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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Feb 16. 2019

추억, 지난 후에야 소중해지는 시간의 아이러니

아일랜드에 대한 나와 누군가의 기억들

어느 아침, 페이스북에 내 이름이 태그된 피드가 떠서 확인해 보니, 러시안 친구 아냐가 올린 글과 사진이 있었다. 선명히 기억나는 사진이었다. 2010년 또는 2011년 여름 무렵, 아냐와 함께 유런어학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더블린캐슬 앞에서 숏팬츠를 입은 아냐가 허리를 90도로 꺾어 양 다리와 양 팔을 십자형으로 교차시킨 요가자세를 하고 있는. 무용을 전공한 스물둘 청춘답게 아름답고 도발적인 그 사진은 단 시간에 셀 수 없이 많은 ‘좋아요‘와 댓글을 기록했다. 내 이름과 함께 태그된 37명 모두 그 당시 유런에서 만나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었다. 아일랜드를 떠나 자신의 고향인 러시아 모스크바로 돌아온 지 어언 6년, 그 사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자신의 삶은 너무나 달라졌지만, 순간순간 아일랜드에서 살았던 시간과 아일랜드에서 만난 친구들이 얼마나 그립고 보고 싶은지, 아일랜드가 자신에게 얼마나 특별한 나라인지 적어 내려간 긴 글은 구구절절 가슴 뭉클했다. ‘우리가 헤어질 때는 진짜 헤어지는 거라고 믿지 않았어. 당연히 어디선가 다시 만날 거라 생각했지. 그런데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우리는 점점 멀어져가. 서로 다른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 하니까 당연한 일일 텐데, 나는 아직도 우리가 언젠가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믿어. 지구는 둥그니까, 어느 교차로에서는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끝까지 다 읽은 후 나는 아직 ‘뷰’가 거의 없는 따끈따끈한 글에 첫 번째로 댓글을 달았다. ‘어쩌다 보니 네가 이렇게 미치도록 그리워하는 아일랜드에 나는 아직 남아 있네. 네가 매일매일 그리워하는 아이리시펍 앞을 나는 매일 무심히 지나다니고 있어. 가끔 우리가 같이 다니던 유런 앞을 지나칠 때도 있지. 학교는 더 이상 같은 거리, 같은 건물에 있지 않지만 문 옆에 걸린 ‘유런’ 입간판을 볼 때마다 너와 그 시절 친구들이 생각나. 그리고 나는 지금도 꿈꾸고 있어. 언젠가 모스코에서 너를 만나게 되리란 걸.‘ 그날 오후에 페북을 열어보니 아냐의 글 아래 엄청난 댓글이 달려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유런동기(?)들의 이름이 무척 반가웠다. 아일랜드에 대한 깊은 그리움이 가슴절절하게 느껴지는 장문의 댓글들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다들 아냐의 글에 큰 감동을 받은 듯했다. 그 중 가깝게 지냈던 스페인 출신의 팔로마와 알렉스는 지금 스페인에, 이탈리아인 주세페는 베를린에, 한국친구 소영이는 두바이에, 태국친구 쿠니카는 미국에, 아냐는 모스크바에 있고, 아일랜드에 남아 있는 것은 나 하나였다. 나도 아냐의 글에 순간 삘 받아서 감상적인 댓글을 달아놓긴 했지만, 친구들의 댓글을 읽다 보니 사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그리움의 온도차가 크게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그들은 7, 8년 전 아일랜드를 떠났고, 난 이후 이곳에 아예 뿌리를 내렸다. 그들에게 아일랜드는 과거의 추억이지만 나에게는 현재 삶의 터전이다. 그러니 나에게 아일랜드는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라 매일 만나야 하는 민낯의 현실이다.

물론 그 시절 친구들이 보고 싶은 건 사실이다. 잊지 못할 추억도 많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8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묻는다면 나는 ‘아니’다. 아냐의 글을 읽고 나서 나의 아일랜드 첫해를 돌아보니, 재밌었던 일도 많이 생각나지만 이상하게도 지배적으로 떠오르는 느낌은 ‘쓸쓸함’이다. 서른여덟의 나이에 어학연수를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막상 학원에서 만난 20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았다. 물론 존대가 없는 영어와 나이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유럽문화 덕분에 띠동갑이 훨씬 넘는 청춘들과 친구가 되었지만, 인생의 단계에 따른 관심사의 차이라는 것은 분명히 존재했고, 사적이고 내성적인 내 성향(2시간만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웃고 떠들면 급격히 피곤해지면서 어디든 혼자만의 공간으로 숨어들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 버리는)을 갑자기 바꿔 밤새 맥주잔을 부딪치며 파티를 즐기는 ‘파티애니몰(Party Animal)’로 변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은 내가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는 부분까지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둘 수밖에. 까놓고 말하면, 일말의 질투도 있었던 것 같다. 무한대로 인간관계를 확장하면서 밤새도록 수다를 떨어대도 지치지 않았던 나의 지나버린 20대를 소유하고 있는 그들을.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인 걸 알면서도 소외되고 싶지 않아서 안 내키는 하우스파티에 간 적도 여러 번 있다. 싸구려 맥주와 춤, 팝콘과 냉동피자. 광란의 청춘파티가 끝나고 한 평짜리 내 방으로 돌아오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갑자기 들이닥치는 외로움과 함께 향수병이 감기처럼 도지곤 했다. 나의 자리를 찾기 위해 애쓰다가 지치면 유럽 이웃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스코틀랜드, 베를린, 스페인, 터키, 그리스, 헝가리, 체코...내 버킷리스트에 있던 나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지워나가며 한국에서 벌어온 돈을 야금야금 까먹었다. ‘외국생활을 여행이 아니라 삶으로 경험해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결정한 어학연수였기에 후회는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아일랜드 첫해의 기억은 단순히 ‘좋았다’ 혹은 ‘나빴다’로 설명하기에는 좀 더 복잡한 감정의 무늬로 얽혀 있다.

하지만 내가 만약 존을 만나 결혼하지 않고, 어학연수 2년 후 아일랜드를 떠나 지금까지 한국에 살고 있다면 어떨까? 분명 페이스북에 아냐와 다른 친구들이 표현한 절절한 그리움을 나도 가슴에 품고 살고 있을 것이다. 추억이란 참 묘하다. 지나간 시간에 대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기만의 느낌, 자기만의 배열로 기억을 재구성하고, 그것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기억창고에 저장된다. 그리고 그 ‘지나간 시간‘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 나의 삶의 모습과 다를수록 사람들은 그리움을 덧칠한다. 그러니 나는 아일랜드에 대한 그리움을 말할 수 없다. 아일랜드는 나에게 그저 지금, 여기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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