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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Mar 02. 2021

치유 글쓰기에 서론 본론 결론은 없다

나를 위한 치유 글쓰기

글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글의 표현 형식에 따라 운문과 산문으로 나뉘고, 산문은 글의 성격에 따라 문학과 비문학으로 나뉜다. 문학에는 시, 소설, 수필, 희곡 등이 있고, 비문학은 문학을 제외한 모든 글, 기사, 사설, 논문, 연설문, 에세이, 감상문, 일기 등이 해당한다. 


글의 종류가 이토록 다양하고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엄청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글의 구성 형식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어떤 종류의 글이라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글의 흐름은 한 가지로 통일된다. 비문학의 경우는 서론, 본론, 결론이고 문학은 기, 승, 전 결로 이어진다. 글을 쓰는 사람은 이러한 형식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펼친다. 독자 역시 글의 흐름과 맥락이 잘 이어지는 글을 읽을 때 저자의 주장과 의견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입시 위주의 대한민국 교육 제도 덕분에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교과서 지문에 나와 있는 문학 작품을 읽을 때도 지문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글쓴이의 의도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단어와 문장을 찾는 것에 오히려 익숙하다. 자신의 개인적인 감상평이나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자신만의 방식과 언어로 표현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대한민국에서는 너무 낭만적인 이야기다. 


이러한 입시 위주의 교육 방식으로 인해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할 때도 은연중에 틀에 가두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고 두렵다. 그래서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의 시선을 염두에 둔 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곤 한다. 


물론 대중에게 드러내기 위한 글을 쓸 때는 형식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 보고 마음을 치유하는 글쓰기를 할 때는 글의 흐름이나 형식은 잠시 잊어두길 바란다. 


설명을 조금 덧붙인다면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글로 쓰면서 글의 형식에 맞추기 위해 섣부르게 결론을 내리거나, 논리 정연하게 글을 배열해야겠다는 생각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두서없이 써 내려가는 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바로 생각나는 그 기억과 감정에서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아픔을 축소시키거나 과대 포장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아픈 건 아픈 거고 치유되지 못한 건 치유되지 못한 것, 날 것 그대로 글로 표현해 보는 것이다.


과거에 받은 상처를 가슴속에 품은 채 그때의 아픔을 지금도 느낀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상처조차도 자신에게 열어 보이지 못한 채 내면의 틀에 가두어 둔 것일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의 눈과 세상의 잣대에 나를 끼워 맞추려 너무 애쓰다 보니 자신의 진심조차도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글로 표현하는 데는 그 어떠한 형식이나 양식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용기를 내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마주하며 글로 표현해 보는 것, 그것이 시작이자 끝이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감시자 조차도 간섭하지 못하도록 그저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치유 글쓰기를 하며 나는 많이도 울었다. 내 마음속에 꽁꽁 숨겨둔 나의 상처들을 수 십 년 만에 하얀 모니터 위에 글자로 드러낼 때 아픈 곳을 갈퀴로 후벼 파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당시의 기억과 상처 때문에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그동안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나에 대한 미안함이 더 컸던 같다. 조금 더 빨리 용기를 내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치유해 주었더라면 어쩌면 더 오래전부터 행복한 시간을 누려왔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아쉬웠다. 


치유 글쓰기를 하다 보면 한 가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과거의 허상에 스스로를 묶어두느라 자신의 소중한 삶을 얼마나 많이 낭비하고 있었는지를. 사랑하고 행복을 누리며 살다가 가기에도 짧은 우리의 삶을 더 이상 과거의 상처로 인해 감정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헝클어진 마음, 정돈되지 않은 기억들을 있는 그대로 자신에게 드러내 보이길 바란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신의 상처를 글로 드러낼 때 치유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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