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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a Lee Feb 26. 2019

Manchester, Liverpool 짧은 겨울여행

친근한 투덜거림의 맨체스터, 화려한 속삭임의 리버풀

존의 교도소 학교가 봄방학을 했다. 그리고 거기, 일주일의 휴가를 그냥 보내기 아까워 일찌감치 계획한 맨체스터와 리버풀 여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나긴 겨울이 지겨워 따듯한 나라로 떠나고 싶었지만 결국 우리의 빠듯한 예산에 맞춰 비행기값이 싼 곳을 찾다 보니 가까운 이웃나라로 선택이 좁아졌다. 생각해 보니 영국에 가봤다 해도 런던만 여러 번, 정작 다른 도시는 가본 적이 없으니 이번 기회에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박지성 때문에 친근해진 맨체스터와 비틀즈의 고향인 리버풀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두 도시의 거리가 기차나 버스로 1시간밖에 안 걸린다는 걸 알고는 두 도시를 함께 섭렵하기로 했다. 인아웃은 맨체스터에서 하고, 처음 3일밤은 맨체스터, 이틀밤은 리버풀에서 보내고 다음날 아침 맨체스터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존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음악‘. 전설적인 영국밴드들이 탄생한 브리티시팝의 고향인 두 도시를 여행한다는 생각에 들떠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맨체스터 출신의 대표밴드 <오아시스>와 <스미스>의 음반을 도서관에서 빌려 차를 탈 때마다 틀었다. 80~90년대 서울의 어느 거리와 카페에서 흘러나오던 귀에 익은 곡들도 있었다. 당시 외국팝송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터라 유명한 밴드인 줄도 모르고 주워들었던 거다. 어쨌든 뮤지션 남편 덕분에 자연스럽게 브리티시팝의 늦깎이 팬이 되어가고 있었다. 영국 맨체스터.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생각났다. 중학교 때 세계사 시험에 단골로 등장하던 이라는 것. ‘18세기 유럽의 산업혁명이 시작된 도시‘라는 설명 밑에 빨강색 밑줄을 박박 긋고 달달 외웠더랬다. 맨체스터 시내에 도착해 바로 그 역사 속의 붉은 건물들을 처음 만났다. 미국 남부의 노예들이 수확한 목화솜을 들여와 옷감을 만들던 직물공장들이 지금은 일반 주거공간이나 카페, 레스토랑 등의 상업공간으로 바뀌었지만, 단단한 벽돌로 쌓아올린 거대한 사각형 건물들은 그 안에서 행해졌던 거친 노동의 이미지를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맨체스터는 노동자의 정신과 땀으로 건설된 도시“라는 존의 설명이 피부에 와 닿았다. 그런가 하면 무역을 통해 성장한 도시답게 국제적 규모와 화려한 건축양식의 건물도 눈에 많이 띄었다.

우리가 예약한 에어비앤비 숙소는 시내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떨어진 주거지역에 있었다. 처음에는 거리 때문에 좀 고민을 했는데, 시내의 호텔보다 훨씬 저렴한 데다 운하가 가까이 흘러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숙소에서 아침을 먹은 후 이 운하를 따라 시내까지 걸었다. 밤에 집에 돌아올 때는 주변이 너무 캄캄해 멋없는 큰 도로를 따라 왔지만 늘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난 뒤라 운동 겸 걸을 수 있는 거리가 감사했다. 우리는 우리 숙소와 가까운 ‘노던쿼터’를 즐겨 찾았다. 허허벌판이었던 그곳이 맨체스터에서 가장 힙한 동네로 바뀐 건 불과 10년 전. 젊은 예술가들과 새로운 비지니스모델을 시도하려는 창작인들의 거칠고도 신선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동네다.

