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토요일 저녁,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 나에게 친구가 저녁을 먹고 가자고 했다.
평일에는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토요일은 아침부터 늦은 오후 5시까지 수업이 있는지라 집으로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그날따라 자꾸 나를 붙잡고 저녁을 같이 먹자는 친구를 외면할 수 없어 간단하게 초밥이나 먹고 가자고 했다.
초밥을 먹고 나니 또 디저트가 먹고 싶었고 저녁 8시까지 우리는 함께 있었다.
저녁 9시 무렵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경찰차 한대가 서있었고 집주인인 중국인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밖에 나와 계셨다. 그 당시 나는 작은 방을 빌려 매달 렌트비로 550불을 내고 있었다.
범상치 않은 분위기, 수심 가득해 보이는 아주머니께 무슨 일이냐고 여쭈어보니 집에 도둑이 들었단다!
너무 놀라 집 안 내방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경찰 한분이 막아섰다. 지금 안에서 지문검사 중이니 끝날 때까지 들어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그렇게 두 시간을 밖에 서 있었고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 집안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이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한국에 30년을 넘게 살면서 도둑을 한 번도 본적도 또는 도난을 경험해 본 적도 없기에 지금 이 상황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천진난만하게도.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던 건 내 방에 들어가기도 전 문을 보고 나서였다. 항상 문을 열쇠로 잠그고 다녔는데, 방문 손잡이가 모두 부서져 있었고 흡사 단단한 연장으로 내리친 거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잔해들이 여기저기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가 방 안을 보고는 요동치는 심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옷장 안 공간이 크지 않아 한국에서 올 때 가져온 캐리어에서 겨울옷은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그 안에 있었는데, 방안에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내 겨울 옷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마구잡이 양손으로 캐리어안에 있던 모든 옷들을 그냥 꺼내어 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순간 머릿속을 번뜩이며 지난 간 것.
"내 돈 어딨지? 내 렌트비!!!"
이번달 말 렌트비를 내기 위해 550불 현금을 인출하여 봉투 안에 넣어 놓았다. 그리고 혹시 몰라 그 봉투를 캐리어안 겨울 옷들 속 안으로 깊숙이 넣어 놓았었다.
다시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 돈, 이게 얼만데"
급히 캐리어안을 보니 바닥 쪽으로 채 꺼내지 않은 겨울 옷들이 보였고 손을 쑥 넣어보니 다행히도 봉투가 만져졌다. 아마 시간이 없어서 거기까지는 손이 닿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한다.
"아, 다행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도감으로 숨을 내쉬고 있을 때 눈에 들어온 건 새벽에 급하게 과제를 마무리하고 바닥에 내려놓고 나갔던 내 노트북! 다행히도 수북하게 쌓여 있던 옷들 사이로 빼꼼 모습을 비추었다.
나중에서야 아저씨가 이야기하시길, 내 노트북이 LG가 아니라 애플이었다면 분명히 가져갔을 거라고. (캐나다에서도 애플의 인기는 대단하다) 상대적으로 캐나다에서 애플보다는 덜 선호하는 LG 노트북은 가져가지 않았을거라는 것.
옆방 중국인 아주머니와 아저씨 방에서는 결혼 패물과 금고 안에 넣어놓은 현금, 명품가방을 모두 가져갔다고 했다. 이 충격으로 중국 아주머니는 두 달을 넘도록 회사도 가지 못하고 방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우셨다.
내 맞은편 방에서 지내고 있던 중국인 유학생은 애플 노트북이 사라졌다고 했다.
양쪽 방에서 값비싼 물건들을 도둑맞았을 때 감사하게도 그리고 다행히도 내 물건들은 그대로였다.
그러나 귀중한 물건들을 도둑맞은 다른 사람들의 충격을 나도 고스란히 함께 받고 있었다.
주택가들이 모여 있는 한적한 곳에서 일어난 토요일의 주택침입 절도 사건. CCTV가 한국만큼 많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이런 사건은 범인을 잡기가 어렵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사람이 다치지 않은걸 다행으로 여기라며 도둑은 잡을 수 없었다고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한다. 황당했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도둑 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그날 저녁 저녁을 같이 먹고 가자고 자꾸 나를 붙잡았던 그 친구가 생각이 났다. 만약 저녁을 먹지 않고 그냥 집으로 왔더라면. 그리고 그 큰 집에 나 혼자였다면. (도둑이 들었던 그 시간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문 손잡이를 내려쳤을 연장들이 오버랩되면서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 후로 지금까지 나는 이상한 강박증이 생겼다.
중요한 물건들을 어딘가에 넣어 놓았을 때 생각이 날 때마다 몇 번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그래야지만 안심이 되었다. 밴쿠버 도둑 침입 사건은 이렇듯 내 생활 습관마저 바꾸어 놓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마주한 밴쿠버에서의 도둑 침입 사건.
쓰나미가 한 차례 쓸고 지나간 거 같았던 처참했던 그날의 흔적들은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