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따뜻한 위로보다 더 필요한, 나에게 하고 싶은 말

오늘 하루도 분명! 생각보다 더 재밌을 거예요.

by Maybe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로

나를 속일 때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이 말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나는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감정에 빠지는 것도, 스스로를 더 극적으로

몰아가는 것도,
내 타고난 본성, 기질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는 그저 나 자신에게 속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익숙함에 속아,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좋지 못한 습관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알게 된 이후, 모든 것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에 오기 전에는 그렇게 믿었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라면,
애써 보이고 싶은 모습이 있고,
남들이 보는 시선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그래서 남들이 생각하는 ‘괜찮은 나’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야 깨달았다.
더 이상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처음엔 외로웠다.

그러다 문득, 모든 것이 생경한 환경 속에서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지금껏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삶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내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들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처음으로 내 진짜 모습을 마주한 것 같았다.
나를 가득 채우던 불안과 초조함 대신,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밀려왔다.

그 감정을 담는 표현하는 단어를 찾아보자니-

아무래도 "충만"이라고 부르고 싶다.

쓸데없는 것들에 집착하며 살아왔다는 걸 깨달으면서,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동시에,
내 안에 무언가 단단하게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불안과 조급함이 빠져나간 자리에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힘이 들어왔다.

그때부터 내 목표는 달라졌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내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는 삶.
그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덜 감정적이고, 좀 더 냉정하게

내 문제를 받아들이는 훈련을 시작했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되,
휘둘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에게 해본 질문들.


1. 과연 좌절할 자격조차 있나?

당연히 나는 영어 공부를 하다가

여러 번 답답함, 갈증을 느꼈다.
나이 먹고 미국에 와서 사니깐,

아무래도 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순간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근데 너, 진짜 최선을 다해보고 좌절하는 건 맞아?"
좌절할 자격은 있냐고.

솔직히 말해봐.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힘들다고 포기하려는 거 아니야?


2. 오늘도 할 일을 미룬다고?

그럼 넌 분명 내일도 미룰걸!

"아, 피곤해. 오늘은 좀 쉴까?"
"그래, 피곤하면 넘겨도 되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점점 더 쉬워진다면?
"오늘 미룬 일을 네가 내일은 할 것 같아?"
솔직히 말해서, 안 할 거잖아.
넌 그냥 매일 미루는 삶을 살면서,
내일 더 큰 죄책감을 짊어질 거야.

그게 네가 선택한 패턴이야.


3. 내 맘에 들지 않는 결론을 바라봐야 할 때, 탓할 거리를 찾는다.

옷이 생각보다 안 어울리네?

->옷 디자인이 이상해.

널럴했던 옷이 왜 맞지 않지?

-> 드라이기가 낡아서 줄었나.
미국 나랑 정말 많이 안 맞네?

->남편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이게 웬 고생이야.

그래서 네가 우울하다고?
그게 진짜 남편 탓이야?
아니야, 넌 그냥 탓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야.

내 문제를 직시하고 싶지 않으니까.
가장 쉽고, 간단한 핑계가 필요했던 거야.

내 문제가 아닌 누군가의 문제로

넘겨버리고 싶은 거니까.


4. 매일 흥청망청 감정팔이를 하며

시간 보낼 때?

감정을 감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게 노력할 것..

때론 나 스스로를 토닥이는 시간도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매번 우는 아이에게 "괜찮아"라고만

할 수는 없다.
왜 우는지, 무엇이 불편한지,
그 생각과 감정에 반복적으로 잠겨버리는지.
그렇다고 이 감정에 휘둘리는 게

현재의 나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지.

한 번은 냉정하게 물어봐야 한다.
그저 감정에 매몰되어,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고 있는 건 아닌지.

정말 나는 그랬다.
외국에서 사는 게 인정하기 싫지만 외로웠다.

그런데 그 외로움이 없었다면, 난 나를 들여다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외로움은 나에게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덕분에 제대로 나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렇기에 앞으로 다양한 형태로 찾아올 외로움,

그리고 시련의 일부에도 이전만큼은 휘청이지 않을 것이다. 중심을 잡은 순간 파도의 물결에 좀 더 유연하게 바로 서는 법을 조금이나마 배웠달까.
무튼 나는 더 이상 보여주고픈 나로 사는 게 아니라,
진짜 나로, 나답게, 힘들어도 보고 일어나 보는 방법을,

내 페이스대로 훈련하게 되었다.
그중에! 감정에 쉽게 휩쓸리는 나를 다잡고,
문제를 좀 더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또 생각하는 연습을 했다.
누구보다 내 마음을 살뜰히 들여다보면서도,
무작정 위로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정확히 바라볼 때,

진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최근 본 글이 내 뼈를 때렸다.

이 글을 공유하며 마무리하고 싶다.



생각이 많은 이유는? 기록하지 않아서다.
불안한 이유는? 행동하지 않아서다.
미루는 이유는? 계획하지 않아서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훈련하지 않아서다.
명확하지 않은 이유는? 정리해보지 않아서다.
길을 잃은 것 같은 이유는?

자신의 목적을 찾아보지 않아서다.
인정을 바라는 이유는?

스스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벅차다고 느끼는 이유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에는 해결책이 있다.

용기만 있으면 가능하다.
첫걸음을 내딛을 용기만 있다면.




나도 용기를 내어본다.

오늘 하루도 분명

생각보다 더 재밌을 거라고,

매일매일, 즐겁게 살아볼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