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생각하면 사는 게 가벼워진다
며칠 전 화장을 하다가 삐죽하게 한가닥 솟아 올라와 있는 흰 머리카락을 발견했다.
보통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정리하다가 흰머리를 발견하고는 한다던데... 인생 처음으로 마주한 나의 첫 흰머리. 그 한가닥은 얄밉게도 눈에 띄는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흔이 이제 조금 넘은 나이, 또래의 친구들은 흰머리가 진작에 났다며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그러나 참 유별나고도 민감하게도 '흰머리'만큼은 강하게 부인하고 싶었다. 마치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넘어가던 그 해를 받아들였던 게 쉽지 않았듯이. 또다시 다가온 나이로 인한 큰 변화에 마주하고 있었다.
첫 흰머리가 난 것을 본다면 그 기념으로 혼자 여행을 떠날 거라고 말해 왔었는데. 그 순간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와 있었다.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눈으로 직접 마주한 나이 먹음에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나에게는 앞으로 얼마만큼의 시간들이 더 남아 있을까?
"뻐꾹, 뻐꾹" 벽에 걸린 뻐꾸기시계가 매 시간을 알려주며 노래한다. 어떤 사람의 인생 시계는 한시에 놓여있고, 또 어떤 사람의 인생 시계는 여섯 시 반에 놓여 있기도 하다.
인생의 끝을 12시로 봤을 때 바로 코 앞에 와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곳과는 다소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가끔 시계가 고장이라도 나면 바로 그 자리에 멈추어 있다. 우리의 인생에도 질병이나 사고 혹은 다른 이유들이 끼어든다면 고장 난 시계처럼 그렇게. 인생의 시곗바늘이 그 자리에 멈추어 끝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는 게 사람일이라던데.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의 남은 시간들이다.
차 사고에도 나자빠져 버리는 게 사람이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참 연약하고도 힘이 없는 존재이기에 인생의 시계는 더 불분명하다.
사람은 누구든지 예외 없이 언젠가는 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 끝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감사하며 살 수 있다. 그러기에 가끔 죽음을 생각하는 건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하고 감사하게 살 수 있는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돌멩이처럼 차갑고 묵직한 죽음을 떠올려보면 조금은 훌훌 털어버리고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가볍게 인생을 살 수 있다.
사는 게 지루해질 때 혹은 인생의 짐이 너무 버겁거나 무거울 때 나는 크리스마스를 떠올려본다.
어렸을 때부터 크리스마스 때면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렸고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는 일 년 중에 가장 설레고 기분 좋은 휴일이다.
앞으로 나에게는 몇 번의 크리스마스가 더 남아 있을까? 몇 살에 죽음을 맞이할지는 모르겠지만 명확한 건 최대 수명 100세로 보았을 때 60번이 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일 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데 이런 속도라면 곧 이내 60번을 찍을 것이다.
내 인생 시곗바늘의 끝에 마침표를 찍어놓고 지금을 바라보면 지금 이 순간이 참 소중하고 귀하다.
삐죽 나온 흰머리 한가닥. 이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잔잔하게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슬퍼하지 말고 비관하지 말라고.
그럴 시간에 지금 이 순간을 더 즐기며 살라고.
서른일곱,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직장 동료.
고인이 남긴 마지막 카톡 메시지가 불현듯 생각난다.
"너무 사소한 것들에 목숨 걸지 말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힘들어 할거 없어. 죽음 바로 앞에 서 있어 보니 너무나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