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성폭력 사건 재판 방청기-2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위력에_의한_간음 및 #강제추행 사건의 공판을 방청했습니다. 방청기의 순서는 두서없이, 제 맘 속 중요도에 따릅니다.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피해자의 이름없는 연대자로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 노동자로서 본 재판정 안팍의 풍경을 기록합니다.
남성 .중심 사회의 핵심적 정서는 여성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여성의 취향, 경험, 고통, 말을 사사롭게 취급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성들에게는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는 장소가 자주 주어지지 않습니다. 여성들의 경험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기 어려운 것은 말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며, 경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경험에 쉽게 낙인찍으려 하기 때문이고, 드러내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드러낼 장소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여성민우회 엮음 [거리에 선 페미니즘]의 서문 중에서
강남역 사건 직후, 한국의 여성들은 뿌리깊은 여성혐오 문화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당시의 추모는 낯모를 여성의 죽음에 대한 애도에 그치지 않았다. ‘우연히 살아남은 나와 자매들’에 대한 위로, 그리고 더 생각하고 떠들고 설쳐야만 한다는 다짐이었다. 우리의 추모는 어느 때보다 격렬했으며 또한 긴 여운을 남겼다.
[거리에 선 페미니즘]의 부제, ‘여성 혐오를 멈추기 위한 8시간, 28800초의 기록’을 짚어보면 우리는 그 거리에서 여성의 경험을 사소화하는 세상에 대응할 새로운 언어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강남역 사건, 아니 그 이전부터 최근의 #00계_성폭력 고발과 #METOO 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아오기 위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도 듣지 않고 우리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다.
공덕역에 내려 곧장 택시를 잡아탔다. 지난 결심공판 때 괜히 밤마다 공원 달린 체력을 시험해 본답시고 뛰었다가 결국 방청객 제한 40명 안에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좋은 택시 기사님을 만난 덕에 가까운 거리지만 편하고 빠르게 갔고 내리기 직전 기사님이 안희정에 대한 짧은 욕을 해주어 더욱 상쾌한 출발이었다. 공지된 선고공판 개정 시각은 10시 30분, 내가 서부지법에 도착한 때는 7시 20분이었다. 그렇게 달려와 받은 순번표는 32번.
안희정 성폭력 사건 방청연대(피해자와 연대하는) 분이 6시 45분 쯤 왔는데 그보다 일찍 온 사람이 한 명 있었단다. 나중에 늦게 온 일행들의 면면을 보니 그 1번은 안희정의 현 지지자였다. 그들은 방청연대 사람들이 서로 아는 체를 하며 반가워 하고 얼음물을 나누는 동안 꼿꼿이 앉아 열리지 않은 서부지법의 현관만 바라보고 있었다.
문 닫힌 서부지법 앞에서 그렇게 껄끄러운 얼굴도 여럿 보고 반가운 얼굴도 여럿 만났다. 방청연대로 알게 된 분들, 시민단체 활동가분들, 내 인생의 문장을 여럿 선물해준 선생님(물론 나를 모르시니, 혼자 마음으로 반가워했다), 그리고 한 때 함께 안희정을 응원했고 지금은 피해자와 연대하기 위해 다시 만난 사람들까지. 분명 다들 어젯밤 잠을 설쳤겠으나 우리는 웃으며 인사하고 오늘의 희망에 대해 함께 이야기 했다. 연이은 METOO 고발의 첫 재판. 가해자들의 몰락과 고발자들의 승리를 기대했다.
물론 모두 알다시피 그렇게 세상이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라서....
10시 30분을 조금 넘겨 선고공판은 시작됐다.
형법 303조, 위력에 의한 간음의 입법취지를 설명하며 부장판사 조병구 씨는 ‘과거에는 부녀의 정조는 재산권은 물론이고 때로는 생명권보다 소중한 것’이어서 이러한 법을 만들었다고 설명한 뒤, 다시 근래에는 정조가 ‘성적자기결정권’으로 변경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그러므로 여성은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나중에 ‘나는 그럴 결정권이 없었다’는 건 도리어 여성의 권익을 축소하는 것이라고.
그 말이 나왔을 때, 이미 느낌이 좋지 않았다.
누구도 인권을 ‘행사’해야만 보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성적자기결정권은 침해받지 않아야 할 권리이지,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만약 그것이 위력에 대응할 만한 어떤 권한이라면, 예를 들어 간음하려 드는 자를 ‘성적자기결정권’이라 새겨진 은장도로 찔러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 수준의 권한이라면 ‘왜 그때 행사하지 않고 이제와서 고발하느냐’는 조병구 씨의 질책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후 기자회견에서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분이 지적한 대로 ‘성적자기결정권이 있는 여성은 결코 강간당할 수 없다’는 기적의 논리로 재판부는 안희정 성폭력 사건을 판단했다. 아니,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를 재판했다.
