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6월 관극 정산
총 11회 관극, 5개 작품
-뮤지컬 [리지]
사랑해, 리지. 다음에 올 때는 트리플 캐스팅으로 와. 배우들의 성대는 소중하고 나는 더 많은 여배들이 도끼를 들고 피칠갑하고 돌아버리는 걸 보고 싶으니까.
-뮤지컬 [스웨그에이지-외쳐 조선]
서사나 설정이 납득되지 않는다는 평도 있었지만 넘버도 좋고 배우들이 그렇게 신나서 열심히 한다기에 보러 갔다가 약간 졸고 우울한 상태로 나왔다. 첫 넘버 생각보다 웅장하고 비장미 있었고 양반 놀음은 기대만큼 재밌었고 배우들 정말 열일하는 극은 맞는데... 여긴 내가 노는 물이 아닌가 보다, 했음. 아니 무엇보다 서민들에게 '시조'를 빼앗는다는 게 과연 언론의 자유를 빼앗긴 것만큼의 큰 일일지... 여기서 턱 걸려버리니 그 이후 전개에 몰입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자유와 저항을 이야기하더니 단이에겐 출생의 비밀이 있다는 것도 당황스러웠다.(물론 충분히 예상 가능했지만) 꼭 단이의 부모가 (스포)여야만 단이가 가치가 있는 건 아니잖아. 진이의 배경에 맞춘 건지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골빈당도 계급을 이탈한 양반들이 수뇌부를 장악하고 정작 서민들은 추종자가 되는건가. 뭐 나름 현실 반영이라면 반영일 수 있겠네. 역시 우리나라는 운동권들도 출신성분 너무 따진다. 그리고 골빈당과 조정 대신들(진이 애비)을 청년층과 기득권층의 대립으로 만들어줬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보수적이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이던 기득권층이 알고 보니 그 시대의 도덕조차 지키지 않는 가짜 보수, 가짜 선비였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신과 구'가 아닌 그저 그런 '선과 악'의 진부한 대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뮤지컬 [차미]
어둡고 침침한 극을 회전하다가 만난 밝고 귀여운 청춘 성장극. 그래서 상당히 낯가림했는데 넘버가 너무 상큼하니 좋은 데다가 여기도 배우들이 열일하고 무엇보다 내 애배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연극 [렁스]
재밌음. 연극 시놉이나 홍보는 마치 환경문제에 대한 극 같은데.. 물론 환경문제가 안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메인이라기보다는 어쨌든 사람과 관계 맺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6월에도 한 번 더 봤는데 두 번 다 곽선영 성두섭 페어로 봄.
인생의 마디마다 배우들은 신을 벗어 마치 걷듯이 엇갈려 무대 가장자리에 줄지어 놓고 새 신을 신는다. 탄소 발자국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마치 그들이 선택하지 않거나 선택할 수 없었던 다른 인생을 평행 우주 속 그들이 계속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 좋아하고 찡했던 장면은 여자가 침묵에 잠겨서 홀로 긴 무대 위를 걸을 때, 남자가 답 없는 인사를 건네는 장면. 가까이 있지만 지독히도 외롭고, 침묵하고 우울에 갇힌 듯한 여자가 가장 부지런히 길을 찾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으며, ‘해가 떴어, 다시 졌어’ 하고 말하는 남자가 같은 공간에서 여자와 다른 시간을 헤아리고 있다는 게 쓸쓸했다. 정말 재밌는 극이라 두 번밖에 못 본 게 아쉬운 극. [마우스피스] 도 보러 가야지.
-뮤지컬 [미드나잇-액터뮤지션]
[미드나잇-앤틀러스]를 너무 재밌게 봐서 초연 버전인 액터 뮤지션을 보러 감. 앤틀보다 훨씬 건조해진 우먼-맨의 관계, 더 강력해진 액터 뮤지션, 앤틀보다 세트는 상징적이지만 오히려 친절한 서사. 재밌었다. 앤틀에는 없던 '대령님'넘버에서 비지터의 악마성이랄까, 아니 어쩌면 우먼이 숨기려 했던 우먼 안의 폭력과 잔인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해서 좋았고.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나름 앤틀에서 '아 이건 이런 이야기구나. 비지터의 정체는 이거구나' 했던 것이 다시 와르르 무너져서 그냥 뭔지 모르지만 되게 재밌는 극이 되어버렸다.
총 8회 관극 6개 작품
-뮤지컬 [차미]
이봄소리와 유주혜 두 배우, 나랑 자주 만납시다. 너무 좋으니까.
-연극 [렁스]
앞에 썼음
-뮤지컬 [리지]
6월 7일 밤공으로 일찍 자막함. 총 12회 봤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무르익어가는 리지역 배우들의 감정, 두 브리짓의 노선 차이와 저마다의 매력, 엠마 역 배우들의 소소한 디테일에 푹 빠졌는데, 무엇보다 이 극은 결국은 앨리스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앨리스는 왜 그때 그렇게 반응했을까, 앨리스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앨리스는 왜 웃지, 왜 당황하지, 왜 왜?
지난번 긴 후기에 썼던 욕망하는 앨리스, 는 최수진 앨리스의 5월 중순 정도까지의 노선이었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재판 씬에서의 디테일이 달라져서 전체적인 극의 분위기나 결론도 바뀌는 것 같았다.
3월에 가열차게 돌았던 여배투탑극 [마리 퀴리]도 5개월 만에 돌아오는데 [리지]도 최대한 빨리 돌아오길. 그만하면 표도 잘 팔았는데 금방 돌아오겠지.
-뮤지컬 [렌트]
긴 후기를 곧 한 번 써보겠음. 열두 번 보면 '렌트 헤즈' 배지 준다기에.. 에이 그래도 대극장 극을 어떻게 12번을 봐, 했는데 현재 도장판을 거의 다 채워가고 있다. 하아, 망했어요. 극도 재밌고 넘버 너무 좋은데 무엇보다 에너지가 넘치는 극이라 자꾸 무대 가까이 가고 싶어 진다. 대극장 극은 2층, 3층에서도 잘 보는 편인데 렌트는 배우와 아이컨텍이 될 정도 거리에서 볼 때, 가장 몰입이 잘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극인 듯. 그래서 사실 대극장인 게 좀 아쉬워. 소극장에서 복닥복닥 하면서 같이 마음으로나마 놀고 싶은데. 가까이 앉을수록 지갑이 서럽고, 멀리 앉을수록 마음이 멀어지고 뭐 그런 극.
전 캐릭터, 전 배우가 모두 사랑이고 내 스케줄 맞춰서 봐서 딱히 캐스트를 가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최애 페어를 뽑는다면 장지후-아이비-정원영-전나영-최재림-김호영 으로. 아이비 미미는 정말... 그를 보고 있으면 리지 넘버가 떠오른다. '거칠고 아름다워.'
-연극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께]
여기 있었네, 신구의 갈등과 대립. 초반에 랼랴의 말에 거의 설득될 뻔했지만, 결국은 엘레나 선생님은 열쇠라는 상징을 지키고 싶었던 게 아니라 열쇠로부터 학생들을 지키고 싶어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엘레나의 원칙에 손을 들어주게 됐다. 역시 나는 부정할 수 없이,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모양이다. 물론 문이 닫히는 순간 '신세대'들이 범죄의 영역에 들어가는 행동들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극도 더 보고 긴 후기를 쓰고 싶은... 아주 매력적인 텍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