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발레 이야기-03
오늘 정말 힘들었다.
취미발레를 시작한 지 5개월 차.
겨우 비기너반을 벗어나 레벨0.5(친구들이 레벨1도 아니고 0.5냐고 비웃었다)를 듣는 내가, 한 손으로 바를 잡고 느릿느릿 동작 몇 가지를 했을 뿐인데도 수업시작 20분만에 눈사람 녹는 수준으로 땀을 뚝뚝 흘렸다. ‘이러다 쓰러지면 어쩌지?’ 걱정까지 들었지만 당연하게도 건강(건장)한 내 몸뚱이는 오늘도 쓰러지지 않았다.
솔직히 발레는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일단 운동이다.
발레에서 가만히 서 있는다는 건....
등을 세우고 가슴을 펴고 어깨에 힘을 뺀다. 그리고 꼬리뼈는 넣고 엉덩이와 등은 일직선이 되도록 하며 배꼽은 끌어올리고 갈비뼈는 모으고 날개뼈도 모은 다음 목도 꺾이지 않도록 바로 서게 세운 다음 턱은 살짝만 들고 어깨와는 어느 방향으로든 공기주머니를 찬 듯 간격을 유지해야한다. 최대한 정수리에 실을 매달고 위로 당기듯이, 신체의 무게중심도 최대한 위로, 위로, 위로.
꼬리뼈라니, 가끔 골절 때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진화의 흔적을 발레 하면서 새삼 찾게 됐다.
물론 가장 황당한 주문은 ‘갈비뼈를 모으라’는 거지만 그것도 어째저째 숨을 크게 내 쉬면 폐가 쪼그라 들면서 갈비뼈가 모아지는 듯하다는 걸 배워가는 중이다.
아참, 숨은 등으로 쉬란다. (네?)
일단 이렇게 풀업자세를 흉내내며 가만히 서 있는 것 만으로도 나같은 초보는 땀이 맺힌다.
이렇게 상체는 고정하고 팔을 뻗고, 다리를 차고 올리는 동작을 하려니 힘들지 않겠나. 게다가 허벅지 안쪽 근육처럼 나같은 운동 기피자에겐 퇴화한 근육들을 새삼 찾아 깨우고 일 시켜야 하니... 제자리에 서 있는데도 절로 숨이 찬다.
흐르는 음악은 우아하나 따라가는 내 몸은 꽥꽥 비명을 지른다.
발레는 예술이지만 그 경지에 닿을리 없는 나 같은 보통 사람들에겐 아주 좋은 근력 운동이다.
그런데 처음 발레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다양한 반응 중 압도적인 건 이거였다.
발레하면 살 많이 빠져요?
수영을 하든 요가를 하든 PT를 하든 무슨 운동이든 여자들이 시작하면 대부분 이런 반응이다. (당연하지만 남성보다 여성들이 저 질문을 더 많이 한다)
마치 여성의 운동은 다이어트나 몸매 다듬기가 최우선 목표라는 듯이 말이다.
이러한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하듯, 학원도 트레이너들도 이런 점을 강조하려 한다.
예전에 수영을 배울 때 (물 공포증 극복 못해서 망함) 선생님도 그랬다. “거꾸로 발차기 연습 많이 하면 힙업이 된다니까요~” 라고.
무슨 운동을 하든 강사들로부터 언제나 ‘이걸 하면 여기 살이 빠지고, 여기 라인이 예뻐지고’ 같은 TMI(안물안궁) 공격이 쏟아져 외모강박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여성들은 괴롭다. 운동하러 갔다가 저런 말을 듣고 열의가 짜게 식었다는 사람들도 있다. 아예 시작 전에 ‘나는 다이어트가 아닌 근육을 키우고 건강해지기 위해 운동하니까 외모 관련 언급은 자제해 달라’는 경고 아닌 경고까지 한다는데 보통은 그 말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취미발레는 수강생 전원이 여성이지만 선생님들이 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이거 하면 팔 라인 예뻐진다” “허벅지 안쪽에 살빠진다” “이거 하면 애플힙이 된다”... 이런 소리를 안 한다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게, 발레 전공자인 선생님들이 그렇게 교육받아본 적이 없을 것 아닌가. 수업은 기술(동작) 설명과 그걸 익히기 위해 갖춰야할 자세, 근육에 대한 설명으로 짜여져 있을 뿐이다.
나는 그 점이 아주 마음에 든다.
물론 최근에 연예인 누구의 몸매관리 비법이라며 취미발레가 언급되고 발레핏이라는 또다른 피트니스 장르가 생길 정도이니, 다른 수강생들의 목적은 나도 잘 모르겠다. (발레 학원들도 #다이어트 를 광고에 넣는다) 다만 수업 동안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지금 소모되는 칼로리’를 계산할만큼의 여유는 조금도 없으며 선생님에게 ‘승마살 빼는 법’보다 ‘파세 동작에서 안 넘어지는 법’을 더 묻고 싶어하는 건 분명하다.
발레... 진짜, 힘든 운동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