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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 SEO Nov 11. 2019

자본주의 맛 블랙 코미디 [뮤지컬 스위니 토드]

좁고 얕은 덕질기-3

피가 1열까지 촤악 튀었다니까요!


2007년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한국 초연을 봤던 덕질 메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덕메는 내년이면 20주년을 맞이하는 [뮤지컬 베르테르]의 초연을 봤을 만큼 내력 있는 뮤덕인 데다가 작곡가 손드하임의 팬이라 그가 애정 하는 극이라면 믿고 보고 싶었다. 영화든 소설이든 피 튀기는 건 전혀 취향은 아니지만 무대 위에서는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그 극에 내가 가장 애정 하는 ‘그 배우’가 나온다는 것이었지만.


해외에서도 처음 이 공연이 올랐을 때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 때 관객 절반이 집에 가버렸다니, 그만큼 기괴하고 불쾌한 극 [뮤지컬 스위니 토드].  

그래서 극장에 가기 전 ‘티켓값을 생각해서 보다가 뛰쳐나가지만 말자.’ 하고 마음을 다 잡았는데 막상 보니 이 극은 그다지 기괴하지도 불쾌하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어루만진 순한 맛 [스위니 토드]였다.




#자첫 2019년 10월 4일 8시 공연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배경은 19세기 영국 런던이다.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런던에서는 기계에 겨우 손이 닿는 아이들조차 공장으로 보내져 시간제한 없는 노동을 했고 독소로 가득한 공장에서 소리 없이 노동자들이 죽어갔다. 기계보다 사람 목숨 값이 싸던 그런 시절에 인간의 마음에 윤리나 동정심이 깃들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한 욕심일지 모른다.


여기 위대하신 인류의 역사엔
딱 두 종류의 인간뿐이네
하난 똥이나 처먹고 사는 놈
아님 남한테 똥을 처먹이는 놈
우릴 봐 우리 꼬라지를 봐

그래 다 죽어야 해
당신도 이런 나도 똑같아
추잡한 쓰레긴 꺼져 줘야 좋고!
우린 뒈져야 삶이 편안하고!

죄다 죽어야 해

-1막 Epiphany


이런 시대에 스위니 토드라는 이름의 이발사가 있다. 한 때는 평범한 이발사(아니, ‘칼을 든 진짜 예술가’) 였던 그는 자신의 아내 루시를 노린 터핀 판사의 음모로 국외로 추방당하고 바다 한가운데 던져졌다가 (탈출을 위해 뛰어든 건지도?) 선량한 선원 안소니에게 구조되어 15년 만에 고향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아내 루시는 터핀에게 강간당한 뒤 독약을 마셨고 딸 조안나는 터핀의 수양딸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웃에게 전해 듣고 토드는 복수를 결심한다.

그가 복수해야 할 대상은 터핀 판사나 그의 조수만이 아니다. 루시가 강간을 당할 때 구해주기는커녕 조롱하고 구경했던 세상 사람들, 토드에겐 모든 인류가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할 ‘적’이다. 처음에는 우발적 살인 그러나 점차 확신범이 되어 그는 이발소를 찾아온 손님들을 살해한다.


2019 [뮤지컬 스위니 토드] 토드 역 조승우 배우


토드의 살인 행각에는 동반자가 있다.

바로 건물주, 넬리 러빗.

아직 지대가 상승하기 전이었을까, 건물주이긴 하지만 러빗은 곰팡이 핀 파이나 팔면서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런던의 하층민이다. 러빗은 15년 만에 런던으로 돌아온 토드의 정체를 숨겨주고 생계의 방편이 될 면도칼까지 내어준다. 게다가 첫 살인 후 시체 처리를 고민하는 토드에게 기막힌 제안을 해 그의 살인 행각을 돕게 된다.


러빗: 너무 아까워
아니 고깃값이 욕 나오게 비싸잖아
삘이 왔나? 삘이 왔네
잘 들어요
무니 부인 파이 알죠
고양이 좀 넣고 장사 완전 대박 났는데
한 마리당 고작 파이 일곱 개쯤 나온대
그럼 우린 차원이 다르겠네

토드: 러빗 부인 정말 깜찍하고
혁신적인 발상 합리적인 상상
역시 당신
지난 세월 당신 없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1막 A Little priest


그러니까 2층 이발소에서는 이발사가 살인을 하고 1층 파이 가게에서는 제빵사가 그 시체로 파이를 굽는 것이다.


