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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am Jun 06. 2016

아이가 먹는 것만 봐도

버나드 굿트만, <블랙퍼스트 룸>

아이가 먹는 것만 봐도 엄마는 배가 부르다고 하죠.

진짜 그래요. 너무 행복하고 예뻐보여서 배가 고픈 것도 생각이 안 나 그렇기도 하지만 아이 먹이는 일이 보통이 아닌지라 진이 빠져서 먹는 걸 잊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처음 이유식을 먹이던 날을 기억합니다. 

150일쯤 되었던 날이었어요. 평일에 시작해도 되지만 부러 주말로 시작일을 잡았습니다. 메뉴는 겨우 쌀미음이었죠. 쌀가루에 물을 넣고, 끓여서 채에 거르면 되는, 말도 안 되게 간단한 레시피였는데 아침부터 어찌나 부산을 떨었는지 모릅니다. 물이, 혹은 쌀가루가 1그램이라도 잘못 들어가면 어떻게 크게 잘못되나 보다 싶어서 전자저울로 재고 또 재고. 


남편에게 동영상을 찍게 시키고 아이에게 턱받이를 해준 후 스푼으로 아이의 입에 미음을 떠 넣던 그 순간. 참 두근두근 했어요. 결혼하고 첫 끼니를 남편에게 해줄 때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두근거림이었어요. 잘 먹어줄까? 맛은 있을까? 아이가 닫혔던 입을 벌리고 미음을 머금고 있다 꿀떡 삼키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탄사처럼 튀어나오더군요. 


"아유, 잘 먹네 우리 강아지!"


감격이었습니다.


그 뒤로 길고 긴 이유식 끝에 지금은 밥을 먹습니다. 야무지게 잘 먹는 날도 많지만 뱉어내고 손으로 파내고 고개를 휙 돌려버리는 날도 많아요. 아이의 끼니 앞에 서는 마음이 편할 날이 없죠. 


버나드 구트만, <블랙퍼스트 룸>

아이가 밥을 먹네요. 맛이 없는 건지, 투정을 부리는 건지 아이의 표정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아마 엄마의 강압에 못 이겨 꾸역꾸역 떠 넣고 있는 것 같아요. 뭐가 불만인 걸까요. 식탁에 놓인 과일을 먼저 먹겠다고 떼를 쓰다 엄마에게 혼이 난 건 아닌지 싶기도 하고요. 그림 속 엄마는 등을 보이고 있어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왠지 상상이 가네요. 아마도 내가 매일 짓는 그 표정이 맞겠지요. 휴, 하는 한숨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요.

엄마는 자신의 식사도 앞에 두고 있지만 아이를 보느라 먹는 둥 마는 둥 합니다. 하여튼 엄마들이란 하나 같네요.


왜 이렇게 엄마들은 아이 먹는 것에 집착할까요. 하긴 저도 엄마와의 통화는 늘 "밥 먹었니?"로 시작되어 "잘 챙겨 먹어라"로 끝납니다. 먹는 게 중요하긴 하죠. 그런데 정말 막상 엄마가 되고 나니 그 이상으로 아이의 먹는 것에 신경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침을 제대로 안 먹은 날엔 점심 끼니때까지 그 걱정만 되어요. "아, 점심은 잘 먹어얄 텐데. " 그러다 점심까지 제대로 안 먹으면 엄마의 시름은 깊어지죠. 어디 아픈가 괜한 걱정도 하게 되고요. 우리도 입맛 없는 날이 있는 것처럼 아이도 그럴 텐데, 아이의 끼니 앞에선 대체 쿨해질 수가 없더라고요.


버나드 구트만, <엘리자베스>


꼭 아까 그 아기의 더 어려서 모습 같죠? 야무지게 숟가락질을 하는 모습이 절로 엄마 미소를 짓게 하네요. 한 손엔 다른 먹거리를 꼭 쥐고 열심히 손을 놀려봅니다. 흘리는 게 반 먹는 게 반이겠지만 아이는 진지해 보여요. 엄마의 모습은 그려지지 않았지만 짐작할 수 있죠. 바로 앞에 서서 뿌듯하면서도 심란한 마음일 겁니다. "우리 아기가 언제 이렇게 컸나" 싶기도 하지만 바닥으로 식탁으로 옷으로 흘려대는 음식 때문에 한숨도 날 거예요. 네네, 알지요. 그 마음 저도 잘 압니다. 하루에 꼬박 세 번씩 경험하고 있거든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먹는 게 제일 예쁜 걸. 숟가락질할 때 너무 기특한 걸. 힘들어도 조금 귀찮아도 천사 같은 내 아이가 한 뼘 더 컸다는 뜻이니까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흘리지 않고, 턱받이도 하지 않고, 엄마 도움 없이 식탁에 앉아 혼자 먹는 그 날이 오면 '오늘'이 분명 그리울 테니까요.


버나드 구트만, <아기>


그러니 아가야.

흘려도 좋고, 쏟아도 좋고, 뱉어도 좋아.

닦으면 되고, 담으면 되고, 주으면 되지.


그저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엄마는 충분해.


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정신없이 밥풀과 음식물이 떨어진 식탁 아래를 보면 자동으로 한숨이 나는 건 아직 어쩔 수가 없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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