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둘, 아이를 낳을까?

by May

얼마 전 톱스타 이효리 씨가 엄마와 함께 여행을 가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았다.

유치원생들이 지나가자 "저렇게 예쁜 딸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지금이라도 하나 낳으라며 말씀하시지만 이효리 씨는 "지금은 늦었지... 시험관으로까지는 하고 싶지 않고"라고 말한다.

어쩌면 나와 이렇게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난 다음 달 결혼을 앞두고 있다.

나이 마흔둘에 평생 함께하고 싶은 배우자를 만났다.

쉽게 쉽게 서로의 인연을 만나 결혼까지 간 사람들도 많지만 난 누군가 물어본다면 단언컨대 말할 수 있다.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인연을 만나 결혼까지 가는 일이었다고.


연애는 꽤 잘한 듯 보였지만 번번이 결혼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고 늘 깨졌다. 나한테만 지독한 저주가 걸린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결혼까지 골인시키며 인연을 이어가지 못해 참 많이도 상처받고 아파했었다.


그러다 마침내 나이 마흔둘에 만난 나의 인연, 내 배우자.

이것만으로도 나는 너무너무 감사하고 소중하다.


결혼을 앞두고 주변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아이 계획은 있어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50대 50이다.

아이가 자연스럽게 생긴다면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아이를 낳아 기를 것이고 아이가 생기지 않더라도 내 인생을 무엇보다도 위에 두어 즐겁고 여유롭게 살고 싶다.


나는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가끔씩 나 스스로에게 물어볼 때가 있다.

임신도 하기 전에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너무 거창하게 생각한다고 얘기를 들을 수도 있다. 만반의 준비와 책임감으로 아이를 낳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그러나 한국에서 영어유치원 교사로 5년을 일하고 캐나다에서 보육교사로 7년을 일하며 느낀 건 아이들을 양육하고 기르는 데에는 엄청난 희생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옆에서 육아하는 부모들을 간접적으로 보고 경험하며 나는 아이를 진심으로 원하는가? 아이를 낳아 기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인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뇌며 물어보고는 했다.


아이를 낳아서 기를 책임감은 100프로 준비되어 있다고 말할 수 다. 그러나 아이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냐고 물어본다면 글쎄요... 다.


길지 않다고 생각하는 한 번 뿐인 인생에 나는 나의 가치를 조금 더 우위에 두고 인생을 즐기며 아이 없이 여유롭게 살고 싶은 바람이다.


나에게는 조카 둘을 키우고 있는 오빠와 딩크로 살고 있는 언니가 있다. 둘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선명하게 대비하여 바라보았을 때 나는 언제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언니의 삶 쪽에 더 기울어져 있음을 느낀다.


아이를 낳으면 그 행복의 크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기쁘다고 한다. 아이들을 누구보다도 좋아하는 나는 그 말에 끄덕끄덕 100프로 공감할 수 있다. 나의 분신과도 같은 아이가 세상에 나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러나 아이를 낳는 문제에 결국 정답은 없다. 오직 내가 그 길을 정하는 것.


하얀 도화지에 내가 원하는 가정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했을 때 엄마, 아빠 옆에 아이들을 그려 넣을 수도 있고 그려 넣지 않을 수도 있다.

왜 아이를 그리지 않았어?라고 물어볼 수는 있겠지만 강요를 할 순 없다. "아이를 한 명 여기에 그려 넣어봐. 그럼 훨씬 더 행복해 보이는 그림이 될 거야. 내 거를 봐바. 아이를 그려 넣었더니 너무 행복하던걸!" 어느 누가 이렇게 강요할 수 있겠는가.

내 인생을 하얀 도화지라고 했을 때 결국에는 내가 그곳에 아이들을 그릴지 아닐지는 오직 내가 정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다른 사람들까지 아이들을 낳아서 길러 보라고 훈수 두는 건 말 그대로 오지랖이다. 내가 아이를 낳아 행복하다고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모든 사람들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지금 현재 놓여있는 상황도 다들 다르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 제각각이다.


다시 돌아와 이효리 씨가 남긴 그 장면의 댓글들을 보니 열띤 논쟁으로 가득하다.

각자 생각하고 결정하면 될 일을. 정답이 없는 이 문제에 조롱하듯 서로의 글에 반박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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