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성폭력 사건 재판 방청기-4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위력에_의한_간음 및 #강제추행 사건의 공판을방청했습니다. 방청기의 순서는 두서 없이 제 맘 속 중요도에 따릅니다.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피해자의 이름없는 연대자로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 노동자로서 본 재판정 안팍의 풍경을 기록합니다.
6년 전 같은 프로그램에서 일했던 선배를 아주 오랜만에 만났다.
선배는 요즘 기사를 보고 있자니 우리가 그 프로그램을 했을 때가 떠오른다고 했다.
2012년 봄 즈음에 출연 예정자 사전 미팅을 갔을 때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집안일로 불참)
"다들 테이블에 둘러 앉아서 막내작가가 기록하려고 노트북을 폈어. 근데 그 사람(출연 예정자)이 작가의 키보드 스킨을 보더니 되게 관심을 갖는 거야. 그러면서 '괜찮아 보인다. 어디서 사면 되냐'라고 묻더라? 난 그냥 아이스브레이킹 정도로 생각하고 웃고 말았지."
선배가 놀란 건 미팅 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나오는데 비서실 사람들이 와서 정말 진지하게 그 키보드 스킨 어디서 사면 되냐고, 사이트 주소 알려달라고 묻는 거야. 역시 도지사쯤 되면 아랫사람들이 이렇게 눈치를 보는구나... 생각했거든. 근데 그게 단순히 아부하려고 알아서 기는 게 아니었다는 거잖아."
눈치챘겠지만 출연 예정자는 당시 초선이었던 안희정 전 충남 도지사다.
우리는 이제 와 함께 혀를 찼다.
아, 그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그깟 키보드 스킨이 뭐라고 비서들은 긴장했을까.
그깟 순두부가 뭐라고 러시아에서 그렇게 찾아 헤매야 했을까.
7월 13일, 피고인 측 증인 심문이 있던 날도 공판 방청을 갔다.
오전에는 안희정의 경선캠프에 있었던 증인 A 씨의 증언(안희정 성폭력 사건 방청기-01)이 있었고 오후에는 아내 민주원 씨(이건 또 따로 쓰겠다)가, 그리고 이어서 첫 범행이 있었던 러시아 출장에 동행했던 충남도청의 공무원 B가 증인으로 나왔다.
사법부가 성폭행을 부정하는 근거로 쓴 "사건이 발생한 때로부터 몇 시간이 지난 후인 당일 아침에 피고인이 순두부를 좋아한다면서 인근의 순두부집을 물색하려고 애쓴 점"을 진술한 것이 바로 공무원 B였다.
B는 4급 이상의 고위직 공무원이었다. (안희정 도지사로 있을 때 현재의 자리로 '승진 발령' 받았다고.) 근 40년 가까이 일한 고위직 공무원의 '우리 도지사님은 정말 권위적이지 않고 소통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과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아마 서부지법 부장판사 조병구 씨 외 2인을 제외하면 B가 '권위'에 대한 민감도가 현저히 떨어질 거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B의 증언은 여러모로 재밌었다.
먼저 피고인 측 변호사가 B에게 물었다.
"고소인(김지은 씨)에 대한 도청에서의 평가는 어땠나요?"
공무원 B 씨는 피해자를 도청 공무원들이 좋아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도지사를 너무 챙겨서 공무원들 불만이 많았습니다. 업무라기 보단 도지사 개인을 챙긴다고 할까요."
마치 사적인 감정으로 피해자가 안희정을 챙겼다는 투로 들렸다. 듣던 판사 조병구 씨가 끼어들어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설명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B 씨가 한 말은 진짜 황당했다.
"간담회나 회의 때 저희 공무원들이 자료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고소인이 부족하다고 이대로는 지사님한테 못 올린다고 자꾸 보강을 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공무원들이 정말 힘들어했습니다."
조병구 씨가 그 증언을 듣고 했던 말을 기억한다.
"일을 열심히 했다는 거군요."
(아, 조병구 씨... 양승태 사법부에서 공보판사를 하셨던 분 답게 기자와 방청객 앞에서는 피해자 감싸주는 척 참 많이 하셨네요.)
젊은 여자가, 그것도 '어쩌다 공무원' 주제에, 도지사 수행한다며 감히 '늘 공무원'인 자신들에게 서류 보강을 지시하는 게 화가 났던 걸까.
그는 러시아 출장 당시에도 이런 일 때문에 무척 속상했던 모양이었다.
"한인 기업인들과 만찬을 했는데 지사님이 갖고 있는 참석자 명단이랑 제가 받은 거랑 다른 거예요. 보니까 지사님 명단에는 사진도 있고 내용도 자세하더라고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고 했더니 같이 갔던 수행원들 말이... 영사관에서는 이름과 경력만 나와있는 간단한 명단(B가 받은 것)만 줬는데 전날 밤에 고소인이 이걸로는 안 된다고 해서 급하게 영사관에 연락해 사진까지 첨부된 명단(안희정이 받은 것)을 1부 받았다는 거예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 김지은 씨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가,를.
그러나 B는 정말 자신이 얇은 명단을 받았다는 것이 맘에 안 들었던지 그런 피해자의 성실함조차 폄훼하려 애썼다.
