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I SEO Feb 23. 2020

언젠가 찾게 될 거야, 또 다른 나 뮤지컬 [아이다]

지금 아니면 영영 후기를 못 쓸 것 같다는 불안감에,

뮤지컬 [아이다] 그랜드 피날레의 서울 막공을 앞두고 급하게 일단 써둔다.


오늘, 그러니까 서울 공연 (이후에 부산 공연이 예정되어 있음. 보세요!!! 꼭!!!) 의 마지막 공연 날, 낮공인 세미막을 보고 완전 대레전을 만났다.

그리고 아주 훌륭한 공연으로 마무리를 해 준 배우들 덕분에 내 안에 아이다 서사가 완성됐다.


나는 뮤지컬 [시라노]도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삼각관계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아름답지만 서툰 세 사람이 서로 엇갈리고 아파하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그런 삼각관계.

아이다, 라다메스, 암네리스.

극 중에서 그들의 나이는 10대라고 한다. 그들은 마치 콩나물 자라는 걸 미속으로 찍어둔 것처럼 극 중에서 쑥쑥 키가 자라는 것이 보인다.


아이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의 공주님. 아이다는 라다메스나 암네리스에 비해 비교적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자랐으며 스스로에게도 남들에게도 거짓말 하지 않고 솔직하고 자유롭게 살았다.

그래서 그녀는 ‘또 다른 나’를 찾지 못해 자신의 사회적 자아에 어쩔 수 없는 위화감을 안고 살아가는 라다메스와 암네리스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암네리스는 말한다.

“사람들은 여신을 원하는데 난..”

아이다가 대답한다.

“인간이죠.”

아이다는 그렇게 암네리스의 내면에 쌓이는 쓸쓸함을 닦아 그 안에 빛나는 진짜 암네리스를, 선량하고 솔직하며 정의로운 사람이 드러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암네리스는 그러한 성장을 거쳐서 신이 된다.

암네리스는 아이다와 라다메스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의 비극에 누구보다 마음 아파했고 그 비극을 만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신이 된다. 아이다와 라다메스에게 신은 잔혹한 운명의 다른 말이었지만 암네리스라는 신은 누구보다 인간을 가엾게 여기고 긴 세월 공들여 그들을 보살핀다.


그런 암네리스의 성장과 대비되는 아이다의 길.

누구보다 자유롭게 자라온 그녀는 타국에 노예로 끌려온 백성들에게 ‘신’이 되기를 요구받는다.

라다메스와의 사랑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성장을 마주한 그 때, 백성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상징이 되기를 요구받는 아이다.


어쩌면 암네리스와 아이다에 비해서 라다메스의 성장은 가벼울지도 모르겠다.

그는 정복자로 자랐지만 아이다를 만나고 자신은 더 먼 곳에서 더 자유롭고 싶었을 뿐, 지배자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라고 깨닫는다. 그에게 부모는 부드러운 애정의 족쇄가 아니라 애초에 끊어내고 싶은 사슬이었을 뿐.

그가 암네나 아이다에 비해 사랑 앞에서 더 저돌적인 이유도 그 뿐일지 모른다.

또 다른 자신을 일깨워주었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한 방법이 오직 사랑 밖에 없었으니까.


아이다도 암네리스도 라다메스도...

그렇게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가 충돌하며 점점 성장해 간다.

그걸 지켜보는 게 너무 사랑스러워서 이 극을 애정하게 된 것 같아. 시라노가 그러했듯.


윽 벌써 밤공 갈 시간이라.. 사진은 나중에 수정하는 걸로 하고.

아.. 아이다 어떻게 보내지. 벌써부터 눈물이 나네....




매거진의 이전글 2019 관극 연말 정산 -0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