 그래도 잘 한 일이었다. 낯선 외국도시에서 혼자 힘으로 영어공부와 기숙생활을 즐겁게 해낸 채환이는 자신감도 많이 자라고 꿈도 커진 것 같다.


이제 채환이가 아일랜드를 떠날 시간이다. 나랑 키가 똑같해져 나타난 녀석은 한달 사이 나보다 1센티미터가 더 커졌다. 채환이가 가고 나면 존과 나는 갑자기 주어진 자유와 허전함 사이에서 한동안 헤매겠지. 존은 분명 날마다 그애가 보고싶다고, 비디오톡을 하자고 보챌 것이다. 그애가 아일랜드에 있는 동안 사랑을 정말 많이 줘야지 다짐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준 사랑보다 받은 사랑이 더 큰 것 같다.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에게 예쁜 아들 노릇 많이 해주고 가서 고마워, 채환아. 이모랑 이모부가 정말 많이 사랑해. See You S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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