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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수파 Oct 30. 2019

무엇이 작가를 작가로 만드는가

<더 와이프> 2017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평화로운 해변 마을, 금슬 좋은 부부, 무탈하게 자란 자식들, 거기다 노벨문학상 수상까지. '조앤(글렌 클로즈)'과 '조셉(조나단 프라이스)'의 삶은 겉으론 더없이 완벽해보인다. 영화가 전기작가 '나다니엘(크리스찬 슬레이터)'을 통해 두 부부의 비밀을 낱낱이 파헤치기 전까진 말이다. 하긴, "우리 모두 망가져있지 않냐"는 그의 말마따나 세상에 완벽한 인생이 어디있을까.


<더 와이프>는 평생 남편의 그늘에서 살아온 여자와, 아내의 재능을 빼앗아 대작가로 살아온 남자의 이야기다. 직종을 화가로 바꾸면 팀 버튼 감독의 <빅 아이즈>와 흡사한 이야기다. 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가 명확했던 <빅 아이즈>와 달리, <더 와이프>에서 두 주인공의 관계는 훨씬 더 복잡미묘하다. 조앤이 "난 그냥 피해자가 아니에요. 그보다 더 흥미로운 인간이죠."라 말했던 것처럼.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던 조앤은 여느 청년들처럼 작가로 성공하기를 꿈꿨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한 여성 작가는 꿈깨라는 듯 일침을 던진다. "글쓰는 건 관둬요. 평론을 써주고, 출판해주고, 잡지에 실어주고, 어느 작가를 밀어줄지 결정하는 건 모두 남자들이에요. 그들은 당신에게 관심도 주지 않을 겁니다." 과연 그 말은 일리가 있었다. 조앤이 비서로 일한 출판사 사무실에선 작품의 완성도가 아니라 작가의 인종, 성별, 조건에 따라 글을 선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조앤은 때마침 사랑에 빠져있었다. 결국 그는 명성을 욕망하는 조셉을 붙잡아두기 위해, 자신의 작품을 포기하는 선택을 내린다.



그러나 조앤의 글로 성공한 조셉은 이를 고마움보다 자괴감으로 받아들인다. 아내보다 재능이 없다는 사실에 뼈저린 컴플렉스를 느끼고는 "나를 무시하는거냐"며 윽박지르고, 틈만하면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피움으로써 관계의 우위를 점하려 한다. 이때 그가 여자를 꼬실 때마다 호두를 사용하는 건 여성을 일종의 도장깨기, 즉 깨고 부수는 정복의 대상으로 보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는 그렇게 해야 '나보다 재능있는 아내'를 견딜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 뿐 아니라 아들의 글쓰기 실력도 인정하려 하지 않으며,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을 조연으로 만든다.


과한 식욕과 성욕이 보여주듯 엄청난 욕망가인 조셉은 마지막까지도 딸뻘의 여자를 탐한다. 그러면서도 조앤으로 하여금 자신을 애처가로 이미지 메이킹해 줄 도구로 삼아버리자, 조앤은 폭발하고 만다. 하지만 그들의 갈등은 매번 딸의 출산 소식과 조셉의 심장병 등으로 순식간에 봉합된다. 이 장면은 왜 조앤이 그토록 긴 세월 동안 조셉을 떠나지 못했는지 단번에 보여준다. 그들은 부부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부모이고 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부부라는 연보다 훨씬 더 질기다.


'J에게 J가'라 적혀있는 시계가 암시하듯, 조앤과 조셉은 운명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들은 불륜, 그것도 선생과 제자 관계였고 그 때문에 조셉은 직장을 잃었다. 이때 헤어지자 말하는 조셉을 되돌려보내지 않았던 조앤은 본처와 그 자식에겐 가해자이기도 하다. 결국 직함과 가정을 가진 조셉을 욕망한 조앤은 은밀하게 감추고 있을 뿐, 조셉과 비슷한 인간이다. 닮은 사람끼리 만나고, 그래서 더 닮아지는게 부부니까. 무엇보다 조앤의 글을 조셉의 이름으로 내보내자고 먼저 제안한 건 그녀였다. 여성 작가가 경고한 출판계(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의 남성 카르텔이 견고함은 사실이었지만, 조앤은 그것과 싸우고 뚫고 넘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글이 읽혀져야 작가"라는 기성 작가에게 맞서, "작가는 글을 써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도 지키지 못했다. 결국 초라한 작가가 되기보다, 성공한 작가의 아내가 되기를 택한 건 그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이었다.



무엇보다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제와서 다른 길을 택한다해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것이다. 증명할 수 없는 자신의 진실을 믿어줄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죽은 남편 통수를 치는 꽃뱀 취급이나 받을게 뻔하다. 그럴 바에야 조앤은 이미 갖고 있는 것을 더 꽉 쥐기로 한다. 돌아갈 집, 승무원처럼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바라봐줄 대중, 그리고 소중한 가족들이 있는 삶을. 그렇게 그녀는 평생 품어온 자신의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털어놓는 데 만족한다. 이 영화의 제목이 '조앤'이 아닌 '더 와이프'인 이유다.


겉과 속이 다른 주인공 부부의 삶처럼, <더 와이프>는 겉보기와 달리 통쾌한 여성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끝내 자신의 작품을 지키지도, 작가의 정체성을 확립하지도 못하는 조앤의 모습은 여성의 '이상적인 성공담'보단 '현실적인 실패담'에 가깝다. “나는 그럴 만한 그릇이 못된다”던 그녀의 말마따나, 그녀는 작가보단 킹메이커에 맞는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상처받은 작가가 가장 무서운 법"이라던 그녀의 대사가 통쾌한 결말에 대한 복선이길 바랬건만..아쉽게만 다가오는 결말이다. (<메리 셸리><콜레트>와 이 영화의 결정적인 차이이기도 하다.) 거기다 딸은 임신을 하는 반면 아들은 재능있는 작가로 발돋움 하는 모습은 조앤과 조셉의 삶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이고, 조앤은 남편에 이어 아들의 킹메이커로 살아가리라는 예감이 들어 더욱 씁쓸하기 그지없다. 물론 <45년 후>처럼 복잡다단한 결혼과 부부 관계를 담아낸 점은 돋보이나, 여성영화로 보았을 땐 그리 이상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될 필요가 없다(No need to be anybody but oneself)’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러하다. 결국 무엇이 작가를 작가로 만드는가? <더 와이프>는 '재능' 이전에 '용기'라고 답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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