재판부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유리한 증언 증거를 전면에 내세우고 피해자 측의 증언 증거는 일제히 배격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판결문과 실제 방청하며 보고 느낀 점을 비교해 보겠지만 일단 가장 황당한 몇 가지만 보자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권력 깎아주기: ‘아무리 차기 대권주자라 하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의 결과는 알 수 없으니까’라며 재판부가 안희정의 권력과 위세를 아주 싼값에 후려친다.
위력은 행사될 때만 존재한다? : 안희정이 권력을 가진 것도 맞고 피고용인인 피해자와의 사이에 위력이 존재했던 것은 맞지만 평소 나이어린 참모들과 맞담배도 피우던 친절한 ‘보쓰’가 위력을 행사했다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며 위력을 마치 장전해야만 쓸 수 있는 총처럼 묘사한다.
결국 쟁점은 피해자의 저항 : 피해자가 진술한 ‘아닌 것 같아요’와 뒷걸음질, 시선 회피 등을 피고인 안희정에겐 거절의사로 느껴지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여성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저항하지 않으면 YES로 받아들이는 대한민국 사법부 답다.
비동의간음죄 신설하라고 입법부 가서 항의하든지. : 형법 303조를 사문화 시키며 책임을 입법부에 넘기는 사법부의 무책임함.
선고문 낭독이 후반에 치닫자,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성단체의 활동가 분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약 20여분 간, 여성 인권은 65년 쯤 후퇴시킨 뒤 선고는 끝났다.
안희정은, 무죄였다.
정말 해도해도 너무 한다.
울음섞인 목소리로 누군가 외쳤다.
정말 그랬다. 정말이지 해도해도 너무했다. 여기저기서 재판부와 안희정 측을 비난하는 고함이 터져나왔다. 한편 안희정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표하는 이들의 환성도 섞였다.
나는 아무말도 못했다. 뭐라도, 비명이라도 질렀어야 하는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변호인단과 함께 앉아있던 피해자가 법정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둥근 뿔테 안경이 너무 크고 무거워 보일만큼 여윈 얼굴이, 그 담담한 표정이 잠시 내 시야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꺼두었던 휴대폰을 켜자, 결과를 기다리던 다른 연대자들이 무죄소식에 황망해 하며 띄운 메시지들이 보였다. 나는 ‘비동의 간음죄 인정받으려면 입법부 가래요’ 라고 답했다. 엄연히 형법 303조 ‘위력에 의한 간음’에 대한 처벌 조항이 존재하고 판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증언 증거는 모조리 묵살한 주제에 겨우 덧붙인 변명이 ‘조국의 법이 보잘것 없어 처벌 못한다’라니.
정말이지 해도해도 너무했다.
아니, 이 국가에 여성의 자리는 없다.
나는 다시 연대자 분들과 함께 거리에서 피켓을 들었다. 3월 5일 고발부터 5개월, 피해자에겐 첫 피해부터 1년... 그 끝에 1심 재판부가 내놓은 무죄 선고는 뭐랄까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 더 현실적이었다. 이게 대한민국이지, 이게 헬조선의 맛이지 싶은, 뭐 그런 기분.
이 나라 사법부에 여성의 자리는 없었고, 우리에게 허락된 자리는 다시 거리였다. 공대위 주최의 기자회견에서 피해자 김지은 씨의 입장문이 대독 되었다.
제가 굳건히 살고 살아서, 안희정의 범죄 행위를 법적으로 증명할 것입니다.
권력자의 권력형 성폭력이 법에 의해 정당하게 심판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굳건히 살고 살아서’... 그 말은 너무 아팠다.
법이 지켜주지 않은, 법이 자리를 내어주지 않아 내몰린 여성들은 이제 ‘생존’ 자체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날 저녁에 또 나는 서부지법으로 향했다. 막바지 폭염이 기승이던 저녁에 우리는 인도에 다닥다닥 붙어앉아 확인했다. 서로 닮은 분노, 닮은 슬픔... 그리고 닮은 다짐들.
문화제 형식을 취한 긴급 집회에 공연자로 나온 ‘생각많은 둘째언니’가 반주보다 큰 목소리로 우리의 마음같은 노래를 불렀다.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죽임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굶어죽지도 않고 굶기지도 않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장혜영 노래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