미용업계와 요식업계가 만나서
세상의 쓰레기를 식량으로 승화시키는...
뭐랄까, 우리의 되게 멋진... 콜라보레이션?


토드가 비장하게 세상을 힐난하고 복수를 다짐할 때마다 러빗은 가볍게 그의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이봐, 정신 차려’하며 토드를 한없이 하찮게 만든다. ‘복수’를 테마로 한 극들은 대부분 남성 주인공이 겪은 비극에 공감하고 그가 수행하는 복수의 진퇴에 따라 극의 긴장감을 조율하는 것에 비해 [스위니 토드]는 그 비장한 복수조차 풍자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러빗은 벤자민 바커가 추방당한 죄목을 ‘어리석음’이라고 말한다. 바커의 아내 루시 역시 마찬가지.

천진과 순진, 선량과 친절은 [스위니 토드]의 세계에서 곧 ‘어리석음’의 죄가 된다. 당연히 ‘순수한 복수심’ 같이 이상을 좇는 토드는 조롱당할 수밖에 없는 세상인 셈이다.


2019년 [뮤지컬 스위니 토드] 러빗 부인 역 린아, 김지현, 옥주현 배우

러빗은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다.

생활고 속에서도 은으로 세공한 면도칼 세트를 팔지 않고 간직할 만큼 낭만적이고 학대받는 아이를 보듬어 주는 인정도 있다. 토드는 오로지 복수에 몰두하여 살아있는 자신의 딸 조안나를 만나거나 구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데 반해 (심지어 복수에 이용하기까지... 토드 씨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 소극적이나마 딸 조안나를 돕는 사람 역시 러빗이다. (조안나는 결국 스스로 구원한다. 화이팅 조안나!)

하지만 그는 애착 관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죽든지 말든지 관심 없고 도리어 시신의 주머니를 털고 인육 파이로 만들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눈 앞의 골칫거리(시신 처리와 생활고)부터 해결하자는 잔혹한 현실주의자. 또 나름 미래 계획도 있어서 사랑하는 토드 씨와 함께 바닷가 집에서 민박이나 하며 사는 내일을 꿈꾼다.


러빗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고 욕망도 훨씬 다층적이고 성격도 입체적이다. 스위니 토드와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다. 주인공은 스위니 토드지만 이 극을 실제로 끌고 나가는 인물은 넬리 러빗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러빗 부인은 물론 조안나까지, 여성 캐릭터들만 봐도 이 극을 보는 즐거움은 충분하다.

‘브로드웨이 사상 가장 혁신적인 작곡가’라는 수식어답게 손드하임의 음악은 아름답고 자신의 욕망에게 골몰하는 등장인물들이 만드는 불협화음도 관객을 밀어내는 듯 끌어당긴다.

게다가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그 배우’는 이 극에서도 여전히 교과서처럼 완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니 토드]는 내게는 보고 또 보고 싶은 극은 아니다. (물론 개막하고 약 40일쯤 지난 시점에서 이미 4번 봤지만..;;) 

뭐랄까, 지루하다.


아무리 무대가 화려해지고 조명이 환상적이라고 해도 살인이 나고 피가 튀어도 (사실 별로 안 튀고 너무 깔끔함) 예고 없이 터지는 금속음에 옆사람이 놀라 의자가 들썩여도 극은 어딘지 느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처음에는 폭주하는 스위니 토드의 분노를 쫓아가야 할 것 같은데 터핀 판사의 자위 쇼도 봐야 하고 젊은 연인들의 불협화음도 들어야 하고, 오버액션을 해서 더욱 지루한 피델리 신을 견뎌야 하는 등, 잔가지들이 너무 많아서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해외 [스위니 토드] 영상과 2007년 한국 초연 영상을 찾아보면서 그 지루함의 원인이 어쩌면 ‘자본주의의 맛’이 아닐까, 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맥락이 제거된 블랙.... ‘코미디’,
흉내 낸 가난의 한없는 가벼움,
상징성을 잃은 폐공장 콘셉트 무대,
시야 제한에도 좌석 값 13만 원....