맨체스터의 마지막날, 밴드 <스미스>의 앨범과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된 ‘살포드 레즈 클럽(Salford Lads Club)‘ 앞에 가서 인증샷을 찍고 싶었지만 비도 많이 오고 택시비도 모자랐다. 그 앞까지 가는 버스도 하나 있긴 한데, 광역버스라 버스요금이 택시비랑 막상막하. 살포드레즈클럽은 1903년 영국 최초로 설립된 청소년 스포츠센터로 보이스카우트의 모태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처음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하지만 정말 유명세는 영국에서 내로라하는 배우, 축구선수, 뮤지션들이 클럽멤버로 활동하며, 그곳에서 역사적인 창작물을 많이 만들어내면서 치솟았다. 마음 같아서는 존을 위해 돈과 시간이 들더라도 직접 갔다 오고 싶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토요일만 일반인에게 문을 연다니까 어차피 오늘 가도 안에는 구경 못하잖아. 초록색 철문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으려고 20파운드를 써버리기는 좀 그렇지 않아? 저녁값도 모자란데.” 가고 싶은 마음은 존이 100배 컸을 텐데 스스로 먼저 마음을 접으니 괜히 내가 더 미안했다. 대신 우리는 국립도서관에서 하는 ‘영국뮤지션과 뮤직역사‘를 흑백사진에 담은 특별사진전을 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오래 전 맨체스터로 이주한 인도인가족이 현지 맛으로 만들어내는 싸고 맛있는 인도커리로 쌀쌀한 밤을 녹였다.


빠른 기차를 타면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지만 우리는 반값 완행열차를 타고 1시간을 달려 리버풀에 도착했다. 앞서 말했든 내가 가지고 있는 리버풀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비틀즈의 고향이자 항구도시라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막연히 작고 아담한 항구의 이미지를 상상했던 걸까? 리버풀의 중심인 ‘알버트독’ 주변은 거대한 유원지처럼 조성되어 있었다. 모던한 레스토랑과 펍, 박물관, 페리터미널, 수족관, 아이스크림 트럭까지 없는 게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따라 이어진 인도를 따라 산책을 하거나,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침 볕이 좋아, 우리도 가까운 벤치에 바다를 바라보고 앉았다. 어디서 출발해 어디로 향해 가는지 모를 커다란 배들이 망망대해에 그림처럼 떠 있었다. “바다가 그리웠어. 역시 난 물이 좋아!“ 존의 말을 듣고 보니 나도 맨체스터에 있는 동안 은근히 바다가 그리웠던 것 같다. 서울에 살 때는 몰랐는데, 아일랜드로 온 뒤로 늘 바다 가까이 살다 보니 이제 곁에 없으면 답답하고 허전하다.

리버풀 시내는 생각보다 훨씬 더 크고 현대적이었다. 수많은 쇼핑센터와 상점들이 하나의 커다란 컴플렉스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 한가운데, 비틀즈클럽으로 불리는 ‘카번클럽(Cavern Club)’이 있었다. 클럽이 있는 매튜스트리트 입구부터 사람들이 유난히 몰려있어 금방 알 수 있었다. 클럽 안은 어둡고 습한 냄새가 났고, 바닥은 끈적끈적했다. 몇몇 테이블에서는 이른 낮술이 오가고 있었지만 대체로 한산했다. 눈이 닿는 곳마다 비틀즈의 사진으로 도배된 것 말고는 치장한 흔적이 없었다. 오히려 유명세가 무안할 정도로 단순하다 못해 거친 느낌이었다. 일부러 비틀즈가 공연했던 70대의 모습을 향수로 남기려고 했던 걸까? 그건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곳에서는 아직도 매일밤 비틀즈가 노래하던 무대 위에 조명이 켜지고, 어떤 밴드의 음악이 공연이 펼쳐진다. 비틀즈 뒤로 그 무대를 거쳐 간 수많은 밴드 중 또 다른 비틀즈의 역사를 쓸 밴드가 탄생할 지는 또 모를 일이다. 존과 내가 정말 사랑에 빠진 곳은 ‘조지안쿼터’다. 수 세기 전 버려진 공장건물들이 현대적인 컨셉의 예술상업공간으로 탄생하고 있는 동네로 리버풀 젊은이들의 새로운 아지트로 급부상 중. 빈티지옷가게들과 엔티크숍, 다양한 나라의 거리음식을 파는 마켓과 잠수함, 히피캠프를 모델로 디자인한 펍들까지, 구경하는 데만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리버풀에서의 마지막밤에는 또 한 번 인도식당에 갔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했던 식민의 역사 때문에 유난히 인도식당이 많은 그 땅에서 고기파이가 아닌 커리를 먹으며 21세기 현재 내가 지나고 있는 역사의 한 점에 대해 생각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또 다른 리버풀의 현재를 보여주는 수많은 아이리시펍을 지났다. 문득 한국의 어떤 장소, 어떤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멀어져가는 소실점처럼 아득한 그리움들이 그렇게 수없이 피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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