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먹는 것만 봐도

버나드 굿트만, <블랙퍼스트 룸>

by 다람

아이가 먹는 것만 봐도 엄마는 배가 부르다고 하죠.

진짜 그래요. 너무 행복하고 예뻐보여서 배가 고픈 것도 생각이 안 나 그렇기도 하지만 아이 먹이는 일이 보통이 아닌지라 진이 빠져서 먹는 걸 잊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처음 이유식을 먹이던 날을 기억합니다.

150일쯤 되었던 날이었어요. 평일에 시작해도 되지만 부러 주말로 시작일을 잡았습니다. 메뉴는 겨우 쌀미음이었죠. 쌀가루에 물을 넣고, 끓여서 채에 거르면 되는, 말도 안 되게 간단한 레시피였는데 아침부터 어찌나 부산을 떨었는지 모릅니다. 물이, 혹은 쌀가루가 1그램이라도 잘못 들어가면 어떻게 크게 잘못되나 보다 싶어서 전자저울로 재고 또 재고.


남편에게 동영상을 찍게 시키고 아이에게 턱받이를 해준 후 스푼으로 아이의 입에 미음을 떠 넣던 그 순간. 참 두근두근 했어요. 결혼하고 첫 끼니를 남편에게 해줄 때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두근거림이었어요. 잘 먹어줄까? 맛은 있을까? 아이가 닫혔던 입을 벌리고 미음을 머금고 있다 꿀떡 삼키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사처럼 튀어나오더군요.


"아유, 잘 먹네 우리 강아지!"


감격이었습니다.


그 뒤로 길고 긴 이유식 끝에 지금은 밥을 먹습니다. 야무지게 잘 먹는 날도 많지만 뱉어내고 손으로 파내고 고개를 휙 돌려버리는 날도 많아요. 아이의 끼니 앞에 서는 마음이 편할 날이 없죠.


BREAKFAST ROOM.jpg 버나드 구트만, <블랙퍼스트 룸>

아이가 밥을 먹네요. 맛이 없는 건지, 투정을 부리는 건지 아이의 표정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아마 엄마의 강압에 못 이겨 꾸역꾸역 떠 넣고 있는 것 같아요. 뭐가 불만인 걸까요. 식탁에 놓인 과일을 먼저 먹겠다고 떼를 쓰다 엄마에게 혼이 난 건 아닌지 싶기도 하고요. 그림 속 엄마는 등을 보이고 있어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왠지 상상이 가네요. 아마도 내가 매일 짓는 그 표정이 맞겠지요. 휴, 하는 한숨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요.

엄마는 자신의 식사도 앞에 두고 있지만 아이를 보느라 먹는 둥 마는 둥 합니다. 하여튼 엄마들이란 하나 같네요.


왜 이렇게 엄마들은 아이 먹는 것에 집착할까요. 하긴 저도 엄마와의 통화는 늘 "밥 먹었니?"로 시작되어 "잘 챙겨 먹어라"로 끝납니다. 먹는 게 중요하긴 하죠. 그런데 정말 막상 엄마가 되고 나니 그 이상으로 아이의 먹는 것에 신경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침을 제대로 안 먹은 날엔 점심 끼니때까지 그 걱정만 되어요. "아, 점심은 잘 먹어얄 텐데. " 그러다 점심까지 제대로 안 먹으면 엄마의 시름은 깊어지죠. 어디 아픈가 괜한 걱정도 하게 되고요. 우리도 입맛 없는 날이 있는 것처럼 아이도 그럴 텐데, 아이의 끼니 앞에선 대체 쿨해질 수가 없더라고요.


BURNARD GUTMAAN BABY ELIXABETH.jpg 버나드 구트만, <엘리자베스>


꼭 아까 그 아기의 더 어려서 모습 같죠? 야무지게 숟가락질을 하는 모습이 절로 엄마 미소를 짓게 하네요. 한 손엔 다른 먹거리를 꼭 쥐고 열심히 손을 놀려봅니다. 흘리는 게 반 먹는 게 반이겠지만 아이는 진지해 보여요. 엄마의 모습은 그려지지 않았지만 짐작할 수 있죠. 바로 앞에 서서 뿌듯하면서도 심란한 마음일 겁니다. "우리 아기가 언제 이렇게 컸나" 싶기도 하지만 바닥으로 식탁으로 옷으로 흘려대는 음식 때문에 한숨도 날 거예요. 네네, 알지요. 그 마음 저도 잘 압니다. 하루에 꼬박 세 번씩 경험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먹는 게 제일 예쁜 걸. 숟가락질할 때 너무 기특한 걸. 힘들어도 조금 귀찮아도 천사 같은 내 아이가 한 뼘 더 컸다는 뜻이니까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흘리지 않고, 턱받이도 하지 않고, 엄마 도움 없이 식탁에 앉아 혼자 먹는 그 날이 오면 '오늘'이 분명 그리울 테니까요.


BURNARD GUTMAAN.jpg 버나드 구트만, <아기>


그러니 아가야.

흘려도 좋고, 쏟아도 좋고, 뱉어도 좋아.

닦으면 되고, 담으면 되고, 주으면 되지.


그저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엄마는 충분해.


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정신없이 밥풀과 음식물이 떨어진 식탁 아래를 보면 자동으로 한숨이 나는 건 아직 어쩔 수가 없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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