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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Oct 15. 2020

사공춘기

불혹, 마흔, 40 그리고 우울증과 아픔

나를 떠올려보면 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넘어 참으로 대책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매사가 즉흥적이고 내일이 없을 것 같이 살아온 지난 날들. 


그러나 영원한 젊음은 없듯이 나에게도 불혹, 마흔, 40이라는 나이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방탕하게 보낸 지난날에 대한 속죄를 하라는 하늘의 뜻이었는지 마흔이 된 그 해에 심한 우울증과 건강의 이상으로 꽤 오랜 시간 몸과 마음이 아팠다.  




아픈 몸과 무기력해진 마음으로 엄마 집 동생이 결혼하기 전에 썼던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솔직히 막막했다. 


미국에서 10년을 살다 한국에 오니 너무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내가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무엇보다 10년이라는 세월이 나를 30대에서 40대로 만들어 놓았다. 엄마 집은 변한 게 없고 나도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나이만 열 살이 더해진 타임머신을 타고 나의 미래에 와 있는 이상한 현실 같았다. 


이런 혼란스럽고 복잡한 기분은 나의 몸과 마음을 더욱 무겁게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다.
나는 남편도 자식도 없다.
나는 내가 벌어 먹여 살려야 한다.
나는 물려받을 재산도 없다.
나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나는 내가 책임져야 한다.


이런 젠장, 큰일 났구나!!!


우울증에 한 없이 무거워지던 내 몸뚱이 저 밑바닥에서 또 다른 두려움이 솟아올랐다. 


이솝우화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름 내내 그늘에서 기타를 튕기며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가 추운 겨울이 왔을 때 누더기 차림으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개미집 문을 두드리며 한 번만 도와달라고 말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개미는 지난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죽어라 일하고 있을 때 나무 그늘 아래서 재수없게 놀고 있던 베짱이가 떠올라 얄미웠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에 기꺼이 문을 열고 베짱이를 들여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베짱이는 개미를 친구로 둬서 얼마나 다행이었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개미 같은 친구가 없었다. 개미 같은 친구가 없어서 억울하다는 생각보다 어떻게든 내 목숨을 부지하려면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하다고 드러누워 과거만 곱씹으며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고 불안해할 시간이 내게는 없었다. 만약 지금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내 나이 60, 70이 되었을 때(그때까지 살아있다면) 생계를 위해서 돈을 벌어야만 하는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건강을 위해 노년의 시간을 조금 더 생산적이게 보내기 위한 돈벌이가 아닌 정말 생계를 위한 돈벌이(입에 풀칠하기 위한)를 하고 있을 나를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달라져야 했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투가 있기 전날 밤 아들 이회에게 이렇게 말한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것은 배로 큰 용기가 될 것이다."


열 두척의 배로 나라를 지켜야 하는 운명을 맞은 이순신 장군을 모시고와 비유하는 게 죄송하지만 내 생계를 나 홀로 책임져야 하는 싱글로서 나에게도 그만큼 위급한 순간이었다. 


내 안에 일어난 생계에 대한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때가 온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신에게는 아직 열 두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고 말씀하셨듯이, '나에는 아직 사지육신 멀쩡한 팔다리가 있으니 방법을 찾아보자.'라고 용기 내어 나에게 말해주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배로 큰 용기가 될 것이라는 영화 속 이순신 장군의 말씀처럼 생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니 용기가 샘솟았다. 


일생일대 가장 강력한 지구의 중력을 느끼며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만 있던 몸뚱이를 일으켜 운동을 시작했다. 동네 하천에 만들어진 공원을 따라 걸으며 팔다리에 힘을 쌓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할 수 없다고 말하고 나를 비난하고 욕하는 것보다 못할 것 같아도 할 수 있다고 말해 주어야 기운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방법이 없을 것 같았지만 방법을 찾아보자고 내게 말해주고 응원하고 격려해 주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보고 시도해 보는 것이 미래를 위한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그렇게 서서히 우울증의 늪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심각한 이명도 점점 회복되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나는 나를 돕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렇게 해내고 있다.


지독히도 아프고 힘들었던 마흔의 사공춘기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지금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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