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서 안다고 감히 말하지 말자

모든 상처와 고통은 깊이가 다르다.

by May

아빠와 부산여행을 다녀온다는 엄마에게 한국 시간에 맞추어 전화를 했다.

"엄마, 여행 잘 다녀왔어? 부산 좋았지?"

"응......" 그리고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른 후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엄마 왜 그래? 울어?"

때마침 엄마 쪽에서 다른 사람의 전화가 걸려오는 진동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다시 할게"

그리고 전화기가 끊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 카톡 메시지. " 딸, 별일 없지? 다음에 얘기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엄마가 너무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이역만리 땅에 살고 있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무거운 죄책감이 머리를, 어깨를 그리고 가슴을 아주 무겁게 짓누른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온몸의 신경세포들이 예민해진다고 했던가. 부모님 목소리만 들을 수 있고 볼 수 없는 나는 어느덧 이런 작은 부모님의 감정에도 늘 민감했고 예민해져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이모에게 카톡을 남겼다. "엄마가 조금 이상한데 별일 없겠지?"

곧이어 이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조문객이라는 단어와 부조금, 그리고 한 번씩 들려오던 사촌언니의 이름. 급하게 데이터를 연결했지만 보이스톡은 중간중간 끊겼고 이모의 말도 끊겨서 들려왔다.

"근데 이모, 무슨 말이야? 중환자실?"


사촌 언니가 자살시도를 했다. 그리고 현재 중환자실에 있고 혼수상태라고 했다.

온몸에 힘이 빠지며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아주 오랫동안 직접적인 연락은 안 했지만 이모로부터 엄마로부터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간간이 소식은 듣고 있었기에 이 갑작스러운 소식은 그대로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두 시간 뒤, 또다시 들려온 소식은 언니가 하늘나라에 갔다는 것과 3일장을 치른다는 거였다.


언니는 의젓하고 든든한 딸 셋의 첫째였다.

어렸을 적 말이 없고 조금은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언니는 호수처럼 잔잔한 묵직함과 함께 속이 깊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손재주가 많아서 눈썹 타투, 아이라이너 기술을 배워서 단골 고객들을 모았고 참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이모가 여행 갈 때면 늘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살갑게 챙기는 효녀였다. 결혼 후 아들 둘을 낳아 이제는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장성한 청년이 되었다. 성실하고 착한 형부와도 가끔은 낚시를 다니며 알콩달콩 지내고 있다고도 들었다.


세상과 맞서며 참 열심히 살던 언니였는데 왜...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수많은 물음표가 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은 자 앞에 왜?라는 이유는 없다.


사람들이 겪는 그 고통과 아픔은 본인 당사자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유사한 경험이 있어서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겪었던 그 고통과 다른 사람의 고통은 절대 같을 수 없다.



절대 같은 고통, 아픔이라는 것은 없다.

그래서 감히 함부로 힘내라는 말도,

너를 이해한다는 말조차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세상 속 모진 풍파 속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겨내고 일어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티다 끝내는 온몸에 힘이 빠져 스르르 파도 속에 이끌려 간 것이리라.


며칠 전 운동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 피어있는 빨간색 장미꽃 한 송이를 보았다. 어찌나 색깔이 빨갛고 크기도 탐스럽던지... 얼른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때로는 비를, 천둥번개를, 우박을 맞으며 그러다가 어느 날은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이 한송이의 꽃이 피어났으리라.

사촌언니의 찬란했던 그 시절도 이 장미꽃처럼 붉게 타올랐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모진 바람과 풍파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기 위해 버티며 가족에 대한 헌신과 사랑,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으리라.


그리고 사촌 언니처럼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삶을 살았고 힘든 세상 그 고통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손끝 마디마디까지 온 힘을 다하여 세상을 살다 결국 고인이 된 모든 분들에게...


이 붉디붉은 장미꽃을 안겨 드리며 따뜻하게 위로해 드리고 싶다.


해맑게 웃던 사촌 언니의 얼굴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마음이 시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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