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한 대로 이루어지더라

나이 서른셋, 홀로 캐나다로 떠나다

by May

인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은 아주 찰나이다. 그러나 살면서 만들어진 작은 우연들이 모이고 모여 우리의 선택길을 만든다.


어렸을 적 옆집에 살던 준이라는 나와 동갑인 친구가 있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준이와 어렸을 적 뛰어놀던 기억보다는 찰칵, 찰칵, 내 머릿속에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겨진 기억들이 있다.

가끔씩 볼 수 있었던 준이 아빠, 그분은 아주 가끔씩만 볼 수 있었는데 아파트식 복도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담배를 태우셨다. 준이 아빠 직업은 파일럿이었다. 그래서 가끔씩만 마주칠 수 있었던 것. 파일럿이라는 직업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준이 집에 놀러 가면 내가 좋아하는 스키틀스와 땅콩초콜릿이 가득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었다. 우리도 친척분들 중 누군가가 미국에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Bill이라는 미국 선생님에게 영어를 처음 배웠다. 수업은 주로 게임으로 이루어졌으며 단어를 이용한 빙고 게임도 했다. 그리고 Bill 선생님은 영어 동화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어 주시기도 했다.

어느 날 Bill 선생님을 흉내 낸다며 그럴듯하게 혀를 꼬며"apple"이란 단어를 말하자 부모님이 박장대소하시며 잘했다고 칭찬도 잊지 않으셨다.

그 이후로 나는 영어 단어를 볼 때마다 그대로 발음하려고 테이프를 듣고 또 들으며 흉내내기 시작했다. 새로운 단어를 배울 때마다 이상한 쾌감이 몰려올 때도 있었다. 빨리 이 단어를 내 머릿속에 집어넣고 기억하고 싶었다.


중학교 때는 영어 본문을 배우면 그 문장들 하나하나를 다 암기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문장들을 외우며 홀로 말하기 연습을 했다. 시험에 나오지 않을 중요하지 않은 문장들도 다 외워버렸다. 다른 외국어를 배우고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말한다는 건 정말 짜릿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급식을 먹고 운동장에 잠깐 앉아 있으면 파란 하늘 위로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지나가고는 했다. 내가 살았던 곳은 김포공항 근처라 심심치 않게 비행기를 볼 수 있었다.

비행기를 잠시 바라보며 내 친구에게 나지막이 중얼거리듯 얘기했다.

"나는 언젠가는 저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갈 거야"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만의 가장 찬란했던 시절이 있듯이 나에게는 20대가 그랬다.

우주 중심에 나는 서 있었으며 뭐든지 경험해 보고 싶었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도전해보고 싶었다.

스물여섯 살, 나는 황금티켓이라는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를 갔다. 비자를 신청하고 전 세계 여행객들이 모인다는 에어비앤비를 예약했고 주저함 없이 갔다. 시드니에서 사기도 당하고 현금 인출기에서 범죄의 표적이 되어 10불을 남겨 놓고 모든 돈을 인출당하기도 했다. 없는 돈을 쪼개어 먹었던 초밥 맛은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때 바라보던 하늘에 뜬 무지개는 왜 그리도 선명했던지!


한국에서 이십 대 때 여러 가지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험들을 쌓았고 내 인생 첫 홀로 해외여행지였던 호주로도 훌쩍 떠났다. 나의 오랜 꿈이었었던 막내 작가로도 잠시 일해봤다. 학창 시절 영어를 너무 좋아했기에 그쪽 분야로 발을 디뎌 영어 유치원에서도 일을 했다.


열심히 성실하게 앞을 보며 살던 어느 날 번 아웃이 왔다.

연애마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드라마에서 보지 못한 비극적인 여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때마침 친한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 소식을 알리던 그때 나는 일여 년간 꽤 깊은 우울증을 앓았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속을 홀로 한발 한발 걷는 느낌... 그곳에는 불도 빛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이었다.

숨이 막히는 하루하루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 가자. 고요하고 평온하던 캐나다 토론토 어느 호숫가. 그 대자연이 있는 곳으로.

그 호수를 다시 바라볼 수 있다면 왈칵 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따뜻한 엄마 품에 안기는 것처럼, 나를 말없이 가만히 안아주고 위로해 줄 것만 같았다.


"결정했다. 지금 아니면 나는 평생 가지 못한다. 지금이 기회다."


지금 가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혼자 이민을 가겠다는 건 너무 무모하다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내비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나는 캐나다를 선택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도 그동안의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얻은 내적인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들 중에는 실패도 많았고 자책도 했으며 다시 일어서기까지 나와의 타협이 있었고 내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에서 얻어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국 나를 캐나다로 향하게 한건 그 간 내 삶 속에서 일어났던 그 우연들이 만들어낸 기적이더라.

비행기 조종사였던 준이 아빠를 보며 참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나도 언젠가는 저 멀리 비행기를 타고 가서 맛있는 땅콩 초콜릿과 캐러멜을 마음껏 먹어보고 싶었다는 어린 날의 귀여운 바람들, 첫 직장에서 첫 해외 출장으로 떠났었던 캐나다 토론토 그리고 내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던 물 아지랑이 피어오르던 호숫가...


이런 우연들이 모여 결국에는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 냈다. 이건 나도 그리고 내 가족들도 가까운 친구들도...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람 사는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고 하더라. 그러니 그 누구도 절대, 단언컨대 라는 말은 조심스럽게 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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