앞서 오전에 증언했던 지인 A에게 피해자가 '힘들다. 괴롭다' 호소한 충남도청의 분위기를 공무원 B의 말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문제의 순두부.
"조식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는데 그 날 고소인이 '안희정이 좋아한다'며 순두부를 먹으러 가자고 하더라고요. 딱 어디 특정 가게가 있는 게 아니라 영사관에서 호텔 근처에 일식집이랑 뭐 그런 게 몇 군데 있다는 말만 듣고 1시간쯤 돌아다녔는데 결국 못 찾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노상 카페에서 햄버거를 먹었죠."
요약했지만 순두부, 순두부, 순두부 타령은 이어진다.
"7월 31일이 귀국하는 일정이었는데 오전에 박물관 갔다가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고소인이 한인식당을 섭외했더라고요. 영사관 통해서요. 한인식당이기에 비빔밥이나 먹겠거니, 했는데 순.두.부.를 먹었어요. 그리고 비행기를 탔죠."
아 순두부...
몇 시간 후면 한국인데 기어이 먹어야 했던 순두부.
그때 증언을 듣다가 나는 결국 피식 웃으면서 옆자리의 다른 연대자분께 귓속말을 했다.
"저놈의 순두부. 안희정 완전 밥줘X 아닌가요..."
그런데 그게 무죄의 근거로 쓰일 줄이야...
피해자 측은 이후 문제의 순두부(아 쓰기도 싫어져) 제안은 당시 수행하던 다른 도청 공무원이었다고 반박했다. (관련기사 링크) 그리고 설사 순두부를 찾아 헤맸다 해도 이는 성폭행 당시의 상황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만찬 참석자 명단을 꼼꼼히 챙기고 수행 대상의 식성에 맞춰 식사를 준비하고 '맥주' '담배'라는 단어 지시에도 달려가야 하는 수행 비서의 업무를 공무원 B처럼 재판부 역시 '아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해'쯤으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이 날 앞서 증언한 안희정의 아내 C 씨의 입에서 나온 '마누라 비서'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B의 증언은 그야말로 여성 노동자 전체에 대한 모욕이며 명백한 여성 혐오였다.
일을 열심히 해도, 혹은 좀 서툴러도 사회적 편견에 기반해 '여성적 특질'로 호명되는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 여자가 너무 독하다, 상사에게 사적 감정 있냐, 소파 승진 아니냐 등등의 흔한 뒷말들과 통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할 말 많으니 다음에 쓰기로..)
앞서 말한 선배가 충남도청에서 겪은 '키보드 스킨' 상황과 '러시아 순두부'는 비슷한 결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농담처럼 한 말에도 바짝 긴장해서 키보드 구매처를 알아보던 거나, 러시아에서 순두부를 찾아 헤매는 것, 그 조직의 문화와 위력의 실체를 보여주는 일이다.
고위직 공무원 B의 말처럼,
6년 전 방송 출연으로 내가 만난 안희정도 친절하고 겸손한 사람처럼 보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가면서 여전히 생방송으로 정신없던 부조정실에 가서 사람들 뒤통수에 먼저 '수고하셨다' 인사를 할 만큼 격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와 방송 관계자 사이의 '격'이라는 것.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이고 높은 양반이 먼저 인사를 해주시네~'라는, 백성의 마음가짐으로 나는 그의 인사를 감사하게 여겼던 거다.
방송 전에는 안희정을 수행해 온 비서 중 한 사람이 담당 작가인 나를 불러서 따로 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사전 질문지 보낸 것 중 민감한 것은 없는지를 확인했던 것 같다. 워낙 그 비서의 태도가 정중하고 친근해서 나는 그걸 위압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네네 제가 둔감합니다)
나중에 다른 방송에서 안희정을 취재했던 지인이 '다른 캠프와 달리 안희정 경선 캠프는 유난히 권위적이고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라고 넌지시 일러줬을 때도 나는 '그건 안희정이 아닌 알아서 기는 '아랫사람들' 때문일 거야!'라고 항변 아닌 항변까지 했다.
뭐랄까, 노동자 착취하는 악덕 기업에서 중간관리자의 횡포는 직접적이라 쉽게 포착되지만 말단 직원에게는 너무 먼 권력인 사장님은 특별히 부딪히지 않아 딱히 미워하지도 못하고 심지어 '가끔 밥도 사주시고 사람 좋은데...'라고 평가하게 되어버리는 그런 상황이었달까. 사실 착취의 진짜 가해자는 바로 그 사람 좋은 사장인데 말이다.
자신의 수행비서에게 한밤중에 '담배'라며 단어만으로 사적인 지시를 하고, 메시지 확인이 4,5분 늦었다고 '어허~'하고 헛기침하는 사람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던 때에는 그랬다.
안희정의 아랫사람들이 보여주는 심상찮은 행동들을 자발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짜 권력과 권위는 결코 직접적인 폭력과 폭언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헛기침 한 번이면, 마치 지나가는 투의 질문 하나면 충분히 아랫사람을 긴장시킬 수 있고 권력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위력'의 무게는 가중된다.
키보드 스킨도 순두부도 결코 애정과 충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위력의 작동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증언한 B씨나 부장판사 조병구 씨, 안희정 같은 권력 피라미드의 상층에 있는 고위직들은 당연히 모를 일일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