남아 있는 한국 초연 영상 가운데 한 시상식의 축하공연이 있다. 대표 넘버인 The ballad of sweeney todd 를 부르는데 앙상블 배우들은 셔츠에 재킷, 당시 노동계급의 차림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마치 방직공장의 노동자들처럼 재킷을 줄에 걸고 옷은 곡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상승해 허공에 걸린다.

앞서 [스위니 토드]의 배경이 산업혁명 시기의 런던이라고 했는데 이러한 맥락이 초연에는 고스란히 살아있었으리라 짐작했다.

전막을 볼 수 없어서 다른 연출 디테일은 알 수 없지만 A little priest 넘버는 광기가 훨씬 강하다는 느낌.



하지만 2019년 [스위니 토드]는 시대적 맥락을 찾기 힘들다.

앙상블 배우들은 노동계급의 복장이라기보다는 마치 할로윈 날 이태원에서 볼 법한 잘 만든 넝마를 입고 예술적인 메이크업을 하고 무대 위에 서 있다. 그들은 굳이 잘 봐주면 ‘도시 빈민’으로 볼 수 있겠지만 노동을 한다는 단서는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이건 굳이 단점으로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주역 남녀 배우들 모두 너무 젊고 미인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광기는 덜 불편하고 스위니를 향한 러빗부인의 욕망도 이해 가능하고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그저 사랑스럽다.


자본주의의 인간 소외를 은유한 잔혹극이 2019년  대한민국에서 이렇듯 광기와 불쾌한 맥락이 제거된 채로 ‘코미디’로 남아 흥행을 이어나간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자본주의적이라 좀 재밌긴 하다.


옷이 참 예쁘긴 예쁩니다만.


또 마음에 안 드는 건 무대.

폐공장 무대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또 지나치게 활용도가 낮다. 개막 전 무대 디자이너의 인터뷰에 따르면 3층 구조의 무대는 곧 계급의 상징이라고 했다. 그래서 터핀 판사는 가장 높은 3층에서 등장할 것이라고. 그러나 극 중에서 터핀은 1층에서 등장하거나 추가 계단이 우측에 설치되어 이 곳으로 오르거나 내려간다. 3층은 정신병원에 갇힌 조안나의 자리다.

물론 실제 공연장에 무대를 설치하고 운용하는 도중에 의도대로 구현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겠지. 다만 돈 들여 지은 3층 구조가 아무런 상징성도 갖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아니, 잠깐! 근데 무대는 진짜 생각 없이 지은 것 같긴 하다. (생각해보니 화남)

우측에 치우쳐 설치된 파이 가게의 화로(*무척 중요한 장치)는 좌석에 따라 스피커에 가려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시야제한석이라고 명시되지 않은, 그것도 R석(*주말가 13만 원, 평일가 12만 원)에서 이런 시야 방해가 발생하도록 무대를 설치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다. 좌측 좌석으로 가면 스피커에 가려서 터핀 판사 집의 문(이라기보다는 기둥인데.. 어쨌든 열쇠 꽂는 곳)이 안 보이고, 2층 뒷자리로 가면 천장에 반달형 철제 구조물 때문에 또 많은 것이 안 보인다.  내가 대극장 뮤지컬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1층부터 3층까지 좌석을 꽤 골고루 잡는 편인데 이 정도로 어이없는 시야 방해는 처음이었다. 제작사, 양심 좀 챙깁시다, 네?




뭐 구구절절 욕 쓰긴 했지만 출연 배우들이 모두 출중하고 극을 이끌고 가는 여성 캐릭터가 있고 (세 배우 모두 훌륭하니 아무나 보세요! 두 번 보세요!) 과연 손드하임의 음악은 너무 환상적이므로 보면 좋은 극이긴 하다.

그리고 사실 자본주의의 맛, 저도 좋아합니다. 그래서 대극장 뮤지컬 위주로 돌거든요. 부내나는 무대, 오케스트라 정말 좋아해요...


근데 이번 시즌에 딱히 챙겨보는 ‘내 배우’가 없거나 표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면... 워낙 잘 팔린 극이라 한 두해 기다리면 또 돌아올 테니 안 봐도 아쉽지는 않을 것 같은 극, [뮤지컬 스위니 토드]였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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