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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Oct 06. 2020

나는 반려식물과 함께 삽니다.

반려동물이 아닌 반려식물과 함께 사는 이유

나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미국에 있을 때 잠시 고양이를 맡아 키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고양이의 매력에 풍덩 빠져버렸다. 핑크색 소시지 같은 말캉한 발과 의자 등받이와 내 엉덩이 사이의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잠든 모습, 유연한 몸매 등 고양이의 매력은 끝이 없다.


나는 강아지도 좋아한다.

역시 미국에 있을 때 아는 분의 농장에서 여섯 마리의 꼬물이 새끼 강아지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아이들에게서 맡을 수 있었던 젖 냄새는 지금 떠올려도 기분이 좋다. 주인을 사랑하고 따르는 개들의 충성심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그들의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도 개도 좋아하는 나이지만 나는 반려동물을 키우지는 않고 있다. 

대신에 반려식물과 살고 있다. 그것도 달랑 하나.




반려동물을 들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 외의 생명을 끝까지 책임을 질 마음의 준비와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벅차고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나와 함께 하고 있는 반려식물은 작은 언니가 나의 서울 독립을 축하한다고 선물해 준 것이다. 언니가 선물해 주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없었을 것이다. 


언니가 선물해준 반려식물은 돈나무라는 애칭을 가진 금전수다. 윤기 나는 푸른 잎의 식물이고 다행히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아이다. 


나와 함께 한 집에서 숨 쉬는 존재라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내가 사랑해 주고 싶었고 나도 이 아이로부터 사랑받고 싶었다. 그래서 이름을 '사랑'이라고 지었다. 

화분에 달려온 하얀색 돌에 '사랑'이라는 글자를 적고 사랑이를 볼 때마다 이름을 불러주었다. 


나는 한 번도 식물을 잘 키워본 적이 없었다. 선인장마저도 말라 죽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선물을 받았을 때 조금 걱정이 되었다.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다른 식물들처럼 말라죽일까봐 두렵기도 했다. 아무리 말 못 하는 식물이라고 하더라도 그 역시 내가 맡은 생명이기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랑이는 한 달에 한 번만 물을 주면 된다고 해서 일단 안심하기는 했다. 




나는 매달 초에 물을 주기로 약속을 했다. 이렇게 날짜를 정하지 않으면 잊어버릴 것 같아서다.

눈에 잘 띄는 곳에 화분을 둬서 눈에 띌 때마다 이름을 불러주고 손으로 잎을 만져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사랑이가 집에 온 지 1주일 정도 지나자 새싹이 돋았다. 하나, 두 개, 세 개, 네 개나 순서대로 싹을 틔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싹이 무럭무럭 잘 자라서 원래 있던 엄마 줄기보다 키가 더 커졌다. 


사랑이로 인해 나는 내가 식물을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나 아닌 다른 생명을 키우고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사랑이를 성공적으로 키우게 되자 다른 식물도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동네 꽃 가게에서 초록 식물 두 개를 사 왔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물을 자주 줘야 했고 빛도 너무 많이 쬐어도 너무 안 쬐어도 안 되는 아이들이었다. 1주일이 지나자 조금 시들해지는 것 같았다. 물을 조금 더 자주 줘보기도 하고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 둬 보기도 했다. 꽃 가게에서 영양제도 사 와서 꽂아주었는데도 어째 점점 시들해지는 것 같았다. 


내 딴에는 노력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두 식물은 결국 말라버렸다. 




 이 일로 나는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생명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와 반려식물 딱 하나!

끝!!


지금은 여기까지가 내가 책임질 수 있는 한계인 것이다. 나의 한계를 알았으니 지금의 한계에서 잘 유지하고 지켜나가면 되는 것이다. 한계를 넘으려는 욕심을 부렸다가 실패를 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환경 조건과 그 식물들이 맞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나의 책임으로 푸른 식물이 시들해지는 것을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 결코 아니다.


식물도 이렇게 손이 가고 책임감을 느끼는데 반려동물은 더 할 것이다. 내가 밥을 챙겨주지 않으면 굶게 될 것이고, 아파도 내가 병원에 데려가지 않으면 고통받게 될 것이다. 


TV 동물농장에는 가슴 아픈 사연의 반려동물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볼 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 분명 그 아이들을 데려왔을 때는 그 주인들도 잘 키워보겠다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한계를 생각해 보지 않고 덥석 키우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 안되자 시골길에 버리거나 외딴곳에 방치하는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사람처럼 말하지 못한다고 동물에게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동물을 잠깐이라도 키워 보았거나 키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식물 또한 에너지로 주변 환경과 공명한다.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면 먼저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한계를 파악해야 한다.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는 당분간은 어쩌면 꽤 오랫동안 반려동물과 동거하는 일은 없을 듯싶다.

지금 내 책임감의 한계는 반려식물 '사랑이' 딱 하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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