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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am Jun 09. 2016

아이 덕분에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


엄마라는 이름 때문에 행동에, 혹은 생각에 제약을 받을 때가 많아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이죠. 아니, 어쩜 짐작은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정말로 몰랐죠.


아이 때문에 내가 자고 싶을 때 잘 수 없고, 내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날 수 없죠. 잠이 많은 저는 주말엔 기본 12시간씩은 잤어요. 오전은 늘 없었죠. 느지막이 일어나서 세수만 하고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나가곤 했는데 지금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아이가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서 아이 밥을 준비하느라 분주합니다. 늦잠이 간절한데, 사람들은 말해요, 엄마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아이 때문에 취미생활이 없어졌어요. 개봉 영화는 안 본 영화가 없을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고, 자주 봤어요. 주말이면 두 편은 봤죠. 만삭의 배를 해가지고서도 영화관에 갔어요. 마지막 영화가 <킹스맨>이던가. 시끌벅적한 영화라 아이가 시끄러울까 봐 배 위에 블랭킷을 올리고 봤던 기억이 나네요. 아, 영화관의 분위기와 고소한 팝콘 간절해요. 어쩌다 VOD로 영화를 보긴 하지만, 중간중간 아이를 체크해가며 보느라 전처럼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영화관에 너~무 가고 싶은데, 사람들은 말해요. 엄마니까 어쩔 수 없다고.


아이 때문에 내 일이 없어졌어요. 지금은 아이를 돌보는 것이 저의 주요 일과지만 머릿속으론 늘 내일을 꿈꿔요. 나라는 사람의 내일에 대해 떠올려보고, 지금 무어라도 하며 그때를 준비하고 싶어 아등바등합니다. 경력단절을 막을 수 없다면, 아예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찾아보기도 합니다. 아이도 중요하지만 한 사람의 ‘나’도 중요하니까요. 언젠가 꼭 내가 꾸는 이 꿈을 이룰 거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지금은 아이에나 집중하고 나중에 생각하라고 해요. 엄마니까.


아이 때문에 사람들을 잘 못 만나요.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요. 퇴근 후 친구들과 맥주 한 잔 약속을 잡기도 하고, 주말에 함께 미술관에 가거나 새로 생긴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며 몇 시간을 이야기해도 늘 아쉽게 헤어졌던 내 친구들. 지금은 사이버 친구가 따로 없을 만큼 얼굴 보기 어렵네요. 평일 저녁에 아이를 데리고 친구를 만나는 것, 아이에게도 미안한 일이지만 친구도 불편해할 거 같아 꺼려집니다. 주말에 잠깐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외출을 하기도 하지만, 어쩐지 불안해서 전처럼 마음 편히 놀 수가 없어요. 대화도 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건 제 착각일까요? 저의 관심은 90% 이상 아이에게 가 있다 보니 친구들의 이야기에 전처럼 공감하기 어렵고, 내 이야기를 허물없이 꺼내기도 쉽지 않네요. 바뀐 게 있다면 내가 바뀐 거겠죠. 나 바뀌었다고 티 내기 싫어서 전처럼 행동해보지만 나도 어색하고, 아마 보는 친구들도 조금 어색했을지 모르겠어요.


르누아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


이렇게 나는 전과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투정을 부리듯 이야기했지만 사실 아이가 주는 만족과 행복은 이 모든 투정을 단번에 깨버리죠. 아이가 한 번 나를 향해 웃어주면 그냥 게임 끝!


맞아요. 이제 더 이상 늦잠은 꿈같은 일이죠. 하지만 

아이 덕분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못된 습관을 고쳤죠. 

제 인생의 가장 부지런한 삶을 살고 있는 거 같아요. 


당분간은 쭉 영화관에서 남편과 오붓하게 보는 영화

혼자 집중해서 보는 영화는 어렵겠죠. 하지만 

아이 덕분에 보석 같은 동화책을 많이 볼 수 있어 좋아요.

감동적인 스토리와 아름다운 그림에 감동할 때가 많아요. 

아참, 그거 아세요? 

사랑스러운 노랫말의 동요는 어찌나 많던지요. 골라 듣는 재미가 있습니다. 


친구들, 친구들은 여전히 많이 그립고 아쉽죠.

자주 볼 수 없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적어져서요.  하지만 

아이 덕분에, 먼저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덕분에, 

살아있는 정보를 친구들에게 줄 수 있어서 작지만 도움 줄 수 있어서 참 좋아요.

아이 아니었다면 나도 몰랐을 것들이죠.


그리고 이제 저는 진짜 친한 친구가 생겼잖아요.

얼마 전에 카페에 가서 딸기 바나나 주스를 하나 시켜줬는데

한참을 집중해서 쪽쪽 빨아먹더라고요. 


자리에 앉아서 얌전히. 기특하더라고요. 많이 컸구나 싶고.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진짜 친한 꼬마 친구가 하나 생겼구나.’


‘아이 때문에’보다 

‘아이 덕분에’를 마음에 새기며 오늘을 또 보냅니다.

지나고 나면 분명 그리울 오늘이 ‘아이 덕분에’ 조금 더 꽉 찬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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