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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am Jun 14. 2016

아이의 말

모리스 드니, <왕관> 

저는 저희 엄마가 오버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려서부터 왜 이렇게 사람들에게 제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지 창피할 정도였어요. 

딱히 자랑할 것도 아닌데 틈만나면 사람들에게 제 이야기를 하고 다녔죠. 

것도 정해진 레퍼토리가 있는데 저는 거짓말 조금 보태고 한 천 번쯤 들은 것 같네요. 


“있지, 너 어렸을 때 처음 ‘비가 온다’는 말을 어떻게 했는 줄 아니? 그냥 엄마 비가 와, 가 아니라 ‘엄마, 비가 주륵주륵 와요’ 이러는 거야. ‘내가 얼마나 놀랬던지, 주륵주륵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알았을까.’ 말을 어찌나 예쁘게 하던지. 그런 애가 이렇게 툭툭 차가운 말이나 내 뱉는 딸내미가 되었네.”


“너 어려서 정말 힘셌어. 글쌔, 어떻게 하나보려고 큼지막한 수박을 들려줬는데 그걸 집까지 들고 갔다니까. 그때가 네 살쯤 되었나. 정말 아기 장사가 따로 없었어, 얘.”

“아이고, 너 어려서 생각하면 어찌나 잘 울던지. 걸핏하면 엉엉 울어대서 동네 사람들이 널더러 가수 될거라고 했다니까. 근데 옛말 별로 믿을 건 못된다. 너 노래 못하잖아.”


“한 번은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는데 네가 그러는 거야. ‘엄마 이 고추는 왜 버려요? 아까워요.’ 병이든 고추는 따 버리고 있었거든. 대체 이제 막 말문을 틔운 꼬마가 아깝다게 무슨 뜻인지 알고 쓴걸까?”


서른이 훌쩍 넘은 딸래미를 앞에 두고, 심지어 딸래미를 낳은 딸래미를 앞에두고 우리 엄마는 저에게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꼭 3살짜리 꼬마보듯 하시며 제 어릴적 이야기를 하시죠. 유독 말을 빨리했고, 잘 했다고 해요. 그도 그럴 것이 저는 4대가 함께 사는 초특급 대가족에서 자랐거든요. 그랬으니 말을 빨리 배웠겠죠. 게다가 엄마가 쓰는 말, 아빠가 쓰는 말, 할아버지가 쓰는 말, 할머니가 쓰는 말, 증조할머니가 쓰는 말이 다 조금씩 달랐을 테니 다양한 어휘를 습득했겠죠. 저는 그게 정말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우리 엄마는 왜 이렇게 유난일까, 본인보다 키도 훨씬 큰 딸에게 언제까지 아장아장 걷던 시절을 이야기할 건가 싶었죠. 그리고 늘 그 대화는 이렇게 끝났어요.


“어휴, 우리 딸 대체 언제 이렇게 큰 거니. 엄마는 우리 딸 꼬마때가 엊그제 같은데.”


엊그제라뇨, 엊그제라뇨, 30년도 넘었습니다. 여사님!


제가 딸을 낳고는 유독 더 제 어릴 때 이야기를 하시네요. 제 눈엔 하나도 저를 안닮았는데 '너 어려서랑 똑같다' 하시며 세 살 때 이랬다, 네 살 때 이랬다, 유치원 처음 가던날 이랬다 하시죠. 그중엔 듣기 좋은 말도 있고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들도 있어서 전 엄마에게 ‘그만 좀 해 내 나이가 몇 개인데 아직도 맨날 어려서만 이야기해’ 하고 핀잔을 준 적도 있어요.


그런데 이제 엄마가 왜 그렇게 제 어려서 이야기를 했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어제 아이가 처음으로 ‘멍멍’이라는 말을 했어요. 저희집 강아지 인형의 이름은 멍순이인데, 어떻게 하나 보려고 ‘저기 가서 멍순이 좀 데려와’ 했더니 강아지 인형을 데려다 제 품에 안기며 ‘멍멍’ 하네요. 전 제가 잘못들은 줄 알았어요. '맘마'나 '엄마'를 잘 못들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여러 번 반복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가 진짜로 ‘멍멍’이라는 말을 할 줄 알게 되었구나 싶어 감동했습니다. 


점심시간에 남편이랑 통화하며 

“여보 있자나, 오늘 우리 딸이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멍순이보고 멍멍 이러는 거 있지?”

친구와 카톡으로 수다떨다 말고, 

“아 맞다. 우리 딸 다 큰 거 같아. 오늘은 글쌔 멍멍 이라고 하더라.”

엄마에게도 

“엄마, 오늘 우리 딸이 뭐라 했는 줄 알아? 글쌔 멍멍이라고 하더라고.”

(우리 엄마 왈. “아휴, 널 닮아 말이 빠른가보다.” 못말려요 정말.)

고작 ‘멍멍’이라는 그 한마디에 저는 동네방네 ‘멍멍’ 이야기를 하고 다녔네요. 참 주책인가요? (내참, 브런치에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네요.)


 한참을 수다떨다보니 엄마 생각이나더라고요. 왜 그렇게 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고 다니는지. ‘멍멍’이라는 간단한 의성어 하나도 고맙고 감격스운데 “비가 주륵주륵 와요”라니 엄마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었을 거예요. 두고두고 곱씹어도 기특하고 사랑스러웠겠죠. 말을 잘하고 난 다음에는 아이가 말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겠지만, 이제 막 말을 시작한 아이에게서 나오는 말 한마디, 단어 하나하나는 엄마에겐 보석처럼 느껴졌겠죠. 어제 오늘 제가 그랬듯이 말이에요. 그건 마음에 품고 계속 꺼내보고 싶은 보석이죠. 닳지도 않고 늘 빛나는 그런 보석. 


  

모니스 드니, <왕관>


프랑스 화가 모니스 드니의 그림입니다. 그림에 대해선 잘 몰라요. 그냥 그림이 담긴 책을 보는 걸 좋아하고, 시간 날때 엄마와 아이를 그린 그림을 찾아보곤 하는 게 다죠. 그러다 우연히 찾은 그림인데, 처음 접하는 화가예요. 프랑스 화가라고 하는데, 아내 이름은 마르크 모리에. 둘 사이에는 일곱 명의 자녀가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인지 엄마와 아이를 그린 그림이 유독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이 그림이 참 좋았어요. 아이가 직접 만들었을 왕관을 엄마의 머리에 씌워주네요. 엄마가 받아써도 되는 걸 굳이 허리를 구부정이 굽히고 아이의 손 높이에 머리를 맞춰줍니다. 아이는 깨금발까지 하고는 낑낑거리고 엄마에게 왕관을 씌워주죠. 그림 속 엄마의 마음에도 보석 하나가 생겼겠네요. 표정을 보세요. 이미 감격한 모습이 역력하죠? ^^


앞으로 아이는 얼마나 많은 보석을 제 가슴에 안겨줄까요? 알 수 없는 외계어를 중얼거리며 수다를 떠는 딸을 보며 생각합니다. 


'너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할까.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그리고 결심합니다. 


'네가 하는 말들, 너와의 대화들을 소중히 여기는 엄마가 될게. 그림 속 엄마처럼 너의 눈높이에서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게. 네가 선물할 보석들을 마음에 꼭꼭 잘 간직할게.'


아휴 

‘멍멍’이라는 말도 이렇게 감격스러운데, 앞으로 저 어떻게 하죠?


여기, 주책 엄마 한 명 예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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