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씨, 좋은 일 있으세요?

안희정 성폭력 사건 재판 방청기-3

by MEI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위력에_의한_간음 및 #강제추행 사건의 공판을방청했습니다. 방청기의 순서는 두서 없이 제 맘 속 중요도에 따릅니다.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피해자의 이름없는 연대자로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 노동자로서 본 재판정 안팍의 풍경을 기록합니다.


작년 여름, 지인들과 어느 카페에 앉아 페이스북 라이브를 봤다.

뮤지컬 [아리랑]의 배우들과 원작자, 그리고 당시 유력한 차기대권주자로 부상하고 있던 50대 남성 정치인이 함께하는 관객과의 만남이 진행되고 있었다.

차기 대권주자이자 당시 지자체장이었던 50대 남성 정치인은 '인상깊었던 장면은?'이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민족이 수탈당한 역사를 여성이 겪는 고난(강간)으로 표현하는 것이 과연 오늘날의 젠더 감수성으로 봤을 때 적절한가, 싶었습니다. 시대가 변했으니 다른 표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요."


순간 우리 모두 박수를 쳤다. '이런 페미니즘적 관점의 비평이 연뮤에서는 꽤 일반화 되어있지만 그걸 50대 정치인이, 원작자를 옆에 앉혀놓고 할 줄은 몰랐네.'라며 감탄했다.

그날 이후, 나 역시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고 저런 일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역시 그냥 페미니즘을 깨작대는 게 아닌 체화를 한거라니까~'하고 입마르게 칭송하고 다녔다.


페미니즘 비평의 관점으로 뮤지컬을 감상하고 대작이라 칭송받는 '아리랑'의 시대착오적 서사를 지적한 50대 정치인, 짐작하시겠지만 그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이다.


그리고 그 날 함께 페이스북 라이브를 보던 일행은 트위터에서 안희정 지지 계정을 함께 운영하던 사람들이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50대 남성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이런 발언 하나하나에 너무 높은 값을 쳐주는 듯하다'고 브레이크를 걸었으나, 팬심의 질주는 막을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그 브레이크가 작동했어야만 했다.

왜냐면 바로 그 날,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세번째 범행이 있었으니까.

페미니즘, 젠더를 운운한 그 날.. 하하 안희정(심한 욕)



그래서 속죄의 마음으로 나는 공판을 방청하러 갔다.

결심공판이 있던 7월 27일은 평소보다 사람이 몰려서 아침 8시 반에 갔지만 결국 방청 제한 40명 안에 들지 못했다. 작년에 그 페이스북 라이브를 보며 '페미니스트 도지사'라며 함께 박수를 쳤던 일행 중 한 분도 나처럼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는 공공기관 적정온도 28도씨를 저주하면서도 서부지법 303호 앞을 떠나지 못하고 행여나 빈자리가 날까, 기다렸다.


그러던 중 안희정이 로비를 통과했다는 걸 기사 속보로 봤다.

그는 웃고 있었다.

이렇게 환하게 웃으며 법정가는 피고인이라니...
안희정 씨, 좋은 일 있어서 법원 오시나봐요?


나중에 재판기록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안희정이 그 날 그토록 활짝 웃으며 법원 문턱을 넘은 이유가 짐작이 갔다. 비공개였던 피해자 심문 당시, 재판부가 보여준 태도(평소 공개 재판 때 방청석의 기자들을 향해, 피고인 측 변호인단을 향해 '2차 가해 하지말라' 경고하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던 것 같다.)가 그에게 얼마나 자신감을 줬을까. 주목받는 정치인으로서의 헛헛한 마음과 자기연민에 빠져 위로를 구하였을 거라며 안희정이 말하지 않은 마음까지 어루만져주던 재판부를 만나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이었을까.


겨우 빈 자리가 나서 내가 재판정에 입장한 것은 피고인측 변호인의 최후 변론 때였다.

변론의 요지는 #피해자다움 이 없다, 는 것이었다.


