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의 착각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너와 나를 헤아리고 싶은 마음에서
나는 어쩌면 선천적으로도, 후천적으로도
상대방의 감정을 살피는 일이
내 감정을 살피는 일보다 더
우선시 되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특히 내 안의 인정 욕구로 내 앞가림보다는 상대방의 만족을 더 우선시하게 되다 보니,
'헤아림'이 아닌, 일종의 '눈치 보기'가 되어버렸다.
이런 감정의 습관은, 마치 밥을 먹을 때
물 없이는 삼키기 힘든 것처럼
당연한 감정선의 흐름이 되어버렸고,
가족뿐 아니라 처음 본 누군가 앞에서도
그들의 표정과 눈빛, 어조에 따라 내 기분도 함께
흔들리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그걸 배려, 혹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라 착각했던 것이다.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라 과신한 것,
실은 그저 눈치를 보고,
상대의 감정선에 따라 민감한 관찰자가 된 것뿐이다.
거기에 상대에 따라선 그 감춰진 속마음을 바라보고,
배려라는 포장지를 내세워 그 민낯을 보기 어려울 땐 모르는 척,
때로는 덧대고 덧대듯 살았던 것이다.
특히 가족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내 마음속 해석은 더 쉽게 내 멋대로 굴절됐다.
어쩌면 상대의 의도와는 별개로,
상대의 마음을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미워하기도 했다.
'나는 배려했는데, 배려받지 못했다'는 오만감이 앞서는 날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조차 내 마음을 온전히 해석하지 못하는데 내가 감히 누군가의 마음을 정확히 읽을 수 있었을 리 없다.
그제야 깨닫는다.
내가 해온 행동은 진짜 '배려'도, '헤아림'도 아니었다는 것을. 어딘가 단추가 잘못 끼워진 채로,
나는 내 방식의 애정과 감정 처리 방식을
계속 어긋나게 표현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당신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그 조급한 속도를 내기 이전에,
가장 먼저 내 마음부터 차근히 들여다볼 심산이다.
내 마음에 콕 박혀 있는,
알 수 없는 모양의 뾰족한 돌멩이 하나 들고,
그 돌멩이가 어디에서,
언제부터 흘러 들어온 것인지부터.
내 안에 들어온 너의 순전한 그 마음들을 제멋대로 흐리게 만든 여러 작은 흙덩이를 말이다.
어떤 자책도, 원망도, 후회도, 연민도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내 감정을, 애써 예쁘게 꾸미려 하지 말고, 또 아닌 척 망설이지도 말고,
때로는 냉정할 정도로 객관적으로 솔직하게 바라봐주기도 해야 함을 모른 척 말아야지.
상대방의 마음을 쉽게 해석하려 들지 말고,
먼저 내 안의 흔들림을 가만히 살피는 일부터.
그럴 때야 비로소,
내가 전하는 '헤아림'이 어긋나지 않고,
온전하게 너에게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어딘가 나도 모르는 내 안의 구멍에서
바람이 줄줄 새고 있는 줄도 모르고,
텅 빈 마음으로 상대를 헤아린다는 건
애초에 순서가 어긋난 일임을 이제야 안다.
먼저 내 안에 온기를 불어넣고,
그 온기로 차분히 채워졌을 때에야 비로소,
누군가를 향한 진짜 '헤아림'을 할 자격을
비로소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나로서,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너를 너로서
온전히 인정하고 바라보는 마음의 시작.
그 시작부터가 진정한 헤아림임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