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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am Jun 17. 2016

엄마, 밖으로 나가요

모리스 드니, <빨간 드레스를 입은 아이>


프랑스 화가 모리스 드니의 그림입니다. 귀여운 아이의 모습이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기도 하네요. 하지만 전 이 그림 왠지 화가가 자신의 딸을 그린 게 아닐까 싶어요. 서너 살쯤 먹어 보이는 그림 속 소녀는 어디를 저리 바삐 가는 걸까요? 종종걸음으로 꽃밭을 가로질러 앞만 보면서 걸어다가가 화가인 아빠가 이름을 부르니 잠깐 아빠 쪽을 쳐봤고, 아빠는 아마도 그 순간을 포착한 것 아닐까요? 참으로도 열심히 걸었나 봅니다. 얼굴까지 벌게졌네요. 이제 막 걷고 뛰기 시작해서 세상의 범위가 넓어진 아이들은 참 바쁘죠. 어른들 눈엔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시시한 풍경인데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세상을 탐구합니다. 밖으로 밖으로 끝도 없이 나가고 싶어 하고, 보고 만지고 느껴보고 싶은 것들 투성이죠. 그림 속 아이도 딱 고맘 때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림을 보는 순간, 그림이 예뻐서 눈이 가기도 했지만,  요즘 한창 바깥 놀이에 빠져 있는 딸아이가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눈만 뜨면 바깥으로 나가자고 신발을 집어 들고 제게로 오는 아이죠. 한참을 울다가도 "우리 나갈까?"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툰 발음으로 "응"하고 대답을 해요. 바깥 놀이는 요즘 아이의 최고의 즐거움입니다.  얼마나 좋은지 밖으로 나가면 행복감을 감추지 못하고 까르르 웃어요. 그 모습을 보면, 그 행복한 표정을 보면, 저 또한 절로 웃음이 납니다. 그리고 사랑스러워서 뽀뽀 100번! 


5분 거리의 장소도 아이의 손을 잡고 가면 족히 30분은 걸립니다. 그림 속 아이처럼 얼굴이 벌게지도록 빨빨거리며 걷지만 진도는 잘 안 나가요. 보폭이 작아서이기도 하지만 세상엔 궁금하고 참견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아서 그냥 걷기만 할 수가 없죠. 지나가는 사람 한 명 한 명 다 알은 채하고, 길가의 꽃 한 송이 하나하나 만져보고 쳐다보느라 분주하죠. 


처음엔 답답했죠. 왜 자꾸 걷다 서기를 반복하는지 몰라 그저 손을 잡아끌기도 했었고요. 어느 순간 포기하고 아이의 페이스를 따라주고 있는데 그때부터 저의 눈에도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신혼초부터 살기 시작했으니 벌써 만 4년도 더 살았는데 요즘에서야 눈에 들어온다니 참 우습죠. 그동안 눈을 감고 산 것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근데 진짜예요. 어떤 나무가 많은지, 어떤 꽃이 피는지 이제야 보여요. 그리고 이제야 궁금해합니다. 


'저 신기한 잎을 가진 나무는 이름이 뭘까'

'화단에 핀 꽃은 무슨 꽃일까'

'우리 동네에 이렇게 새가 많이 살았구나'

'요일마다 파는 먹거리가 달라졌었구나'

'경로당은 여기 있고 주민 시설에선 이런 행사가 있구나'


이제야 내가 사는 곳에 대해 알아갑니다. 아이의 호기심 덕분에 말이에요.


그것뿐인가요. 4년 내내 엘리베이터에서 이웃들을 만나도 제대로 인사를 한 적이 없어요. 멀뚱멀뚱 벽을 보고 서있다 내려야 할 층에서 내리면 그만이죠. 몇 번을 마주쳤겠지만 관심 있게 보지 않았기에 낯이 익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와 다니면 달라요. 다섯에 셋은 말을 걸어오죠. 주로 "몇 개월이에요?"로 대화가 시작되고, 더러는 저희 아이를 기억하고 있는지 "어휴, 많이 컸네" 하시는 분도 계시죠.   

근데요, 사실 가장 달라진 건 사실 저랍니다. 참 무뚝뚝한 사람인데 아이와 함께 다니면서 상냥하고 넉살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동네 아기 엄마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기도 하고, 엄마뻘의 아주머니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죠. 전에 없던 일이에요. 아이가 옆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마음이 스르르 열리는 느낌입니다. 

 

사실 저도 외출하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인지 아이의 바깥나들이가 저는 싫지 않아요(귀찮은 때도 있습니다만 일단 나가면 괜찮더라고요). 하루에 다섯 번을 나가도 기꺼운 마음입니다. 동네 놀이터란 놀이터는 다 섭렵하고, 어떤 놀이터의 미끄럼틀이 낮고, 어떤 미끄럼틀이 빠른지 꿰고 있을 정도가 되었죠. 그뿐인가요? 가보지 않았던 골목을 걸어보기도 하고, 작은 공원에서 뛰어보기도 합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원엔 봄이면 목련이 흐드러기게 많이 핀다는 사실도 올해 알았네요. 아이의 바깥나들이가 많아지고 나서 저는 우리 동네가 참 좋아졌습니다. 그야말로 '우리 동네'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곤히 자요. 아마 5시간쯤 뒤면 일어나겠지요.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눈을 뜨자마자 나가자고 조를 거예요. 그럼 저는 우선 밥을 먹고 나가자고 어르고 달래 아침을 먹인 후 둘 다 세수도 하지 않고, 모자 하나씩 눌러쓰고 동네를 산책할 거예요. 아침 산책. 아침잠 많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내 인생에 그런 단어가 생길 줄이야. 참 낯설지만 참 좋습니다.


내일은 아파트 단지에 있는 키 작은 나무에 딸아이의 이름을 붙여줄 생각입니다. 그저 우리 가족만의 이름이겠지만 누구누구의 나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매일 가서 '안녕'이라고 말해줄 생각이에요. 아까 오후에 작고 아담하지만 참 예쁜 나무를 발견했거든요. 


매일 그곳으로 가자고 내 손을 잡아 끌 아이를 생각하니 벌써 웃음이 납니다. 내 손을 잡은 아이의 작은 손은 참 사랑스럽죠. 내일 아침, 무지무지 졸리고 일어나기 힘들겠지만 그 작은 손이 제 손을 잡으면 전 거짓말처럼 또 웃으며 인사하겠죠. 


"잘 잤니?"


곤히 자는 아이 옆에 이제 누워야겠네요. 내일도 일찍 하루가 시작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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