피해자라면 가해자와 멀어지려고 해야지, 왜 일을 열심히 했냐고 했다.

메시지에 ^^ 웃음 이모티콘을 썼다고 했다.

'넹~'(변호인은 콧소리를 섞어 읽었다)이라는 말투 너무 다정하다.

마지막 성폭행이 발생하고 고발을 결심한 와중에도 일한다고 사람 만났더라.


웃음 이모티콘을 써서, 범행 다음 날 가해자와 일상 대화를 해서 피해자가 아니다, 라니. 너무 익숙하다.

전관 변호사까지 포함해 너댓의 변호인단이 머리를 짜내어 기껏 한다는 소리가 포털 뉴스 댓글 수준이었다.

변호인의 최후변론은 그야말로 #피해자다움 에의 강요 그 자체였으며 또 다른 2차 가해였으나, 더 기막힌 건 나중에 나온 재판부의 1심 판결문도 딱 그 수준이라는 것이다.

하긴 '왜 동맥이 아니라 정맥을 그었어요?'라며 성폭력 피해자의 '자살 진정성'까지 의심하고 검증하는 대한민국의 법을 내가 너무 띄엄띄엄 본 것이다.


그러나 역시 결심공판의 킥은 안희정의 최후 진술이었다.

지난 공판 내내 눈을 감고 비스듬히 앉아 반쯤 자는 듯 자리를 지켰던 안희정. 물론 피해자 심문 때 갑자기 마른 기침이 많아졌다고는 들었다. (그 마른 기침이 부디 수명에 치명적인 중병의 전조이길 바란다) 어쨌든 피고인 심문도 요령껏 피한 안희정은 그 날 처음으로 재판정에서 입을 열었다.


그는 판사와 검사의 수고를 치하하고, 국민 여러분 부터 충남 도민, 지지자들, 심지어 여성단체까지 부르며 죄송을 운운하더니,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연극적으로, 그는 외쳤다.


어떻게
지위로 한 사람의 인권을 빼앗습니까?


법정에서는 코웃음, 낮은 욕설(고백하지만 접니다),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니, 중학교 때부터 혁명을 하겠다고 학교 밖으로 나갔다느니, 대학 때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느니 했던 그가 '위력'을, 이에 침탈당하는 인권을 어떻게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가 지적했던 소설 <아리랑>속에서 민족을 대신해 수탈당한 보름과 수국 자매는, 그 착취는 무엇으로 가능했던가.


언젠가 안희정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주의를 접하고 남성이라는 반쪽짜리 창이 아닌 젠더라는 와이드 비전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거짓말. 그는 남성 권력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익숙한 연설투로 극적인 한 마디를 뱉은 뒤, 그는 '한 가정의 남편으로서 고소인과의 관계를 지속하며 괴로웠고 미안했다'며 불륜남의 심적 고뇌까지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도덕적 책임은 지겠으나 법적 처벌만은 받고 싶지 않다고 판사에게 징징...(아, 쓰다보니 빡쳐서.. ) 호소하며 진술을 마무리 했다.



그러나 안희정은 꼭 해야할 이야기 하나를 하지 않았다.

3월 5일, 피해자의 고발 직후 '합의에 의한 관계라는 비서실의 입장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했던 자신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합의가 아닌 성관계가 어째서 곧 성폭행이 아닐 수 있는지. 재판부는 굳이 안희정에게 묻지 않았고 안희정 역시 변명하지 않음으로써 모두가 기억하는 그 문장을 마치 환영인양 지워버렸다.

3월 6일 새벽 안희정의 페이스북 캡쳐


권력은 정말 그럴 수 있다.

합의가 없는 성관계를 성폭력이 아닌 것으로 만들 수 있고,

존재하는 인권 침해를 없는 것으로 할 수 있고

기억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며

본인이 답하고 싶지 않은 것은 질문 받지 않을 수 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은 1심 재판은 그렇게 안희정이 없는 채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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