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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Mar 01. 2021

나와의 라포 형성하기

치유 글쓰기를 위한 준비 단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기로 용기를 내었다면 이제 마음의 문을 천천히 열어볼 차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천천히'다. 자신의 내면에 무엇을 쌓아 두었는지 몹시 궁금하더라도 서두를 필요는 전혀 없다. 당신이 지금까지 몇 해나 살아왔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길든 짧든 한 사람의 인생은 그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역사이기에 그 자신에게는 길고도 무겁다. 그러니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기 자신과 언제나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를 때가 많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겪었던 수많은 기억과 감정을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 쌓여 있다. 좋은 기억과 행복한 기억도 분명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문제들 앞에서는 대게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발목을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회피하고 외면하며 사실 확인을 거부한다.  


누군가는 굳이 아픈 기억을 끄집어낼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당신이 과거의 상처를 말끔히 치유하고 회복했다면 아팠던 기억을 떠올리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맞아, 그런 일도 있었지.'라며 감정이 사라진 상태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상처 받았던 사건을 떠올렸을 때 그때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면 당신은 그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고 온전히 치유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신기루와 같이 멀고도 희미한 존재일 뿐이다. 


마음의 문 열기


상담 용어로 '라포 형성 Rapport building'이라는 말이 있다. NLP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인데, 의사소통에서 상대방과 형성되는 친밀감 또는 신뢰관계를 뜻한다. 라포 형성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조건이지만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낯선 사람에게 선뜻 자신의 속내를 털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자신의 진짜 마음을 글로 써서 드러내는 것 또한 절대 쉽지 않다. 설령 아무에게 보여주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하더라도 드러내는 것 자체가 고역일 수 있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런데 원래 이런 사람은 없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듯이 자신이 내뱉는 말과 행동을 살펴보면 그런 말과 행동을 하게 된 이유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다만, 그 이유를 살펴보고 들여다보는 게 두렵거나 혹은 귀찮아서 자신의 마음을 자신에게 조차 계속해서 닫아 두었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이 원래 자기 자신이라고 믿기로 선택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자신과의 라포를 형성해야 오랜 시간 닫아 두었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다.   


자신과의 라포 형성을 위해 인생 이야기를 써 보는 것을 추천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한 번 주욱 써 보는 것이다.


하버드대 로버트 스티븐 캐플런 교수의 책 《나와 마주 서는 용기》에서도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기록하라'고 말한다. 가급적 연대순으로 기록을 하고, 아주 기본적이고 서술적으로 기록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출생부터 부모님, 형제자매, 고향, 학창 시절, 친구,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겪은 일 등을 적다 보면 평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기억과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이것은 일기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다. 소설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자신의 삶을 감정을 섞지 않은 채 기록해 보는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나가며 비판이나 논평 또는 섣부른 결론을 내릴 필요도 전혀 없다.  


앞서 말했듯이 이것은 치유 글쓰기를 위해 자신과의 라포 형성을 위한 단계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한 연습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바라보는 연습을 할 수 있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도 가질 수가 있다. 이것을 통해 현재 자신의 모습이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모든 선택의 결과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모두 이어져 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현재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보고 이해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결론이 어떻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쓰는 작업은 당신이 현재의 삶과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필수 단계다. 
   《나와 마주 서는 용기》


글쓰기는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흔히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은 쉽게 파악하고 좋다 혹은 나쁘다고 판단하지만 자신의 장점과 단점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자신의 인생을 글로 써나가다 보면 자신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치유 글쓰기에 앞서 자신과의 라포 형성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글로 써 보길 바란다.  




우리 모두는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살고 있다. 넘쳐나는 정보로 인해 어디에 주파수를 맞춰야 할지도 모른 채 이리저리 치이고 휘둘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낯선 곳에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산을 오르고 여행을 가더라도 목적지가 분명해야 하고 중간중간 이정표도 확인을 해야 한다. 하물며 인생이라는 긴 여행은 더 자주 자신의 위치와 방향 그리고 이정표를 확인하고 점검해야 한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써 본다면 자신이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리고 현재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  


자신과의 라포가 형성되었다면 이제 조금 더 깊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차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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